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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 밀리아 익스피리언스 UAE 2023(2)

밀레 밀리아

by 자칼 황욱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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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카나 자동차 역사를 좀 아는 사람들이 저에게 가장 먼저 물어 보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최근에는 밀레 밀리아에 어떻게 참가하게 됐는지가 가장 많은데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아주 우연한 기회에 예고도 없이 기회가 찾아 왔습니다.

사실 밀레 밀리아 출전 기회는 클래식카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야말로 위시리스트 가장 상위에 있습니다.

저두 그랬구요.

참가 제안(?)은 10월 말 어느 날 갑자기였는데 결정까지는 채 2시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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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밀레 밀리아는 돈만 있다고 출전할 수 있는 레이스(?)는 아닙니다.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돈이 아닌 열정과 의지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이들이 타고 나온 차들만 봐도 알 수 있죠.

저는 몇 년 전 인연을 맺은 친구의 초청으로 출전 기회를 잡았는데, 알고 보니 이 친구가 대표로 있는 회사인 토미니클래식이 밀레 밀리아 익스피리언스 UAE의 메인 스폰서 중의 하나였습니다.

역시 사람은 착하게 살면서 좋은 친구를 만나야 합니다. ^^


이 친구로부터 처음 온 메세지의 내용은 이랬습니다.

'올해 밀레 밀리아에 출전하려고 하는데 우리 팀 내비게이터로 합류하는 건 어때?'

이 내용을 보고 몇 번을 되물었습니다.

'밀레 밀리아? 내가 합류해도 되는 거야 합류하려면 뭘 준비해야 하고 돈은 얼마나 필요해?'

'몸만 와. 나머지는 팀에서 전부 준비할거니까'


이 친구는 저의 빠른(2시간도 안 걸린) 결정에 매우 놀랐습니다.

'벌서 결정했어? 엄청 빠르네'

'나는 한국인이니까'

저의 대답에 시작 전 부터 친구는 겁을 주기 시작합니다.

'날씨는 엄청 더워 습도도 높고 하루에 꼬박 400km를 주행해야 하구 아마도 다시 군대간 느낌이 들거야'

'그래? 재미있겠는데 .....그런데 나야 군대를 다녀왔지만 너는 군대 경험이 없잖아.'

'그렇긴한데 작년에 마세라티 기블리 4.9 SS로 출전했었는데 군대를 가면 이 정도 되지 않을까 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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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단순하게 '클래식카 랠리에 참가하는 구나' 정도였는데 참가 신청서를 보내고 한개 두 개 절차를 따르다 보니 까다로운 부분도 많고 체계도 확실하며, 절차를 진행할 때마다 등장하는 기관들의 권위도 엄청났습니다.

밀레 밀리아 익스피리언스 UAE 2023(이하 밀레 밀리아 UAE)는 옥타니움이라는 곳에서 프로모터와 운영을 담당합니다.

이곳에서는 서류 접수를 비롯해 경기 내내 모든 사항을 운영하는데 제 개인정보(여권 사본, 국제운전면허증, 혈액형, 비상연락처 등)를 보내고 며칠 후에 드라이버 라이센스를 신청하라는 메일이 왔습니다.

UAE의 모터스포츠 ASN인 EMSO(한국의 KARA, 일본의 JAF와 같은 FIA 산하 국가 별 ASN)를 통해 드라이버 라인센스를 신청하고 FIA에서 심사 후 리미티드 스피드 컴페티션 등급의 컴페티션 라이센스(레이스 라이센스)가 발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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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급된 드라이버 라이센스 입니다. (개인정보는 가렸습니다)

라이센스를 신청할 때는 복잡한 질문 사항이 몇 개 있습니다.

현재 약물을 복용하고 있거나 과거에 복용했던 약물(마약류가 아닌 의료용)이 있는지, 랠리 경험이 있는지 등등인데 랠리 경험이 없다 보니 다른 레이스 경력(카트를 비롯한 국내 레이스 경력)을 함께 보냈습니다.

EMSO에서는 다른 레이스 경력을 인정해 주더라구요.

발급된 라이센스는 인쇄해서 경기 당일 엔트리를 확인할 때 제출 해야 합니다.

이 라이센스는 밀레 밀리아 UAE 기간에만 적용되며, 드라이버와 내비게이터 둘 다 발급 받아야 합니다.

내비게이터라고 따로 등급이 있는 게 아니라 드라이버와 같은 등급이며, 출반 전 날 진행되는 랠리 내비게이터 교육도 드라이버와 함께 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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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저에게 공식 일정 출발 전날 저녁 때 있을 공식만찬과(가서 보니 매일이 공식 만찬이었다는) 마지막날 공식 시상식 때 입을 세미 정장을 준비하고 했습니다.

저는 외국 나갈 때 짐을 최소화 하는 편인데 셔츠 몇 개와 세미 정장용 바지, 구두까지 챙길 생각을 하니 귀찮음이 밀려 왔습니다.

