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당근 Mar 12. 2024

신앙은 언어다

Intro

과거 신앙은 언어라면 신학은 문법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하지만 이 아이디어가 나오게 된 것은, 신앙은 언어와 비슷하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신앙은 언어라는 비유로 우리의 신앙을 설명해보려고 한다.


신앙이 언어라는 비유에서 중요한 것은, 언어란 혼자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어느 공동체에 속할 때, 그 공동체의 언어를 배우지 않으면 그 공동체에 속하는 방법을 형성할 수 없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산다고 해보자. 한국어를 모르고는 사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어려서부터 한국어를 배운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 한국에서 살겠다 결정했다면, 아이가 아니라 하더라도 한국어를 배워야 한다.


미국을 생각해보자. 미국은 영어권 나라이다.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제대로 된 삶을 영위하려면 영어를 써야 한다. 물론, 미국 내에는 중국어로만 생활이 가능한 차이나 타운이 있다. 놀랍게도 중국인들이 미국 내에 중국어권 공동체를 형성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미국 내 중국어 공동체에 속하려면 중국어를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중국어권 내에서만 살아간다면 미국이라 하더라도 영어 없이 생존할 수 있다. 물론 이건 영어를 쓰는 세상으로 나가지 않고 중국어권 공동체 내에서만 살기에 가능하다. 호주 시드니나 미국 LA 같이 영어 전혀 모르고 한국어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곳들 또한 존재한다. 하지만 그 밖으로 나가는 순간 불편)






언어를 배울 때

언어를 배울 때 혼자 공부하는 사람이 있고 다른 사람과 같이 공부하는 사람이 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혼자 집에서 문법책 놓고 공부하는 사람이 있고, 외국인들과 그 나라 언어를 쓰면서 언어를 배우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아무리 백날 문법을 혼자 공부해도, 외국에 나가서 영어로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문장 구성이 잘 안 된다.


영어 공부를 하려면 영어를 써야 한다. 영어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것만큼 영어가 빨리 느는 방법은 없다. 즉, 영어 공부를 하려면 같은 언어를 쓰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재미있는 사실은, 어학 연수를 다녀온 사람이 한국에서 살다 보면 그 언어를 잊어버리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영어 어학 연수를 다녀오는 사람들이 꽤 많은데, 어학 연수를 다녀오고서 하나 같이 이렇게 고백한다. 영어를 계속 까먹는다고 말이다.


영어권 나라에서 외국인들과 대화하면서 살아갈 때에는 생활 속에서 영어를 쓰기 때문에 영어가 늘었다. 그런데 한국에 오고서 영어를 잊지 않겠다며 혼자 영어 공부를 아무리 해보아도 영어를 계속 잊게 된다. 그 이유는 영어 쓸 환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영어를 잘해도 영어를 쓰지 않으면 영어 실력이 줄어든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쓰지 않으면 사라진다. 이때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다. 마치 영어를 계속 쓰려면 같은 언어(영어)를 쓰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신앙을 계속 세우려면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신앙을 둘로 구분해야 하는데, 바로 신앙과 신념이다. 아래의 링크에 신앙과 신념에 대해 설명되어 있다. 신앙은 기독교 신앙이고, 신념은 각 교단의 신념이다. 즉, 교단은 달라도 상관이 없다. 같은 신앙이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이해하면 쉽다. 기독교 신앙을 한국어라고 생각해보자. 교단은 방언이다. 서로 사투리를 쓰더라도 소통은 된다. 물론 아주 특이한 사투리를 쓴다면 못 알아듣겠지만 말이다.) 같은 언어, 같은 신앙만 가지고 있다면 생각이 달라도 소통은 된다. 즉, 신앙을 성장시키려면 기독교 신앙을 가진 다른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혼자만 영어를 쓴다면?

영어를 아주 잘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이 사람이 영어를 아무도 안 쓰는 나라에 와서 살기로 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나면 영어를 잊게 된다. (물론 완전히 잊지 않을 수는 있다.) 네이티브도 마찬가지이다.



신앙의 네이티브라고 한다면, 모태 신앙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또는 주일학교를 통해 믿음을 배운 친구들을 신앙의 네이티브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안 쓰면 그 언어를 잊어버리게 된다.


물론, 네이티브는 다시 그 언어를 쓰기 시작하면 금방 배운다. 신앙도 신기한 것이, 어렸을 때 교회에 다녔던 친구들이 나이가 들어서 주일학교 때를 생각하며 되돌아온 케이스들이 꽤나 많다고 한다. 어렸을 때 교회 다녔던 친구들이 왜 다시 되돌아오는가. 이 부분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볼 법하다.




가나안 성도에 대해서

가나안 성도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다. 교회 안 나간다며 혼자 믿기로 결단한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혼자 신앙을 계속 형성해 나갈 수 있을까? 물론 개중에는 혼자서 어떻게든 신앙 생활을 해나가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Youtube만 가지고 원어민처럼 영어를 배운 사람들이 아주 극소수 존재한다. 그렇다면, 누구나 혼자서 Youtube만 가지고 원어민과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될까? 나는 이에 대해서 매우 회의적이다. 그런데 가나안 성도들이 딱 이런 꼴이다. Youtube 예배로 신앙 생활 하는데 아무런 문제 없다는 거다. 혼자서 유튜브 영상 보고 영어 공부한다는 거랑 똑같다. 그것도 일주일에 한두 시간 보는 게 다다.


영어를 공부하려면 혼자서 유튜브만 가지고는 쉽지 않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혼자서 유튜브만 보고서는 쉽지 않다.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과의 대화가 필요하다. 즉, 공동체와 삶이 필요하다. 외국에서 어학연수를 했다가 한국에 돌아온 뒤 "영어를 쓰는 공동체와 영어를 쓰는 생활 환경이 안 되어서 영어가 퇴보하고 있다"는 그 많은 사람들의 고백이 우리의 신앙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다.





정리하며

외국어를 공부하다 보면, 신앙이 언어를 배우는 것과 꼭 같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처음 신앙을 배울 때는 언어를 배우듯이 교회에서 교리(언어로 치면 문법)을 배우고, 실제로 예배를 드리면서 다른 사람과 공동체를 이룬다.


어렸을 때 배운 것으로 나는 신앙을 다 배웠다고 생각하지만, 나이가 들어 성장하면서 새로운 단어를 배워야 한다. 요즘 아이들은 어휘력이 많이 부족하다고 하는데, 교과서를 읽을 수 없을 수준이라고 한다.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어휘력을 채우듯이 우리는 신앙의 좀더 깊은 면들을 배워나간다. 언어가 달라지는 게 아니라, 그 언어를 우리가 좀더 알아가게 되듯이, 신앙이 달라지는 게 아니라 복음의 깊은 의미를 알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혼자서는 이 언어를 유지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도 혼자서는 유지가 안 된다. 교회 떠나서 혼자 어떻게든 신앙 생활 하겠다던 사람들의 상당수가 신앙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사람들 중 이건 아니라며 다시 교회 나가기로 결심한 사람들도 꽤 많다. (기독교 오픈 카톡방을 보면 그런 사람들이 꽤나 많이 들어온다. 교회 나가고 싶은데, 교회 가기 전에 들어왔다는 사람들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