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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당근 Mar 19. 2024

자기 실현을 위해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Intro

교회에 다니는 목적은 다양하다. 물론, 신실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는 교회에 다니는 목적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 외의 목적 때문에 교회에 다닌다.


그 중에서도 물론 이성을 만나러 교회에 오는 사람들이 많다. 친구를 사귀기 위해 오는 사람들도 많고. 즉, 사교를 목적으로 오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교회의 목적이 예수가 아니라 사교로 바뀌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면 신앙인 중에는 갑자기 현자 타임이 올 수가 있다. 신앙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교회 성도들과의 만남에서는 신앙 이야기를 채울 수 없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신앙이 튼튼한 사람들은 다른 목적을 이유로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을 내쫓아야 된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대충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교회에 다니다 보면 예수를 만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자 만나러 교회 나왔다가 예수를 만나 버리는 바람에 목사가 된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그리고 둘째로, 교회는 누구나 올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어떤 자격을 가지고 오는 게 아니다. 자격이 필요하다면 율법주의로 빠질 수 있는데, 그것은 복음과는 대치가 돠는 가치이다.


이런 다른 목적 중 자기 실현을 위해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있다. 자기 효능감을 느끼기 위해 교회에 다니는 것이다. 오늘은 이것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교회에서 자기 실현을 해도 괜찮을까?

사실 나는 교회에서 자기 실현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특히나 과거 한국 교회의 경우에는 여자들을 위한 자기 실현의 장이었다.


오래 전 한국에서는, 여자는 결혼을 하면 이름을 잃어버렸다. 누구 아내, 누구 엄마로 불리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여자들에게 이름을 찾아주었던 곳이 바로 교회이다. 교회에서 여자들은 이름을 찾고, 여전도회를 하면서 많은 일들을 감당하며 자기 실현을 했다. 교회에서 인정받고 성취감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오늘날에는 사정이 바뀌었다. 여자도 교회 밖에서 성취를 누릴 곳이 많아졌다. 교회 밖에서도 엄마들이 이름으로 불릴 수 있다. 그리고 이제 교회에서 일이 주어지만 이것이 성취가 아니라 불필요한 노동으로 인식되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어쨌든, 교회 밖에서 자기 실현을 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일이 바빠서, 직장이 없어서, 기타 여러 가지 이유로 자기 실현을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교회가 자기 실현의 장을 주는 건 건전하지 않은가. 이게 과거의 내 생각이었다.




교회에서 자기 실현을 하는 사람들

연극

당연히 교회에서 자기 실현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나는 여러 가지 사건을 겪으며 그 생각이 바뀌었다. 아마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게 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내가 아주 오래 전에 쓴 글인데, 이런 내용이 있다. 내가 처음 (겨울) 수련회를 할 때, 수련회 기획서를 나눠주고 며칠이 지난 뒤, 수련회 전날 이런 소리를 선생님에게 들었다. 그 선생님은 거룩한 정의감에 분노하여 이렇게 말했다.


아니, 이번에 왜 연극이 없나요?


이 이야기를 들은 나는 당황스러웠다. 지금까지 아무 이야기 안 하다가 갑자기 수련회 전날 이렇게 이야기하다니? 이제 와서 어떻게 준비하라고? (이게 정확히 수련회 전날이었는데, 수련회 첫째날 밤이었는지는 기억이 확실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다음 수련회 때에는 반드시 연극을 넣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나서 여름 수련회가 되어, 수련회에 연극을 넣었다. 그러자 동일한 선생님이 이렇게 말하는 거다.


아니 왜 사역자는 수련회마다 꼭 연극을 넣나요? 지난 번 사역자도 그러더니..


그때는 아무 소리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매우 당황했다. 아니, 자기가 넣자고 해서 넣었더니 갑자기 이제 와서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연극이 중요해서 수련회 때 연극을 넣자고 한 게 아닌 것이다. 그냥 자기 의견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 의견이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군가가 자기 의견을 들어주는 게 중요했던 거다. 즉, 자기 실현을 느끼기 위해 의견을 위한 의견을 주장했던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교회에서 정의감에 불타 자기 주장을 하는 사람들 중에 이런 사람들이 많다. 나중에 보면 정말 그 의견이 중요했던 게 아니다. 교회 회의 때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나는 결코 그 사람들의 주장을 조목조목 비판하지 않는다. 자기 실현이 좌절되고 비판을 받을 때 커다란 갈등이 생긴다는 걸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율동팀 선생님

이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내가 초등부를 담당할 때였다. 그 부서에는 1년의 3분의 1은 결석하고, 3분의 1은 지각했던 율동팀 선생님이 있었다. 율동이 예배 처음에 있는데 지각하거나 결석을 하는 날에는 율동 교사가 없으니 다른 사람이 대타로 율동을 인도해야 했다. 즉, 1년의 3분의 1만 율동을 인도했던 것이다.


