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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마다 야생화 단지에 갑니다

마당 있는 집 이야기

by 당근

눈만 뜨면 마당에 나가서 풀을 뽑았다. 퇴근하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플라스틱 목욕탕 의자에 쪼그려 앉아서 호미질하며 잔디를 가꿨다. 잔디가 뿌리를 뻗어가며 마당 전체를 초록으로 덮어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풀 뽑는 일이 은근히 중독성이 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를 때가 많다. 풀을 뽑다 보면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를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잡초(풀이라 쓰면 약해 보이므로)와 싸워가며 잔디가 깔린 그림 같은 마당을 유지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잔디에 뿌리는 잡초 제거제를 뿌려줘야 풀이 덜 난다고 이웃이 알려줬으나 잡초 제거제를 뿌리지 않고 살았다. 그러다 내가 다른 지역으로 발령이 나서 남편 혼자서 몇 년 살다가 남편도 다른 지역으로 발령났을 때 우리 집도 잡초 제거제를 뿌리기로 했다. 그런데 남편이 잡초 제거제(친환경이라 적힌)를 적정 용량보다 많이 뿌렸는지 잡초뿐만 아니라 잔디까지 함께 죽어 버렸다.


집을 짓고 나서 남편과 함께 잔디를 사다가 바둑판 모양으로 직접 심어서 애지중지 키운 잔디였다. 아이들이 어릴 때 야외 수도에서 물을 틀어서 호스 끝을 손으로 눌러서 분수 모양으로 물이 뿜어져 나오게 하며 잔디에 물을 주며 뛰어놀던 잔디였다. 10년 넘게 공들인 잔디밭은 그렇게 사라졌다.


다시 잔디를 사서 심었다. 그때부터 또 그 집에서 나 혼자서 몇 년, 빈집인 채로 몇 년이 흐르는 동안 마당은 이제 풀들 차지가 되었다. 잔디는 풀에 밀려 뿌리를 뻗지 못했다. 여름에 비가 올 때면 우후죽순이라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인가 싶을 만큼 풀들은 무섭게 자랐다.


몇 주를 건너뛰어 주말에 집에 갈 때면 무릎높이까지 자란 풀의 씨앗이 이웃집 마당으로 날아갈까 봐 미안할 지경이었다. 풀이 무성하게 자란 마당을 가로질러 현관으로 갈 때는 으스스한 느낌도 들었다. 잔디 깎는 기계가 풀을 감당하지 못해서 어느 해부턴가 아예 예초기로 풀을 베고 있다. 남편도 나도 이제는 마당을 가꾸는데 예전만큼 에너지를 쏟지 못한다. 몸 여기저기에서 조심하라는 경고를 보내는 나이가 된 것이다.


지난 금요일 밤에 원주집에 갔더니 일주일 만에 마당이 많이 풍성해져 있었다. 다음 날 아침에 마당으로 나가 보니 온갖 풀들 사이에 전에는 보이지 않던 뚝새풀도 보였다. 논에서 잘 자라는 풀인데 근처 논에서 풀씨가 우리 집 마당까지 날아온 모양이었다.


울타리 주변으로 꽃밭 만들 공간만 두고 마당에 돌을 까는 게 어떻겠냐고 남편에게 물으니 그렇게는 안 한다고 한다. 갈수록 체력이 뚝뚝 떨어지는 게 눈에 다 보이는데, 예초기 돌리는 일은 내가 도와주지 못하는 일인데. 남편도 한 고집하는 성격이라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남편이 돌을 깔지 않겠다니 앞으로도 계속 풀이 있는 마당을 보고 살아야 한다. 돌 깔기 싫다는 남편을 바꿀 수도 없고 마당에 풀이 없기를 바랄 수도 없다. 그래서 야생화 단지에 산다고 생각하려고 한다. 자연이 알아서 씨 뿌리고 키워주니 감사한 마음으로 야생화를 감상하려 한다. 잔디가 깔린 마당도 좋지만 몰랐던 야생화 이름도 하나씩 알아가고 어쩌다 네잎클로버를 만나기도 하는, 마당 전체가 야생화 꽃밭인 지금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다(뱀 나올까 좀 무섭긴 하지만).





긴병꽃풀과 토끼풀
봄맞이꽃과 꽃마리
토끼풀과 망초에 둘러싸인 민들레와 애기똥풀
뽀리뱅이와 뚝새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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