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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 Aug 13. 2024

30분 만에 감악산 오르기

원주 감악산 최단코스 등반기

6월에 상원사를 다녀오며 7월 산행일을 7월 22일, 목적지는 감악산으로 정했다. 감악산은 원주시 황둔면 쪽에서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왕복 4-5시간, 제천시 봉양읍 백련사에서 올라가면 왕복 1시간 소요되는 산이다.


그 주 내내 비가 내렸고 산에 가기로 한 토요일도 비가 온다고 되어 있었다. 산에 갈 준비를 해서 b가 우리 집에 와 있었지만 산에 가지 않기로 했다. 계곡물 범람, 등산객 고립, 산사태, 집중호우, 조난 같은 단어가 자꾸 떠올라서 집에서 옥수수나 삶아 먹으며 놀자고 했다.


일기예보에 비가 온다고 되어있었는데 아침에는 해가 쨍하게 떴다. 비가 오지 않으니 산에 가도 되나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는 또 비가 조금 내렸다. 시간대별 일기예보를 보며 비가 오다 말다 하는 사이를 이용해서 감악산에 다녀오자고 b에게 말했다. 백련사 쪽으로 가면 30분이면 정상에 도착한다고 하니 가볍게 출발했다.


백련사 가는 길은 15년째 나를 태우고 다니는 나의 애마(sm3)가 달리기에는 경사가 많이 가팔랐다. 6-70도는 돼 보이는 급경사 오르막에서 골골 앓는 소리를 낼 때는 이러다 시동이라도 꺼지면 어쩌나 걱정될 정도였다. 포장은 되어 있었으나 외길인 데다 경사는 가파르고, 길 위에는 나뭇가지들이 우거져있어서 으스스한 느낌마저 들었다. 폭우가 계곡을 휩쓸고 지나간 흔적이 무성했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길에는 크고 작은 돌들이 제집 안방인 양 길 위에 올라와 있기도 했다.


30분이면 정상에 도착한다는 말을 백련사가 그만큼 높은 곳에 위치한 절이라는 뜻이데 그걸 몰랐다. 지도를 검색할 때 위성지도나 지형지도를 한 번이라도 클릭했다면 얼마나 높은 곳에 있는지 눈치챘을 텐데 일반지도만 봤으니 알턱이 없었다.


2시 40분에 백련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산으로 가는 길을 찾으려고 차가 왔던 길 쪽으로 돌아갔다가 찾지 못해서 인터넷 검색으로 들머리를 찾았다. 주차장 야외 화장실 옆에 길이 있었다. 들머리 계단을 오르려는데 b가 내 차에서 소리가 난다고 했다. 분명히 시동을 껐는데 차에서 윙~ 하는 소리가 계속 났다. 백련사까지 오는 길에 무리를 해서 차가 엔진을 식히는 소리 같았는데 그대로 둔 채 가기에는 찜찜했다. 시동을 한번 켰다가 껐더니 소리가 사라졌다.


500미터 30분, 그 숫자만 보고 또 편하게, 쉽게 생각하고 산에 올랐다. 인터넷에서 검색했을 때는 정상까지 편도 500미터 정도라 되어있었는데 우리가 간길은 다른 길인지 500미터보다 길게 느껴졌다. 백련사에서 30분만 가뿐하게 올라가면 될 줄 알았다. 이름에 '악'이 붙은 산답게 바위가 많고 가팔랐다. 그 흔한 데크길이나 철제 난간 같은 건 없었다. 겁 없이 등산을 계획하고 산에 오르면서는 지나치게 낙관했던 자신을 탓한다는 점은 b도 나와 똑같았다.


