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은 과연 나쁜 것일까? 그렇다면 율법주의란 무엇인가?
성도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왜 율법에 대해서 건강한 시선을 가지지 못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조건적으로 율법을 나쁘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성품을 의심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이번 포스팅은 어떻게 율법을 이해해야 하는지 다루고자 한다. 참고로 아래의 링크를 참조하면, 율법의 기능 세 가지를 살필 수 있다.
그리고 율법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안 좋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율법주의와 반 율법주의를 찾아보자. 이 두 가지 자세 모두 율법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동생이 울고 있었다. 왜냐하면 형이 동생을 때렸기 때문이다. 동생은 서러워서 펑펑 울었다.
그 모습을 본 아버지가 형에게 말한다.
동생 때리지 마
여기서 "동생 때리지 마"가 아버지의 명령이라고 기억하자.
며칠 뒤, 또 동생이 울고 있었다. 아버지가 와서 형에게 묻는다.
동생 때리지 말랬지!
그러자 형이 말한다.
안 때렸는데요?
말 그대로 형은 동생을 때리지 않았다. 그냥 놀리고 괴롭히고 협박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동생을 때리지 않았으니 아버지의 명령을 잘 지킨 걸까? 문자 그대로는 지켰지 않은가?
여기서 우리는 율법의 목적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다. 먼저 아버지가 형에게 한 명령의 목적은 동생을 때리지만 않으면 동생을 괴롭혀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 명령의 목적은, 동생과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는 것이다.
그런데 동생을 괴롭히고 매일 동생을 울리면서 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버지의 명령을 지켰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바로 율법주의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명령이 폐지되었다면서 동생을 계속 때린다면, 이것이 바로 반 율법주의이다.
율법도 마찬가지이다. 아버지 명령의 목적이 화목하고 서로 사이좋게 지내는 가족의 모습인 것처럼, 율법에도 목적이 있다. 백성들끼리 서로 화목한 하나님 나라(천국)의 모습 = 평화가 그것이다. 즉, 율법의 목적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런데 겉으로는 율법을 지키면서 형제를 미워하거나 괴롭힌다면 그것은 율법을 지키는 것일까? 이게 바로 율법주의의 모습이다. 반대로 율법은 폐지되었다면서 율법을 안 지키는 사람은 어떨까? 이것은 반 율법주의의 모습이다.
결혼한 부부의 예를 들어보자. 결혼한 부부가 바람은 피우지 않지만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다. 이것은 올바른 모습일까? 지킬 건 지키지만 그 안에 영혼이 없는 것, 이것이 바로 율법주의의 모습이다. 반대로, 서로 사랑은 하지만 다른 사람과 바람도 피운다. 이것도 문제이다. 사랑은 있다고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바로 반 율법주의의 모습이다.
이제 정리해보자. 율법을 사랑을 위해 주신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이 바로 율법이었다. 아담의 타락 이후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관계가 깨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은 서로를 사랑하라고 주신 것이 율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 없이 율법만 지키는 것(율법주의)은 아무 소용이 없다. 껍데기만 있는 것이다.
반대로 사랑한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 행동은 사랑과 거리가 멀 때(반 율법주의) 우리는 그 사랑을 의심할 수 밖에 없다. 사랑이 있다면 그 사랑의 열매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사랑한다면서 때리고 욕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미움이다.
물론 우리는 율법으로 사랑을 완성할 수 없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오셨고, 우리 안에서 사랑을 이루어 나가도록 성령을 보내주셨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율법(사랑)을 폐하러 온 게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다고 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