그나마 다행은 날씨가 더워 자켓까지 챙길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몇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비행기표를 알아 보던 중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터졌습니다.

여기에 경기가 열리는 UAE의 두바이(메인 베이스)에 몇 백 년만에 폭우가 내려(이 동네 비가 거의 안 오는 동네) 도시가 물에 잠겼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친구에게 물어 보니 두바이는 큰 문제가 없다는 답을 들었지만......

일주일 전에 장바구니에 넣은 비행기표가 사라졌습니다.

부랴부랴 원하는 날짜의 비행기표를 다시 검색해서 구입하려고 했는데.....

일주일 만에 가격이 40만원 이상 올랐습니다.

'오늘이 제일 쌉니다~~' 이건 만고의 진리라는 생각을 다시 했죠.

우여곡절 끝에 비행기표까지 잘 예약했습니다.



전 세계를 돌아 다녔지만 아랍권은 처음이라 사실 걱정이 앞섰습니다.

아랍 방문이나 아랍권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지금부터 콧수염을 길러야 할지에 대해서도 물어봤고, 워낙 빡쎄기로 소문한 이슬람문화에 대해 공부 공부하기 시작했죠.

UAE(아랍에미리트)가 7개의 왕국으로(아부다비, 두바이, 샤르자, 라스 알 카이마, 푸자이라, 움 알쿠와인, 아즈만) 구성된 국가라는 것도 처음 알았고, 생각보다 면적도 넓고 오만과 인접해 있으면서 UAE 영토 안에 오만이 있는 것도 알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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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재미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국내를 시끄럽게 했던 정청조 사건이 터졌을 때라 '자칼도 아랍까지 가서 사기 당하는 거 아니냐?' '그쪽에서 잡아 준 호텔이 진짜 있는 곳인지 확인해 봐라' 등등을 주변에서 조언하기도 했습니다.

지인 중에 한 분은 고프로 사서 동행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밀레 밀리아가 아니라 '공항부터 사기 당한 자칼의 모습을 담고 싶어서' 였다고 합니다.

나중에 저를 초청해 준 친구와 이런 얘기를 했더니 웃으면서 '충분히 그럴 수 있지. 그쪽 분위기가 그랬으면 나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야'하더라구요.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대단했습니다.

일본과 미국, 유럽에 있는 친구들은 모두 부러워했으며, '진짜 밀레 밀리아에 출전한다고? 정말 축하해. 우리를 대신해서 가는 거라고 생각하고 잼있는 얘기 많이 들고와'하는 격려를 해 주었습니다.

일단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경험치를 평생 쓸 운 몰빵해서 얻는 다고 해도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죠.


후일담인데 한국에서는 밀레 밀리아 완주 최초 한국인에 대해 별로(전혀) 관심이 없지만 일본과 미국, 유럽에서는 제 커리어에 대해 높은 평가를 해 줍니다.

특히나 최초의 한국인 완주자라는 타이틀은 현장에서도 많은 박수를 받았고 많은 사람들이 축하해 주었습니다.

이제 어디가서 클래식카에 관련된 사람을 만나도 얘기할 꺼리가 정말 풍부해졌습니다.


아무튼 콧수염은 안 길러도 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슬람 문화 자체가 아랍권에서는 국가 별로 분위기가 다르고 교리도 다른데 UAE는 비교적 개방적이고 외국인이 생활하기에 괜찮다는 얘기들을 들었습니다.

치안도 걱정할 필요도 없고(친구는 롤렉스를 테이블에 놔 둬도 아무도 안 가져간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사람들도 친절하고, 대중 교통이 불편하고 덥고 습한 거 빼고는 지낼만 하다고 했습니다.


이래저래 이거 저거 준비하다 보니 두 달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거 아닌 것도 같은데 밀레 밀리아 엔트리에 제 이름을 올렸다는 것만으로도 남는 게 참 많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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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타고 출전하게 될 차는 거의 막판에 알파 로메오 8C 컴페티치오네로 결정되었습니다.

클래스는 컴템포러리 아이콘 클래스 입니다.

원래 계획은 람보르기니 400GT로 한 등급 위인 클래식 아이콘에 출전할 예정이었으나 엔트리를 마치는 날까지 리스토어 작업을 마칠 수 없어 막판에 변경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혹독한 환경에서 에어컨도 없고 좁디 좁은 람보르기니 400GT에서 잘 버텼을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막상 경기를 시작하니 더위와 습도, 모래바람 등등은 생각보다 훨씬 더 가혹했어요.

알파 로메오에는 에어컨이 있었지만 사실 상 주변 환경 때문에 없는 거 보다는 나았지만 그렇다고 쾌적한 것은 아니었어요.

출발 전에 커뮤니티나 SNS에 참가차에 대한 투표를 진행했었습니다.

밀레 밀리아에 대해서 아시는 분들은 알파 로메오를 추천하고 클래식카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람보르기니를 추천했습니다.

결과는 알파 로메오가 더 많았고 공교롭게도 알파 로메오로 출전하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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