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아, 부탁해
알람이 울린다. 4시 40분이다. 화장실을 다녀온 뒤 절하기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거울을 본다. 미지근한 물 한 모금을 마신다. 핸드폰을 거치대에 올려서 베란다 쪽 창문 앞에 두고 그 앞에 방석 크기로 접은 요를 끌어다 놓는다. 오늘은 무릎 보호를 위해 요 위에 넓고 평평한 베개를 하나 더 올렸다. 기지개도 켜고 손목과 발목도 돌리고 간단한 스트레칭을 한다. 다시 침대에 누워 시간이 가기를 기다린다. 어제는 첫날이라 화면이 잘 안 보일까 봐 노트북을 방바닥에 내려놓고 했는데 큰 화면이 아니어도 될 것 같아서 오늘은 핸드폰을 보면서 하기로 마음먹는다. 4시 58분. 카톡창에서 천일결사 공동정진 참여 링크를 클릭한다. 화면에 108배를 함께 할 분들 얼굴이 뜬다. 5시. 시작이다. 화면의 안내에 따라 108배를 한 후 명상을 한 다음 경전독송, 수행자의 자세, 천일결사의 목표등을 따라 읽으면 5시 42분. 그러고 나서 밴드에 접속해서 지금 이 순간의 느낌을 댓글로 적으면 새벽 의식(?)이 끝이 난다.
정토회 불교대학에 들어온 지 한 달 반이 지나간다. 지난 일요일에는 천일결사자 입재식이 있었다. 천일결사자 입재식은 천일동안 수행하겠다는 마음을 가진 수행자들을 새롭게 맞이하는 행사였다. 온라인으로 9시 30분부터 13시까지 3시간 30분 동안 진행되었는데 틈만 나면 누워있기 좋아하는 나에게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천일결사 참여는 불교대 졸업요건에는 속하지 않는 것인데 우리 조 학습 안내를 맡은 분이 권하길래 또 덜컥 신청해 버렸다. 천일결사이긴 하지만 천일동안 108배를 하겠다는 각오로 신청한 건 물론 아니다. 108배를 백일동안만 한 번 해보겠다는 마음으로 신청한 것이다.
정토회 홈페이지에 나온 설명에 의하면 3년을 정진하면 개인 의식의 흐름이 바뀌고, 30년을 정진하면 한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으로 3년 단위로 천일결사 정진을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백일기도를 열 번 하면 천일이 되고 천일을 열 번 하면 만일(만일결사)이 되는 것인데, 백일째 마다 새로운 참여자를 모집하는 것이었다. 천일결사자는 매일 108배 수행, 1000원 이상의 보시, 생활 속에서 봉사를 실천할 것을 약속한다.
어제는 퇴근 후에 원통 cgv에 갔다. 원통 cgv에는 인바디 기계가 있기 때문이다. 인제 하늘 내린 센터 수영장 앞에도 인바디 기계가 있는데 거기는 프린트도 되지 않고 측정하기 불편하게 놓여 있어서 드라이브 삼아 종종 원통까지 간다. 8월에 처음 잴 때는 69점, 9월에는 73점, 10월에는 72점이었다. 어제는 65점이었다. 춥고 깜깜해서 요즘 아침 걷기 운동을 안 나가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65점은 너무한 점수다. 50-60대 여성 중에서 상위 89%라고 되어있다. 백 명 중 끝에서 11등이라니. 지난달과 비교하니 근육량이 줄면서 점수가 많이 떨어졌다. 떨어진 인바디 점수를 108배로 올릴 수 있을지 한 번 실험해 보려고 한다. 인바디 점수를 기록하면서 한다면 108배를 좀 더 오래 좀 더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하루 한 시간, 밝고 가벼워지는 연습'이라는 천일결사 기도 슬로건처럼 백일 후 나는 108배로 밝고 가벼워질 수 있을까. 마음이 수그러들면 몸이 낮아지게 되고 몸이 낮아지면 마음이 따라서 수그러진다는데, 내 삶을 돌아보고 상대의 말과 행동에 상관없이 내가 자유롭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데. 이틀째인 나는 아직 그런 것까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절 횟수 30회가 넘어가면 몸이 점점 뜨거워지기 시작한다는 것, 70회를 넘기면서부터 분출되기 시작한 땀으로 어느 순간 눈을 뜰 수 없게 된다는 것, 땀범벅이 되어 108배를 마쳤을 때의 쾌감은 절을 하다 이마가 베개에 닿았을 때 그대로 엎어져 자고 싶다는 유혹을 누르고도 남는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게 됐다. 수행의 탈을 쓴 108배 절운동이건 108배 절운동의 탈을 쓴 수행이건. 백일동안, 꼭 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