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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의 꿈을 먹고 사는 이탈리아 모터라인

자동차여행

by 자칼 황욱익

자동차 업계에서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색상은 붉은색이다. 열정과 꿈, 승리를 위한 도전의 이미지가 강한 이탈리아 자동차는 아주 작은 시티카부터 돈만 있다고 아무나 소유할 수 없는 슈퍼카에 이르기까지 특유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보통 이탈리아에 여행을 간다고 하면 로마나 베네치아 같은 남부가 관광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일반 관광객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북부 이탈리아는 자동차 마니아에게는 성지와 같은 곳이다. 가장 오래된 이탈리아 자동차 회사인 피아트가 터를 잡은 토리노를 중심으로 알파 로메오의 고향 밀라노, 마세라티와 페라리로 상징되는 모데나와 마라넬로, 람보르기니, 파가니의 본사가 있는 볼로냐, 매년 5월 열리는 콩코르소 델레간차의 주 무대가 되는 체르노비오의 코모호수, 밀레 밀리아의 시작점인 브레시아 등 북부 이탈리아 모터라인은 그야말로 자동차 마니아들에게는 천국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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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를 좋아하는 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탈리아 차를 꿈꾼다. 500 같은 작은 자동차부터 시작해 페라리의 슈퍼카나 마세라티 같은 중후한 멋의 세단까지 이탈리아 자동차들은 저마다의 개성이 매우 강하다. 독일차가 기계적인 완성도에 중점을 뒀다면 이탈리아차들은 단연 멋과 디자인이다. 가내수공업과 명품, 장인이 한데 어우러진 이탈리아 문화 전반에 걸친 분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자동차 역시 이들이 만들면 멋들어지고 아름다우며, 섹시한 분위기로 소비자를 유혹한다. 여기에 역사적으로 자동차 산업에 집중하여 투자했고 열정적인 도전을 즐기는 국민성 덕에 슈퍼카나 스포츠카 역시 발달했다.


모터라인의 시작은 밀라노부터

이탈리아 자동차 산업의 중심은 단연 피아트 본사가(FCA) 있는 토리노(튜린)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국에서 토리노까지 직항은 없고, 리나떼나 말펜사 공항에서 가까운 밀라노부터 시작한다. 알려진 대로 밀라노는 세계 패션의 중심지다. 굵직한 패션쇼를 비롯해 오래된 백화점과 골목골목에 즐비한 수제 공방이 유명하다. 밀라노=패션을 떠올리는 것은 어쩌면 매우 당연한 일이지만 사실 밀라노는 알파 로메오의 고향으로도 유명하다. 워낙에 이탈리아 사람들은 국가보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지역을 중요시하는 지라 지역적 특징이 강한 편인데, 패션만큼이나 밀라노 사람들은 알파 로메오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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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밀라노에서 우고 스텔라와 니콜라 로메오가 설립한 알파 로메오는 토리노 중심의 자동차 산업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오죽하면 독특한 디자인의 엠블럼에도 밀라노라는 문구가 있었다. 알파 로메오는 탄생지가 밀라노인 만큼 디자인이 매우 독특하고 특유의 운동성으로 지금도 많은 마니아들을 보유하고 있다. 페라리가 레이스에서 사용하는 빨간색도 원래는 알파 로메오가 사용하던 로소 코르사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페라리의 설립자 엔초 페라리가 알파 로메오 레이싱 팀 출신이다) 시대별로 컬렉터들이 탐내는 명차가 즐비하다. 알파 로메오가 마니아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1910년 설립 이후 여러 가지 사건을 겪고 대형 엔진이 없음에도 알파 로메오는 누가 봐도 딱 알 수 있으며 특유의 매력적인 배기음 때문이다. 타르가 플로리오와 밀레 밀리아를 비롯해 초기 모터스포츠에서 거둔 성과, 세계 최초의 알루미늄 헤드, 트윈 스파크 엔진 등등 자동차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으며 회사가 망하는 줄도 모르고 레이스에 몰두했던 모습을 보면 그야말로 ‘열정’이라는 단어가 가장 강력하게 떠오른다. 참고로 알파 로메오의 스포츠 모델명에 사용하는 C는 실린더(Cylinder)의 약자로 기통수를 나타내며 1972년 이후에 생산된 차에 부착되는 엠블럼에는 밀라노라는 문구가 삭제되었다.


피아트와 카로체리아, 이탈리아 자동차 산업의 중심 토리노

밀라노부터 토리노까지는 약 2시간 거리다. 공업도시인 토리노는 특별한 관광지가 유명한 곳은 아니다. 하지만 이곳은 이탈리아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이자 북부 이탈리아를 먹여 살리는 곳이다. 토리노에서 가장 큰 기업을 꼽자면 누가 뭐라 해도 피아트를 꼽는다. 지금은 푸조, 시트로엥 등과 합병해 스탈란티스로 재편됐지만 피아트 본사와 공장이 있던 링고토는 자동차 마니아라면 한 번쯤 둘러볼 만한 곳이다.

