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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 May 31. 2024

초록국에 밥 말아먹기

영월산 올갱이로 충전하기


4년 만에 다시 주말부부가 된 나와 남편. 3대가 쌓은 덕 덕을 제대로 보는 나는 요즘 남이 해준 밥을 먹으며 살고 있고, 마땅히 식사를 해결할 식당이 없는 영월의 작은 동네에 사는 남편은 밥을 해 먹으며 살고 있다.  


지난 목요일에 남편이 올갱이를 잡았다며 원주로 들고 오겠다는 전화가 왔다. 올갱이 잡다가 사고 나는 거 모르냐, 다시는 올갱이 잡으러 가지 마라, 올갱이를 좋아하지도 않고 나는 요리할 줄도 모른다며 초를 쳤다. 남편은 걱정하지 말라며 올갱이를 같이 잡으러 간 선생님께 요리하는 법도 배웠다고 했다.


금요일에 원주집에 들어서자마자 해감을 여러 번 했는데도 찌꺼기가 계속 나온다며 냄비에 올갱이를 담고 물을 붓던 남편,


"이것 봐, 좀 있으면 올갱이들이 냄비 벽에 달라붙는다"


"싫어, 그걸 보고 어떻게 먹으라고 그래, 난 안 볼 거야"


그러면서도 궁금하여 부엌을 오가며 힐끔 보니 몇몇 올갱이들이 냄비 벽에 붙어 있었다. 징그럽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했다.


다음날 아침.


올갱이 된장국을 끓인다며 된장을 찾길래 "거기 냉장고 어디에 있을 거야"했는데 없다고 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정말 없었다.


"쌈장 주지 마, 쌈장으로는 절대 안 끓일 거야"(쌈장으로 끓인 된장국에 한 맺힌 사람처럼)


"진짜, 된장이 없네, 그냥 소금 간 해"


올갱이국에 들어갈 부추를 텃밭에서 잘라서 씻어 갖다 주고는 부엌에서 빠져나왔다. 이것 어딨냐 저것 어딨냐, 이것저것 줘라, 하며 주방보조로 부려먹기 전에 얼른.


잠시 후.


"다 됐어, 먹어"


맑은 올갱이국을 기대하고 갔더니 웬걸, 냄비가 온통 초록색이었다. 올갱이가 작았나, 너무 오래 끓여 쪼그라들었나. 올갱이가 초록색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올갱이 자체에서 나온 초록색도 있지만 부추와 청양고추도 너무 일찍 넣어서 초록국을 만드는데 일조를 한 듯 보였다.


청정 영월 자연산 올갱이에다 텃밭에서 바로 잘라온 부추와 청양고추와 마늘이 들어갔는데 맛이 없을 수 없었다. 맛이 없더라도 퇴근 후에 강으로 가서 올갱이를 직접 잡고 쪼그려 앉아 올갱이를 하나하나 빼서 아침을 차려 낸 정성을 생각하면  다 먹어야 했다.


남편이 주중에 먹다 남아서 들고 온 식은 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국에 말았다. 평소 국물은 거의 남기고 건더기만 먹는 편이나 국물도 남기지 않고 먹었다(저 올갱이를 어떻게 먹냐던 사람이 맞나 싶으리 만치 깨끗하게). 간당간당하던 몸의 배터리가 저 아래에서부터 초록색으로 급속 충전되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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