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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 Apr 30. 2024

부드렁추

부드렁추가 벼룩나물이라니


어제 점심을 먹은 후 허여사님(87세, 86세 2월까지 우리학교에서 청소일 하시다 퇴직하신 할머니. 학교 울타리 바로 옆에 집이 있음)댁으로 산책 갔다 오다가 울타리 근처에 무리를 지어 핀 작고 하얀꽃을 봤다. 같이 걷던 A가 무슨 꽃이냐고 했을 때 대충 보고 별꽃이라고 했더니 A가 별꽃은 아니라고 했다. 자세히 보니 그런 것 같아서 사진을 찍어 집에 와서 검색해 보니 벼룩이자리였다. 벼룩이 앉을 만큼 작은 꽃이라는 뜻이었다. 얼마나 작냐면,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으려면 초점이 맞지 않아 한참 동안 손가락으로 화면을 터치하며 초점이 맞을 때까지 쪼그려 앉아 기다려야 하는 꽃이다.


벼룩이자리를 검색하다 비슷하게 생긴 벼룩나물도 같이 나와 있어서 보는데 갑자기 ‘부드렁추‘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몇십년 만에 떠오른 단어였다. 아, 저것, 분명히 부드렁추인데. 부드렁추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글이 어딘가에 있을 거라는 생각에 검색을 했다.


네이버, 다음, 구글, 유튜브 어느 곳에도 부드렁추라는 단어는 없다. 부두렁추, 부두릉추, 부드릉추, 부드렁치, 브드렁치. . .한글자씩 바꿔서 검색해도 관련 글이 나오지 않았다. 분명히 부드렁추 맞는데, 이 넓고 깊은 정보의 바다에 부드렁추라는 단어가 없다니.


고향친구에게 전화를 했다(이럴 때 전화해서 물어볼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게 가끔 슬프다).


 "그 왜 있잖아, 봄에, 안개울 밭에 가면, 북실북실하게 퍼지던 풀, 그거 뜯어서 나물로 먹고 그랬잖아, 그거 이름 생각나?"


부드렁추라는 단어를 들어보기는 했는데 먹은 기억은 없으며 쇠비름나물하고 착각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 다른 친구한테 전화해봐야 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 친구한테서 “그~으~래~, 내 부드렁추 알지~”하는 시원한 대답을 들었다. 꽃이 피기전에 뜯어서 나물로 먹었으며 냉이를 섞어서 같이 무쳐 먹으면 더 맛있다는 것과 쑥이 나기 전에 자라던 풀이었다는 구체적인 설명까지 해줬다.


그렇다. 이른 봄 쑥이 나기 전에 밭이나 논두렁 밭두렁에 북실북실 무리지어 번져가는 풀, 꽃이 피기전에 뜯어서 생으로도 먹고 데쳐서도 먹었던 나물이다. 부드렁추에 냉이를 섞어서 먹으면 냉이의 쌉쌀한 맛과 질긴 식감이 부드렁추의 부드러운 맛과 어우러져 입맛을 돋게 만들던 나물이다.


벼룩나물을 다른 지역에서는 벌금다지로 많이 불린다고 한다. 벼룩나물, 벌금다지라는 이름보다 부들부들하고 연한 연두빛 봄맛이 느껴지는 부드렁추라는 이름이 입에 더 착 감기지 않는가?


부드렁추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부드렁추 관련 글도 늘어나서 '벼룩나물이 경상도 지역에서는 부드렁추라고도 불린다'는 설명이 지식백과에 추가되면 참 좋겠다.



별꽃(인제군 상동리, 2021/03/22)


벼룩이자리(인제군 상동리, 2024/04/30)



벼룩나물(사진출처: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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