1988년 설립된 피아트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자동차 회사다. 500 같은 시티카부터 비스트 오브 토리노 같은 과격한 기록 경쟁 경주차까지 생산했던 피아트는 전투기와 잠수함, 대형 함정까지 생산하기도 했었다. 2차 세계대전 때 토리노의 피아트 공장은 가장 먼저 군수공장으로 전화되기도 했으며 1960년대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효율적인 체계를 가진 자동차 공장이기도 했다. 링고토라 불리는 이곳은 현재 이탈리아 공과 대학과 쇼핑몰이 들어선 토리노의 랜트마크가 변모했지만 옥상의 테스트 트랙은 아직도 남아 있다. 1923에 완공된 링고토는 5층 건물로 옥상에서는 출고 전 마지막 주행 테스트를 위한 1.5km의 테스트 트랙이 있었고 80가지의 자동차가 생산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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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노에서 꼭 둘러봐야 할 곳은 피아트 박물관과 국립자동차 박물관, FCA 허브다. 이 세 곳만 돌려고 해도 넉넉하게 이틀 정도는 잡아야 한다. 참고로 이탈리아 자동차 산업이 한창이던 시절 토리노에는 3,000개가 넘는 자동차 관련 회사들이 있었다고 한다. 디자인으로 유명한 피닌파리나, 베르토네 같은 회사들도 모두 토리노에 본사를 두고 있다. 과거에 이탈리아 자동차 메이커들은 외관 디자인과 동력계 개발을 별도로 진행했는데 엔진과 섀시는 자동차 회사에서 개발하고 외관은 전문 디자인 업체(카로체리아)에서 담당해 자동차를 완성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페라리와 마세라티, 그리고 모데나

이탈리아 모터라인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모데나는 토리노에서 약 1시간 반 거리에 위치한 작은 도시다. 모데나의 마세라티, 모데나와 인접한 마라넬로의 페라리는 단연 이탈리안 럭셔리카를 대표하는 브랜드다. 모데나의 명물로는 보통 올리브오일, 돼지고기, 파파로티를 꼽는다. 사실 마세라티와 페라리는 좀 밀려 있는 듯한 느낌이 없진 않지만 이들이 갖는 상징성은 그 이상이다. 모데나와 마라넬로는 인접해 있으면서도 매우 느낌이 다른 도시다. 모데나는 중세시대 이전부터 금속공예와 장신구 제작으로 유명한 도시였다. 귀족들을 위한 금속공예, 기사들을 위한 금속 갑옷, 마차에 부착하는 각종 장신구와 액세서리를 제작하는 공방이 모여 있는 곳이다. 지금도 모데나의 구석구석에는 이름 모를 장인들이 운영하는 크고 작은 공방이 있으며 이런 환경 덕에 금속을 다루는 자동차 회사들이 잡았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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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세라티는 별도의 박물관을 운영하지 않는다. 모데나 본사에서 약 20분 정도 떨어진 지역에 마세라티 컬렉션을 소유한 파니니 패밀리에서 운영하는 움베르토 파니니 컬렉션이 유일하다. 개인 사유지이자 목장 안에 있는 파니니 컬렉션은 마세라티의 역사와 제작 대수가 극히 적은 콘셉트카를 소유 중이다. 예약제로 운영되는 곳이라 사전 예약(인터넷)이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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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데나에는 페라리의 설립자 엔초 페라리를 기리는 박물관이 있다. 원래 엔초 페라리의 아버지가 소유하고 있던 농장을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바꾼 이곳은 박물관이라기보다는 갤러리에 가깝다. 주로 페라리의 역사적인 모델을 전시하며 엔초 페라리라는 인물에 집중한 곳이다. 페라리를 비롯해 마세라티, 피아트 등 과거 엔초 페라리와 연관이 있었던 모델을 전시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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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데나의 인접 지역인 마라넬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팬을 거느린 페라리의 공장과 본사, 박물관이 있는 곳이다. 열정의 사나이 엔초 페라리가 알파 로메로를 나와 설립한 페라리는 이탈리아 자동차 회사 중에 비교적 역사가 짧은 편이 속하지만 모터스포츠, 특히 F1에서 이룬 수많은 드라마와 성과는 열정 가득한 도전과 꿈 그 자체다. 페라리 뮤지엄에는 페라리가 엄선한 차들만 전시된다. 주로 V12 엔진을 가진 럭셔리 GT와 F1에서 활동했던 역사적인 경주차와 엔진들이 전시장을 채우고 있으며, 티포시(페라리 F1팬을 이르는 단어)에게는 그야말로 성지 같은 곳이다. 인터넷 예약을 통해 페라리 공장 투어도 즐길 수 있다. 페라리 뮤지엄 앞에는 페라리를 시간 단위로 임대해 주는 렌터카 업체들이 있는데 자칫 덤터기를 쓸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최초의 대학이 있는 볼로냐