도대체 왜 이런 사람이 율동팀 리더인가 라는 생각을 했었다. 어떻게든 교회에 나오게 하려고 율동팀을 맡긴 것인데, 본인도 좋아해서 하는 거라고 들었다. 교회에서 인정 받고 보여주고 자기 실현을 할 수 있으니까 율동팀 교사라는 직분을 맡은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들어보니 아이들에게 화내고, 물건을 던진다는 소리를 들었다. 아이들에게 가스라이팅을 엄청 심하게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한 번은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지는 한겨울에, "너네 교사 못하겠다"며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나갔다고 한다. 아이들은 울면서 외투도 못 입고 선생님을 따라 나갔는데, 선생님은 그대로 버스를 타고 가버려서 아이들이 한 정거장 넘게 버스를 탄 선생님을 따라 뛰어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교회에서 수련회 주제가 정해지고, 수련회 찬양과 설교, 액티비티 컨셉까지 다 정해진 상황에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전혀 다른 주제로 율동팀을 인도하라고 감동을 주셨어요


물론 나는 그 의견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 일로 그 사람과는 완전히 틀어져서, 교회 안 나오겠다는 둥의 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게 얼마나 웃기는 이야기인가. 기도로 하나님이 감동을 주셨다는 사람이 자기 뜻대로 안 되자 교회 못 나오겠다고 하다니? 자기 뜻이 그렇게 중요한가?


이 사건을 겪고 이 교사가 하도 이해가 안 가서 상황을 살펴보았더니 위와 같은 가스라이팅부터 이상한 사건들을 무수히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이 교사를 교사에서 자르려고 했더니, 이렇게라도 교회에 나오게 해야 한다는 여론에 부딪쳤다. 한 사람의 영혼이 얼마나 귀하냐는 거였다. 그 사이에 아이들 영혼은 몇 사람이나 죽어 나갔다.


예를 들어서, 공과 시간에 아이들 손바닥을 볼펜으로 찍어 피가 나게 만든 일이 있었다고 한다. 아이들이 아프다고 하자, "예수님은 더 아프셨어" 라는 소리를 했다고 한다. 자기 정의감 같은 것에 빠져서 자기는 신앙 교육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이들은 그 선생님 밑에서 교회를 지옥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자기 실현을 위해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잘못된 이유

자기 실현을 위해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자기 효능감을 느끼는 게 중요하다. 뭔가 보람을 느끼고, 나는 중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저런 사람들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것이 교회가 해줘야 하는 일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이 잘못된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

첫째로, 자기 실현을 위해 교회에 다니는 것은 목적에 문제가 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내 뜻을 위해,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 교회에 다니는 것이다. 이것을 성경은 우상숭배라고 한다.


출애굽기에 보면,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언약 관계를 맺기 위해 모세를 부르시는데, 그 사이에 이스라엘이 우상숭배를 한다. 황금 송아지를 섬긴 것이다.


그런데 이때 이스라엘이 했던 우상숭배란 무엇인가?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을 떠난 게 아니다. 이스라엘은 황금 송아지를 여호와 하나님이라 부르며 예배한 것이다. 즉, 하나님이 명령하지 않은 방식으로 예배를 드린 것이다. 즉, 십계명 1계명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대상에게 예배한 것이고, 2계명은 하나님을 예배하되 잘못된 방식으로 (형상을 만드는 방식으로) 예배를 드린 것이다. 1계명과 2계명 모두 우상 숭배라고 부르지만, 정확하게는 2계명이 우상 숭배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상 숭배의 목적이다. 우상 숭배는 나를 위해서 드리는 예배 방식이다. 출애굽기의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를 위해서 무시무시한 여호와 하나님을 황금 송아지라는 다루기 쉬운 형상에 가두려 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상 숭배란 자기를 위해 섬기는 것이다. 부자가 되기 위해 맘몬을 섬기거나,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에 교회 다닌다는 명목으로 번영신학이나 기복주의를 가지는 것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해 섬기는 우상 숭배이다.


그리고 자기 효능감을 위해 교회에서 봉사를 하는 것도 우상 숭배가 될 수 있다. 위에 열거된 사람들처럼, 이 사람의 목적은 교회 공동체나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지휘나 반주를 맡기지 않으면 교회를 떠난다거나, 자기 의견이 수용되지 않으면 화를 내는 사람들은 자기 효능감에 잠식되어 하나님을 잘못 믿지는 않은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두 번째 이유

둘째로, 이 사람들은 자기만 넘어지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넘어지게 한다. 황금 송아지를 만든 이스라엘만 해도 그렇다. 자기들만 우상 숭배를 하는 게 아니라 아론까지 끌어들이지 않았던가?


또 이 사람들은 스스로는 정의감에 불타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다. 자기 목소리만 중요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묵살한다. 자기 자신만 중요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배려하거나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공동체가 깨지거나 불화가 생긴다.




스스로를 돌아보기

자기 실현을 위해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를 교회에서 채우고 싶은 것이다. 세상이 얼마나 각박하면, 교회에서 이렇게까지 인정을 받고 싶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마음가짐은 스스로와 교회 공동체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만약 스스로가 교회 안에서 언제나 칭찬을 받고 싶다면 스스로를 점검해보자. 내가 교회에 다니는 이유가 자기 효능감을 누리고 싶어서라고 생각된다면, 복음을 좀더 깊이 공부해보자. 복음은 그런 마음에서 해방시켜줄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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