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월 100만 원도 못 버는 사장님 이야기

by 당근

자영업자 4명 중 3명은 월 100만 원도 못 번다는 기사가 눈에 띈다. 수지 타산을 따진다면 큰언니도 가게를 일찌감치 접었어야 했다. 7년 전 1월에 부산 큰언니네 집에서 울산 사는 오빠네, 대구 사는 작은언니네, 거제도에 사는 남동생네, 그리고 원주에 살던 우리 가족까지 모처럼 만에 모였을 때 큰언니가 직접 만든 견과류 떡케이크를 맛 보여 주었다.


떡케이크 만드는 법을 두 달 배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게를 내겠다고 했다. 그때 큰언니 나이가 쉰여섯이었다. 결혼 전에 유치원 교사를 했던 큰언니는 아이 셋을 낳으면 눈총 받던 시절에 셋을 낳았다. 조카 셋이 아주 어릴 때는 집에서 작고 길쭉한 네모 모양의 플라스틱을 쇠고리에 끼우면 개당 몇 원을 받는 부업도 하고, 조카들이 어느 정도 크고 나서는 베이비시터도 하고, 어린이집 교사도 하고, 특수교육 실무사도 했지만 장사는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더니 그해 5월에 진짜로 가게를 차렸다. 가게를 홍보할 블로그를 만들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냐고 나에게 전화가 와서 큰언니에게 가르쳐 주려고 그해 4월에 나도 처음으로 블로그라는 걸 만들었다.


떡케이크 가게를 하는 큰언니는 행복해 보였다. 가게에서 혼자 조용히 떡케이크를 만드는 시간이 좋다고 했다. 가족과 지인이 기뻐할 얼굴을 기대하며 떡케이크를 사러 오는 사람 중에 얼굴을 찡그리며 오는 사람이 있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런 면에서 큰돈은 못 벌어도 행복한 얼굴로 가게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만나는 직업인 떡케이크 가게 사장이라는 직업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 5년간 운영하던 떡케이크 가게를 세 아이 중 막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만큼 키운 큰딸에게 넘기고 큰언니는 형부가 일하는 거제도로 이사를 갔다. 거기서도 부산에서와 같은 이름으로 떡케이크 가게를 열었는데 부산에서 하던 만큼 장사가 안 되는 것 같았다. 공무원으로 퇴직한 형부의 연금도 있고 또 형부가 지금도 일을 하고 있으니 차라리 가게를 닫고 쉬는 게 어떠냐고 내가 말한 적이 있다. 그때 월세(70만 원) 낼 돈만 벌려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가게를 한다며 "집에 혼자 있으면 뭐 하노, 나는 가게에 나와서 일하는 기 좋다"라고 했다.


작년 가을에 며칠 가게 문 닫고 단풍놀이라도 좀 다니라고 내가 말했을 때 TV에서 백종원 씨가 가게 문을 여는 것은 손님과의 약속이니 장사가 안되더라도 문을 열어야 된다고 했다며 일요일 빼고는 문을 닫을 수 없다고 말했다.


손재주가 좋고 뭐든 빨리 배우는 큰언니는 떡케이크 말고도 쌀쿠키, 휘낭시에, 오란다, 화과자, 월병, 바람떡, 컵케익, 양갱, 딸기찹쌀떡까지 별 걸 다 만든다. 작년에는 퇴근 후 문화센터에 커피 배우러 다닌다더니 바로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서 커피와 음료도 같이 팔고, 여름에는 팥빙수, 겨울에는 잉어빵(붕어빵과 잉어빵은 다르다고 함)도 판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키즈 클래스도 열고, 차도 없고 운전도 못하면서 어른들을 위한 원데이 클래스 출장 의뢰가 들어오면 마다하지 않는다. 혼자서 택시를 타고 바리바리 물건들을 싸 들고 가는 모습을 떠올리면 마음이 짠하기도 하다.


가끔 나는 네이버 검색창에 언니의 떡케이크 가게 이름을 쳐본다. 몇 안 되는 내돈내산의 블로그 글과 방문 후기가 검색된다. 잘은 몰라도 블로그 체험단이나 리뷰 이벤트 이런 걸 해야 홍보가 잘될 텐데 그런 것을 안 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모르긴 몰라도 큰언니는 나름대로 자신이 현재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가게를 운영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껏 살아온 모습처럼.


큰언니의 떡케이크 가게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모든 자영업자들에게도 최저임금 수준의 소득이 보장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인제군민 걷기 행사에 참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