모데나에서 남쪽으로 약 40분 떨어진 볼로냐는 이탈리아의 유명 교육도시다. 도시가 크지 않고 건물과 건물 사이에 차양이 있어 비가 내려도 비를 맞지 않는 도시로 유명한 이곳은 람보르기니와 파가니 본사가 있는 곳이다. 람보르기니는 현재 아우디 산하에 있어 예전에 비해 아우라가 줄었다는 평가를 받지만 매년 이들이 내놓은 슈퍼카는 마니아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람보르기니의 설립자 페루치오 람보르기니 뮤지엄을 비롯해 람보르기니에서 운영하는 람보르기니 뮤지엄을 둘러보는 것도 강력 추천한다. 여담으로 페루치오 람보르기니가 엔초 페라리에게 문전박대를 당해 람보르기니를 설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일부 문헌에서는 아예 두 사람의 만남조차 없었다는 증거도 있다. 또한 아무리 돈이 많은 사업가라고 해도 자동차 회사를 쉽게 설립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고 페루치오 람보르기니가 람보르기니에 있었던 시간은 불과 10년 남짓이라는 점으로 비춰 볼 때 람보르기니와 페라리의 라이벌 구도는 주변의 사람들에 의해 가공된 부분이 많다. 람보르기니 박물관에서는 현대 슈퍼카의 기준을 정립한 람보르기니 미우라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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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카 메이커 파가니(진짜 슈퍼카만 만드는 거의 유일한 회사다. 다른 브랜드는 스포츠카 브랜드에서 슈퍼카를 만든다고 보면 된다.) 역시 이탈리아 모터라인 맨 마지막 자락인 볼로냐에 자리를 잡았다. 호라치오 파가니가 설립한 파가니는 자동차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것으로 유명하다. 고급스러운 소재와 카본, 화려한 디자인은 파가니에서 제작한 모든 차에 적용된다. 파가니 역시 작은 규모의 박물관을 운영 중이며 역대 파가니 생산 모델을 직접 볼 수 있다. 공장 투어 프로그램도(인터넷 예약) 운영 중인데 슈퍼카가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지 직접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참고로 파가니 생산 슈퍼카는 주문부터 최소 1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또한 생산 대수도 극히 적어 슈퍼카 컬렉터들 사이에서는 유니콘과 같은 존재기도 하다.


매년 밀레밀리아가 열리는 브레시아

볼로냐에서 다시 밀라노 방향인 북쪽으로 올라가면 밀레밀리아가 열리는 브레시아가 나온다. 작은 소도시인 브레이시가 유명한 이유는 유서 깊은 레이스인 밀레밀리아(1000 마일)의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1927년 처음 시작한 밀레밀리아는 1000 마일을 달리면서 내구성과 스피드를 겨루는 레이스였는데 안정 상의 이유로 1957년 폐지되었다가 1977년 속도 경쟁이 아닌 이탈리아 곳곳의 아름 경관을 즐기는 클래식카 레이스로 개편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올해는 6월 13일에 시작해 6월 17일까지 4박 5일 동안 브레시아를 출발해 이몰라, 로마, 파르마, 밀라노, 베르가모를 거쳐 브레시아로 돌아오는 일정으로 펼쳐진다. 밀레밀리아가 열리는 구간은 전부 일반도로 구간으로 북부 이탈리아 전역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전 세계 35개국에서 참가하며 참가 대수는 평균 400대를 웃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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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시아의 북쪽에 스위스 국경지대에 체르노비오에 위치한 코모 호수는 얼지 않는 호수로 유명하지만 매년 5월에 열리는 클래식카 이벤트 콩코르소 델레간차로 유명한 곳이다. 빌라 데스타와 빌라 에르바라 불리는 호화 리조트에서 열리는 콩코르소 델레간차는 클래식카 경매부터 판매, 전시 등이 한 번에 진행되는 대형 이벤트다. 운이 좋으면 랄프 로렌이나 닉 메이슨 같은 세계적인 셀럽도 직접 볼 수 있으며 전 세계의 부호들 중 자동차에 푹 빠진 사람들이 모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동네 자체가 작고 호화 리조트가 모여 있어 물가도 비싼 편이지만 동네를 둘러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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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와 바이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북부 이탈리아만큼 매력적인 곳은 찾기 어렵다. 천혜의 자연환경 덕에 어디를 가도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으며 자동차를 타고 여행하기에도 매우 좋다. 굳이 크고, 화려할 필요도 없다. 베스파 같은 스쿠터나 시티카인 피아트 500도 좋고, 화려하고 섹시한 슈퍼카도 잘 어울리는 곳이 이탈리아 북부다. 여기에 자동차 마니아라면 한 번쯤 둘러볼 만한 자동차 관련 시설과 박물관도 많고 자동차 테마 한 가지로 즐길 거리도 매우 풍성하다. 동네마다 크고 작은 자동차 이벤트도 많이 열리는데 이런 곳을 찾아다니면 이탈리아 사람들이 자동차를 비롯한 탈 것을 어떻게 즐기는지 가까이서 볼 수 있다. 무엇보다 가장 추천하는 것은 전 세계의 티포시들이(페라리 F1 팬을 지칭하는 별명) 매년 가장 기대하는 F1 이탈리아 그랑프리다. 이탈리아 그랑프리는 몬자에서 열리는데 몬자 역시 이탈리아 모터라인에서 매우 중요하고 의미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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