정상에 도착하기 전에 밧줄을 잡고 바위를 올라가야 하는 곳이 있었다. 먼저 올라간 b가 어디를 잡고 어디를 발로 딛으라는 코치를 해줬는데도 겁이 나서 쩔쩔맸다. 간신히 올라섰더니 이번에는 정상 표지석이 있는 곳으로 가려면 바위와 바위 사이 간격이 넓은 곳을 껑충 건너뛰어야 했다. 밧줄도 안전 펜스도 없었다. 나보다 다리가 길고 담력도 좋은 b가 앞서 가다가 도저히 못 뛰겠다며 돌아섰다. 밧줄을 잡고 바위를 오를 때 만난 부부(로 짐작되는)의 조언대로 바위를 건너뛰어 정상표지석으로 가지 않고 바위 뒤쪽으로 돌아서 올라갔다. 그곳은 선녀바위라고도 불리는 일출봉이었다.(바위 이름도 글을 쓰면서 알게 됨)


구름이 변화무쌍하게 움직였다. 360도 파노라마 뷰를 구름이 시시각각으로 가렸다 보여줬다. 산 이쪽 편에서는 구름이 끼어 한 치 앞도 안 보이는데 고개를 돌리면 산 저쪽 편은 먼 곳까지 잘 보이기도 했다. 바로 눈앞까지 구름이 몰려와 바람을 타고 감악산을 넘어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선녀바위 아래에 정상 표지석이 보이긴 했지만 내려가지 않았다. 인증샷 찍으려다 다치면 큰일이니.


내려오는 길에 정상이 멀었냐고 묻는 중년의 남녀 3명을 만났다. 금방이라고 다 왔다고 알려주면서  정상 표지석으로 가는 길이 위험하니 바위 뒤쪽으로 올라가라고 알려줬더니 표지석 앞에서 블랙야크 100대 명산 인증 안 하셨냐고 물었다. 우리는 그런 거 모르고 그냥 다니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b와 나는 그런 거 모르는 사람이다. 아니 그런 거 몰라야만 하는 사람이다. 블랙야크 100대 명산 인증? 그걸 시작하면 아마 b와 나는 둘 중 하나가 병원에 누워야지만 등산을 그만둘 것이다. 나이와 체력을 생각하지 않고 물불 안 가리고 덤벼들게 뻔하다.


가는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좀 더 서둘러 걸었다.  3시 50분에 백련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등산 도중에 오빠네 가족이 원주로 온다는 전화를 받은 b가 약속 시간에 맞춰가려면 시간이 빠듯해서 백련사를 돌아보지 못하고 돌아왔다.


왕복 1시간의 등산치고는 피로감이 꽤 컸다. 덥고 습한 날씨 탓도 있었겠지만 골골 거리는 차를 끌고 백련사로 올라가는 길이 등산만큼이나 힘들었던 탓도 있었을 것이다.


이번 감악산 산행은 뭔가 허전하고 아쉬움이 남는 산행이다. 여름 보내고 가을에 감악산에 다시 가면 어떨까, 선녀바위에서 단풍든 산을 내려다보면 또 어떨까, 감악산에서의 일출은 어떨까 궁금해진다. 다음에 간다면 더 찬찬히 백련사를, 감악산을 누리고 싶다.




백련사 가는 길


백련사 주차장, 회색 작은 건물이 야외 화장실, 그 옆에 감악산 가는 길이 있다.
폭우에 흙이 많이 쓸려내려갔다 / 감악산 정상이라고 되어있지만 정상 표지석은 조금 더 위에 있다.


바위 사이가 멀어서 발을 어디에 딛어야 될지 난감했던 곳
정상표지석쪽으로 가려면 바위 사이를 건너 뛰어야 함 / 정상 표지석이 보이지만 가지 않기로 함. 너무 위험함.


선녀바위에서 바라 본 풍경


선녀바위 아래에 정상 표지석이 보인다.
감악산 선녀바위 위에서 (feat.가쁜 숨)




* 걸은 날 : 2024.07.20.(토)

* 걸은 거리 : 왕복 2.8km

* 소요 시간 : 1시간 10분(정상에서 15분 휴식 포함)

* 날씨 :  해-비-흐림

* 온도 : 24-30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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