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는 사람이 없는 걸까요?
교회를 버린 가나안 성도든 또는 신앙을 버린 전 기독교인이든 이야기를 들어보면 꼭 교회 다니는 사람들 이상하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 교회에 왜 이렇게 이상한 사람들이 많냐는 거다. 그만큼 사람이 싫어서 교회를 떠난 사람들이 많다. 교회에 사랑이 없다는 거다. 하지만 사실 나는 그 사람들을 볼 때마다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참 많았다. 이번에는 그 중에 몇 가지만 해보려고 한다.
언젠가 포스팅한 적이 있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 가족끼리도 다르다. 그렇다면 우리는 나와 다른 이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여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쉬운 방법이다. 나와 다르기 때문에 미친 사람으로, 이상한 사람으로 바라보고 마는 것이다. 요즈음에는 이런 방식을 취하는 사람이 많다. "너, T발 C냐?"면서 T 성향의 사람을 끊어내는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이다. 남녀를 갈라치기해서 남자는 모조리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하고, 같은 학교에 다니는 것조차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른 세대와 mz 세대를 나눠서, 서로 너무 다르니 떨어져서 살아야 할 것처럼 분리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의 정치 성향을 마치 악처럼 취급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으면서도 쉬운 방법이다.
이것은 쉽지만 정말 어리석은 방법이다. 자기 자신을 조그마한 상자 안에 가두고 그 안에서만 사는 방식이다. 이런 사람은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이 사람의 사고는 언제나 확증 편향을 일으키게끔 되어 있다. 왜냐하면, 나와 다른 생각은 들어보거나 포용할 생각을 할 수 없는 마인드이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다른 사람을 포용해야 한다>는 캐치프레이즈를 가진 사람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생각이기도 하다. 바로 다원주의의 오류이다.
다원주의의 오류란, <다른 존재는 틀리고 나만 맞는다>라고 하는 배타주의를 거절하는 배타성을 가진다. 즉, <다른 존재는 틀리고 나만 맞는다고 생각하는 모든 다른 사람은 다 틀리고 나만 맞는다>라고 하는, 쉽게 말해 <다원주의 외의 모든 것을 배타적으로 거절하는 배타성>을 보인다. 결국 이것은, <내가 가진 다원주의라는 전제주의를 제외한 모든 전제주의는 틀렸다>는 모순과 오류를 보여준다.
다른 사람을 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비슷하다. 이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포용하지 못하는 사람은 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범죄자의 인격도 포용하느라 범죄자가 정직한 사람보다 (감옥 안에서) 더 잘 먹고 잘 사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그리고 범죄자의 인격을 존중하지 못하면 비인격적이라는 말을 들으며 포용되지 못한다.
두 번째 방법은 좀 어려운 방법이다. 나와 다른 사람을 필요한 사람, 사랑 받아야 할 사람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참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갈등을 겪겠지만 우리의 지평이 넓어질 수 있다.
나는 교회에 사랑이 없고, 이상한 사람이 많다는 이유로 떠나는 사람들을 이해는 한다. 하지만 사실 이 말은 모순된 말이다.
교회에 다니다 보면, 사회에서는 보기 어려운 이상한 사람을 만날 때가 많다. 뾰족하거나, 말투가 사납거나, 성격이 어둡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싸움을 자주 걸거나 하는 그런 사람들이 꽤 많다. 사회에서 만났다면 상종도 하지 않았을 그런 사람들 말이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같은 교회에 다니다 보니 섞어야 하는 불편함이 꽤 존재한다.
사회에서 적응을 못 하는 사람들이 교회에 참 많이도 온다. 사실, 사회에서 적응을 못해서 찾아오는 곳이 교회이기는 하다. 특히 개인 체험으로 이야기하면, 대형 교회보다는 작은 교회에 그런 사람들이 많다. 대형 교회에서 적응 못 한 사람들이 작은 교회에 와서 분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자기 밖에 모르고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교회에 남아 있는 걸 보면 깜짝 깜짝 놀라곤 한다. 나라면 상종하지 않았을 사람들이 멀쩡히 교회에 잘 적응하고 다니는 거다. 물론 새로운 사람들이 오면 그 사람들 때문에 상처 받고 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가 이 사람들을 안 내쫓는 걸 보면 더 놀라운 마음이 들곤 한다. 다른 곳에서 안 받아줄 사람, 피해를 보더라도 우리니까 보듬어주겠다는 거다.
이 사람들은 대형 교회 같은 곳에 가면 대체로 적응하지 못하고 나온다. 자기들도 여기서는 사랑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걸 알기 때문이다. 어느 교회를 가도 적응하지 못하고 떠돌아 다니던 이 사람들이 놀랍게도 적응하는 교회가 있다.
이런 이상한 사람들, 자기 밖에 모르는 사람들,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매력이 없다. 누가 보더라도 싫어할 만하다. 교회에서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어떻게 교회에 사랑이 없냐"고 소리칠 법하다. 이 사람들 때문에 성도들이 나가는 소리를 여러 번 듣는다. "A 성도 때문에 이번에 새로 온 B 성도도 상처 받고 나갔어요" 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아무리 열심히 케어를 해도 (교회는 잘 나오지만) 잘 바뀌지 않고 그때뿐인 이 사람들을 어떤 식으로는 내쫓지 않고 보듬어주는 교회를 볼 때마다 나는 놀라곤 한다.
그리고 나는 그 교회를 <주님의 사랑이 넘치는 놀라운 교회>라고 생각한다. 아무도 감당 못할 어긋나고 비정상적이고 이상한 사람들을 감당해내는 교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성도들을 볼 때마다 감탄하고 존경하게 된다.
남에게 상처를 주거나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어떻게든 포용하는 사랑이 넘치는 교회들이 있다. 이런 교회는 다른 교회가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케어할 정도로 사랑이 넘치는 교회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런 교회를 경험하고 나서 "교회에 사랑이 없다", "나는 사람에 데여서 교회를 안 나간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 이제 내 눈에 저 사람들이 어떻게 보이겠는가? 교회가 사랑이 없는 것인가, 아니면 교회에 사랑이 없다며 교회를 나간 사람이 사랑이 없는 것인가?
물론 나는 사람이 치여서 교회를 옮긴 사람들을 이해한다. 정말로 감당하기 힘든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그리고 <사랑은 많지만 지혜가 없는 교회>도 참 많다.
하지만 오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나와 비슷한 사람, 내가 좋아할 수 있을 정도로 매력적인 사람, 선한 사람, 모범적인 사람,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사람만 포용하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은 배척하는 그런공동체에 속할 것인가. 아니면 나와 다른 사람, 내가 좋아할 매력이 하나도 없는 사람, 남에게 상처주는 사람,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계속 갈등을 일으키는 사람, 이상한 사람, 때로는 미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을 포용하고있는 힘든 공동체에 속할 것인가. 이 둘 중 어느 정도 사랑의 공동체인가?
물론, 이 이후에는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말로 남을 상처 주던 사람이 계속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