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을 준비하며
해파랑길 걷기는 내게 미뤄둔 숙제 같은 것이었다. 마음먹으면 이리저리 재기보다 무작정 해보는 편인데도 해파랑길 걷기는 쉽게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았다. 안전염려증이 있어서 혼자서는 떠날 엄두가 나지 않았고 남편은 그다지 걷기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4년 전 인제로 발령받아 올 때 인제가 동해안과 가까우니 주말을 이용하여 틈틈이 몇 구간씩 걸어서 인제에 근무하는 동안 50코스 전구간을 완주해야지 생각했었다. 그러나 금요일 오후만 되면 체력이 소진되어 뻗기 일쑤였고 떠나지 못할 핑계는 많았다.
작년 가을 "내가 인제 있을 때 곰배령 한번 다녀가"라는 말에 인제에 온 k와 곰배령을 올랐다. 그때 k가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길래 이때다 싶어 산티아고 순례길 전에 해파랑길을 먼저 걷는 게 어떻냐고 물었다. 당장 이번 겨울 방학부터 시작하고 이번에는 일단 5일만 걸어보자는데 의견 일치를 봤다.
배낭을 메고 매일 삼만보 이상을 걸어야 하는 쉽지 않은 길. 어렵게 시간 내서 함께 걷는데 혹시라도 다치거나 못 따라 걸어서 일정에 차질이 생기면 안 된다는 생각에 체력을 끌어올리기로 했다. 기룡산, 박달고치길, 소양강 둘레길, 설악산, 봉정암, 내린천길 등 인제 곳곳을 걸으며 해파랑길을 걷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준비물인 체력을 기르려고 나름대로 노력했다.
나 엄청 기대하고 있어
두 달이 넘도록 k와 나는 해파랑길에 대해서는 물론 일상적인 카톡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그러다 방학 시작하는 날 카톡으로 "우리 해파랑길은 가는 거 맞지?"라고 물었더니 저렇게 답을 보내왔다.
그랬지. k는 말하면 하는 사람이었지. 21년 전에 만나서 5년을 같은 학교에서 일하고 헤어진 지 올해 16년째.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나와 마찬가지로 k도 방학 시작하자마자 학교 선생님들과 학생들을 모집하여 학교에서 바다까지 24km 걷기 프로젝트를 하면서 해파랑길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좀 큰 배낭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 해파랑길 도전 기념으로 38리터 배낭을 사고 비 올 때를 대비해서 판초 우의를 샀다 그리고 나머지는 평소 쓰던 것들로 챙겼다. 운동화와 경등산화를 놓고 고민하다 산길도 걸어야 하고 일기예보를 보니 비소식도 있어서 경등산화를 신기로 했다.
준비물
입고 가는 옷(등산바지와 경량패딩, 바람막이 잠바) 외에
긴바지 1, 긴팔티셔츠 1, 반바지 1, 반팔티셔츠 1, 브래지어 2, 팬티 2, 양말 2, 세면도구, 화장품, 접이우산, 모자, 워머, 헤드랜턴, 충전기, 보조배터리, 휴대용 티슈.
이렇게 챙겼다.
앱은
해파랑길 전반에 대한 안내와 해파랑길 따라 걷기 기능이 있으며 각 코스마다 QR코드로 스탬프를 찍을 수 있는 두루누비앱,
하루 동안 어디를 얼마나 걸었는지 지도와 숫자로 기록을 해주는 트랭글앱,
숙소 구할 때 사용할 야놀자앱.
3개를 깔았다.
참, 걷는 동안 매일 디카시 한 편씩은 꼭 쓰겠다는 마음도 챙겼다.
해파랑길을 걷겠다고 마음먹은 지 4년 만에 나선다. 바빠서 같이 갈 형편이 안 되는 줄 뻔히 아는데도 "나도 데려가" 하는 남편과 "도대체 왜 그렇게 걸으려는 건지 모르겠어" 하는 두 딸을 두고 드디어.
*디카시-디지털카메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을 포착하여 찍은 영상과 함께 문자로 표현한 시.
[해파랑길에서 만난 디카시]
나서길
망설이길
주저하길
그 길로 가지 않고
이 길을 선택하길
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