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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 Mar 26. 2024

잘려나간 나무들을 추억함

그 나무들을 꼭 베야만 했을까?


느티나무가 사라졌다.

이달 초, 관사 주변에 있는 절을 철거하고 다시 현대식으로 크게 새로 짓는다는 소식과 함께 공사 장비들이 들어왔다. 공사가 시작되면서 한동안 그쪽으로 다니지 않았다. 학교 정문 쪽으로 걸어 다니거나 배드민턴을 치는 날에는 짐이 많아서 가까운 거리지만 차를 타고 다녔다. 그러다 며칠 전에 기룡산에 가다가 절과 함께 절 마당에 있던 느티나무도 사라진 것을 알게 되었다.


절 마당을 가로질러서 비탈진 매실밭 오솔길을 따라 걷는 그 길은 학교로 가장 빨리 걸어갈 수 있는 길이기도 하지만 아기자기하고 이뻐서 일부러 걸어갈 때도 많았다. 느티나무의 그늘과 느티나무 아래 평상과 절 마당의 작은 화단에서 철 따라 피는 꽃을 오가는 이들에게 베풀던 울타리 없는 절이라 좋았다. 유서 깊어 보이는 절은 아니었지만 마음에 들었다.


절 마당을 지나가며 '남이 내 마음에 맞게 해 주길 바라지 말고 내가 남의 마음에 맞게 해야 한다', '이 세상에 내 것이 어디 있나, 다만 사용하다 버리고 갈 뿐이다'라는 화단에 꽂힌 팻말에 적힌 글귀를 수도 없이 읽었다.


지금의 소박한 모습 그대로 세월 따라 늙어가는 절의 모습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에 공사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안타까웠는데 느티나무까지 사라진 것을 보니 속상하기까지 했다.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가지마다 연두색 순을 틔우던 모습, 무성한 초록 이파리를 흔들어대며 자랑하던 모습, 단풍으로 물든 나뭇잎을 몇 날 며칠 동안 내려놓던 모습, 하얀 눈을 뒤집어쓰고 황홀한 표정을 짓던 모습을 가까이에서 봤기에 아까웠다. 느티나무를 살리면서도 절을 지을 방법이 분명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더 그랬다.


재작년에 지금 살고 있는 관사 옆에 추가로 관사를 지을 때도 그랬다. 공사 안내 표지판이 세워지고 중장비가 들어와서 제일 먼저 관사 옆에 있던 단풍나무와 향나무를 잘라냈다. 그 자리는 새로 짓게 될 관사 입주자들이 사용할 주차장 자리가 되었다. 그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주차장이 확보되지 않으면 건축 허가가 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으니까.


지난해 가을, 관사 주차장 포장 및 주변 환경 정비 공사를 할 때도 개나리, 플라타너스, 살구나무,  은행나무가 또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개나리 울타리가 있던 자리에는 자작나무 모양의 하얀색 철제 울타리가 세워졌다. 개나리 울타리 가까이 있던 나무들을 잘라낸 자리와 잔디와 풀이 섞여 자라던 자리에는 모두 콘크리트 디딤석이 깔렸다.


관사 옆 단풍나무와 향나무를 베고 나서 실제로 차를 몇 대 더 댈 공간이 생기긴 했다. 그렇지만 플라타너스, 살구나무, 은행나무가 있던 자리는 주차대수 늘어나는 것과는 상관이 없었다. 그저 차를 좀 더 철제 울타리 가까이 댈 수 있게 만든 것이었다. 그렇다고 주차장이 차를 돌리기에 간격이 좁은 것도 아니었다. 그 나무들은 울타리와 아주 가까운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서 잘라내지 않아도 되었다.


이 주차장에서는 이제 고양이들이 나무 밑둥치를 긁다가 은행나무에 올라가는 모습을 볼 수 없다. 퇴근하면서 풀밭에 떨어져 있는 잘 익은 살구를 줍는 일도, 세 잎 클로버 사이에 떨어진 살구가 행복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는 일도 없을 것이다. 새들이 은행나무 위에서 단체로 자동차에다 대고 형형색색으로 똥을 쌀 일도, 그 똥을 닦아낼 때 동네 고양이들이 몰려와서 무슨 일인가 구경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후진하다가 은행나무에 자동차를 살짝 부딪히고는 깜짝 놀라서 차와 나무를 살펴보는 일도 이제는 없을 것이다.


나무를 베어내고 콘크리트 디딤석을 깐 주차장은 깨끗해졌지만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느티나무를 베어낸 자리에 들어설 절도 그럴 것이다.




<나무들이 잘려 나가기 전 나에게 준 선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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