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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 Oct 18. 2024

공개수업

공개수업일이다. 종 나기 전에 며칠 전 ppt로 만든 수업자료 첫 화면을 전자칠판 화면에 띄웠다. 요즘 학교에 독감이 돌아서 공개 수업 대상반 25명 중 5명이 결석이다. 인원이 줄어서인지 오늘따라 유난히 조용하다. 조용하다 못해 모둠 활동 과제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다른 반 보다 에너지가 넘치는 반인데 분위기가 평소랑 다르다. 다른 날 같으면 떠들고 장난치는 아이들 이름을 몇 번이나 불렀을 텐데 오늘은 그럴 일이 하나도 없다. 학생들도 공개수업이 불편하겠지.


작은 동네라 뒤에 온 사람이 누구 엄마 아빠인지 다 알고, 그분들도 자기가 누구네 집 아들 딸 인걸 다 아는 곳이다 보니 아무래도 행동이 조심스러운가 보다. '우리도 창업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모둠별 활동을 하고 각 활동 단계를 태블릿 사진으로 찍어 패들렛에 제출하는 수업인데 개인별 창업 아이디어 떠올리는 단계에서 시간이 많이 걸렸다. 너무 잘하려고 하거나 거창한 걸 생각하지 말라고 말해도 인제는 산밖에 없잖아요, 하며 산탓을 하는 학생도 있다. 산을 이용해서 돈 버는 방법을 생각해 보라고 해도 표정이 밝지 않다.


공개수업은 쇼다. 교사도 학생도 배우가 되는 날. 남 앞에 서거나 주목받는 것을 싫어하는 내가 어쩌다 교단에 서고 있지만 공개수업은 늘 불편하다. 공개수업일에 학부모들이 굳이 시간을 내서 학교에 오는 건 교사들의 수업을 평가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물론 그런 마음으로 독기를 품고 학교에 오는 분들도 간혹 계시긴 하지만). 학교에서 공부하는 내 자녀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 오는 거라 생각하면 그렇게 부담스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누군가 내 수업을 지켜보고 있으면 안 그러고 싶어도 몸이 굳고 표정이 어색해진다.


교실 뒷자리에 의자를 두면 공개수업 참관온 학부모들이 오랫동안 앉아 있는데 올해는 의자를 두라는 말이 없어서 그냥 뒀더니 수업시작할 때 학부모 두 분이 서있다가 슬그머니 나갔다. 한참 후에 한 분이 다시 돌아와서 결석한 학생 자리에 앉아서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눈에서 사랑이 뚝뚝 떨어진다.


모둠활동을 하는 공개수업은 시나리오대로 수업을 진행하지 못한다. 틀을 벗어나지는 않는 선에서 상황 따라 유연하게 흘러간다. 이번에도 계획한 만큼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 혼자 강의식 수업으로 원맨쇼를 한다면 마치는 시간을 맞추기는 쉽다. 그러나 모둠별 수업을 하면 모둠별로 과제를 수행해 내는 시간도 달라서 마치는 시간을 딱 맞추기 힘들다. 그렇다고 준비한 대로 되지 않았다고 안타까워하거나 속상해하지는 않다. 31년째 교단에 서고 있는 사람이다. 젊은 교사들 많은 곳에 가면 원로교사 취급받을 나이인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다른 사람 앞에서 말하는 게 부담스럽고 그런 상황에서 긴장하는 사람이다.


공개수업 전 학부모 등록부를 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중학교 1학년 학부모가 제일 많이 참여했고, 2학년 3학년으로 갈수록 숫자가 줄어들었다. 그러니 초등학교 1학년 공개수업은 어떨까?


두 딸을 키우면서 공개수업에는 딱 한번 가봤다. 큰애 초등학교 2학년이고 작은애 1학년일 때. 큰애 담임 선생님은 국어 수업을 했고, 작은애 담임 선생님은 수학 수업을 했다. 요즘은 하루 종일 수업공개를 하기도 하지만 그때는 한 시간 수업공개를 했었다.  한 시간에 두 군데 교실을 다녀야 해서 작은애 교실에 먼저 갔다가 큰애 교실로 갔었다.


우리 집 애들은 둘 다 엄마 아빠를 닮아서 다른 사람 눈에 띄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큰애나 작은애나 엄마가 왔는지 쓰윽 한 번 보고는 끝이다. 공개수업 시간에 손을 번쩍 들고 발표를 하거나 누구 엄마가 왔는지 궁금하여 뒤를 자꾸 쳐다본다거나 그러지 않는다. 반듯하게 허리를 펴고 앉은 큰애의 뒷모습이 생각나고 담임 선생님이 큰애 이름을 부르며 발표를 시켰던 것도 같다. 작은애는 10넘어가는 숫자의 덧셈 공부하는 시간이었는데 손을 책상 아래로 내려서 부지런히 손가락으로 숫자를 세며 수업을 따라가던 모습이 생각난다. 같은 교사 입장에서 공개수업이 얼마나 부담스러운지 아니까 안 가는 게 도와주는 거라는 생각으로 그 후로는 한 번도 안 갔다.


늘 바빴다. 한 학년에 10명 내외, 전교생 80여 명의 학생이 있는 시골학교라 나 말고도 공개수업에 열심히 쫓아다니는 부모들이 없는 분위기였다는 것도 위로가 되었다. 아이들도 우리 엄마는 당연히 공개수업에는 안 오는 사람, 바쁘지만 운동회날은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도시락 싸들고 오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듯했다.


뜬금없이 혹시라도 나에게 손주가 생긴다면(그런 일이 나에게도 일어날까? 두 딸은 결혼 생각이 없다) 손주의 공개수업에 쫓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려는 찰나 아이 하나에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오는 경우도 있다는 어느 초등학교 1학년 신참교사의 하소연이 떠올라 이쯤에서 생각을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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