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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ndy Carraway Dec 16. 2021

강아지도 독립적인 공간이 필요해!

두리의 러브 하우스 일대기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아무리 사람들과 놀기 좋아하는 성향의 사람이라도, 자기만의 공간이 없다면 무척 힘들 것이다. 혼자 휴식을 취하거나 생각을 정리하는 등, 혼자서도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한 칸뿐인 좁은 공간일 지라도, 나 홀로 온전히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강아지에게도 자신만의 공간은 필요하다. 보통 켄넬, 이동장으로 공간을 분리하여 구성해주고도 있다. 우리 집의 경우에는 켄넬, 이동장이 따로 있지만 외출하거나 차량에 탑승할 때 사용하는 것으로 미리 교육을 시켰고 집 안에서 두리만의 공간을 분리하기 위해 실내에도 두리 전용 집, 기구를 마련했다. 시행착오를 꽤 겪고 두리만의 독립적인 공간 교육을 마친 과정에 대해 써보려 한다.


스폰지밥이 생각나는 파인애플 집


사진에는 잘렸지만 윗부분에 초록색 잎 모양이 있었다. 개껌 간식을 먹으며 적응 중인 아기 시절 두리.

 두리를 위해 처음 마련한 공간은 파인애플 모양의 집이었다. 밝은 주황색 컬러가 귀여웠다. 나는 스폰지밥을 보고 자란 세대이기 때문에 스폰지밥이 거주하는 파인애플 모양의 집은 어린 시절의 추억도 떠오르고, 무엇보다 두리가 그 파인애플에서 낮잠을 자고 노는 모습을 상상하니 너무나 귀여울 것 같았다. 또한 구매 전 파악한 집의 높이도 은근히 있어 두리가 지나치게 답답해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근히 공간이 있어 기존에 구매해서 사용 중이던 방석도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크기였다.


 그러나 파인애플 집은 실패하고 말았다. 두리를 적응시키기 위해 간식도 집에서 줘보고 탐색하며 노는 놀이도 시켜봤지만, 두리는 집의 개념보다 장난감으로 생각하고 말았다. 파인애플 집의 재질이 부드럽고 쉽게 접히는 부직포로 되어 있어서 이가 간지러운 두리가 물고 뜯기에 제격인 표적이 된 것이다. 두리는 도통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려 했고, 급기야 그 작은 체구로 집을 끌고 다니기 시작했다. 아쉽지만 두리의 새로운 집을 마련해주기로 하고 파인애플 집은 지금도 창고에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다. 언젠가 두리가 다시 사용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정착에 성공한 민트색 달걀집



 파인애플 집의 실패를 경험한 우리 가족은 두리에게 어떤 집이 좋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서 두리만의 공간을 마련해줘야 두리도 좀 더 마음 편하게 잠을 자고 생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선 엄마가 원하신 두리의 집 모양은 두리가 점프를 해서 올라가거나 모서리를 깨물 수 없는 원형, 타원형이었다. 나 역시도 동의했다. 두리는 아직 아기인데다가 우리가 잠시라도 못 보는 사이에 점프를 하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 게다가 집은 두리가 갖고 노는 게 아닌, 편하게 쉬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알려줘야 했다.


처음 달걀집에 들어간 두리의 모습


 밤낮으로 인터넷에서 검색한 끝에, 둥근 타원형 달걀 모양의 집을 찾아 구매하게 되었다. 가족들은 이 집을 '달걀집'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보이는 것보다 공간이 은근히 넓어 두리가 평소에 쓰던 방석도 들어가고, 성견이 되어 3kg이 넘은 현재까지도 좁다는 느낌 없이 잘 사용 중이다. 배송이 온 날, 내가 출근을 하느라 회사에 가있던 사이에 도착했었다. 엄마께서 두리가 들어가 있는 사진을 보내주셨는데, 너무 앙증맞고 귀여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아직은 어색하고 이상한 느낌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싫은 일을 해야 하거나 최애 간식을 받으면 무조건 달걀집으로 숨어버린다.


 그래도 한동안은 두리가 잠만 자는 용도로만 생각해서 사용했다. 그렇게라도 잘 사용해서 정말 다행이었지만, 자기만의 방처럼 생각하고 사용하게 된 것은 조금 더 나중의 일이었다. 달걀집을 사용한 지도 벌써 1년이 넘은 현재, 두리는 사람 못지않게 방의 개념을 이해하고 잘 쓰고 있다. 빗질을 하거나 양치질을 해야 하는 것을 눈치채면 슬그머니 자신의 달걀집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달걀집에 들어가면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나름대로 머리를 쓴 것이다. 가족들은 어쩔 수 없이 두리와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며 기다린다. 달걀집은 두리를 방해하지 않는 공간이라고 모두 약속했기 때문에, 낮잠 자는 사이에 담요를 덮어주는 용도가 아니라면 억지로 꺼내거나 손을 대지 않기로 정했기 때문이다. 두리가 눈치를 보다 달걀집을 슬그머니 나오면, 그때 비로소 해야 할 일을 하게 되었다.


달걀집에서 낮잠을 자는 두리. 애착 담요까지 야무지게 덮었다.


 특히 두리가 제일 좋아하는 간식을 받았을 때 냉큼 달걀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은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로 웃기고 귀엽다. 보통 개껌은 내 무릎에서 자주 먹는데, 최근에 새로 먹기 시작한 육포 간식은 받자마자 도망가버리곤 한다.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다는 완강한 태도처럼 보인다. 급하게 먹다 체하기라도 할까 봐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지만, 두리가 그만큼 자기만의 방이 어떤 공간이고 무엇을 해도 되는 지를 알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나중에 누나가 꼭 더 멋진 집 마련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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