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ty in diversity
나는 보통 이 내용을 설교 또는 특강으로 하곤 한다. MBTI를 공부하고 자격증을 땄다면, MBTI를 하기 전후에 이 내용으로 특강을 하겠지만, 아쉽게도 MBTI에 대해서는 부분적으로만 안다. 대신에 기질(다혈, 담즙, 점액, 우울)이나 DISC에 대해서는 여러 권의 책을 읽는 것으로 각 내용을 숙지하여 종종 강의를 하곤 했다. 전체 강의 시간은 테스트, 조별 과제를 포함하여 2시간 정도 선이다.
하나님 나라 오케스트라는 서로 다른 악기가 하나의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내듯이, 서로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아름다운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간다는 이야기를 다룬다. 서로의 신념이 다르지만 각 교단이 나름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과 같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교회 안에서도 필요 없어 보이는 <저 사람>이 실제로는 그 공동체에 매우 요긴한 사람이다.
그래서 이번 포스팅은 고린도전서 12-14장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지만, 여기서 다 읽을 수는 없으니 사랑장이라 불리는 고린도전서 13장 중에서도 일부만 보도록 하자.
고린도전서 13:9–13 “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아마 혈액형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이것을 얼마만큼 믿을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보통 유사과학이라고 부른다) 각 혈액형별 특징은 이렇다. 네 사람이 밥 먹고 있을 때 각 혈액형 별 특징이다.
ㄱ. 한 사람이 갑자기 뛰쳐나간다. - AB (이해할 수 없는 성격이다)
ㄴ. 다른 한 사람이 그 사람을 따라 뛰어 나간다. - O (호기심이 많아서)
ㄷ. 또 다른 한 사람이 망설이다가 따라 나간다. - A (소심해서)
ㄹ. 세 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혼자 먹는다. - B (다른 사람을 신경쓰지 않는 성격이라)
→ 우리가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사람은 다 다르다.
초등학생 때 나는 세수하는 법이 왜 그러냐고 혼난 적이 있다. 그러면서 내가 따라할 수 없는 방법을 아버지에게 배운 적이 있다.
중학생 때에는 아버지가 라면을 끓여주셨는데, 아버지는 다 불어버린 라면을 좋아하시는 거다. 그래서 나는 새로 라면을 끓여야 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치약을 짜는 걸로 혼난 적이 있었다. 끝에서부터 짜야지 왜 중간을 쿡 눌러서 짜냐는 거였다.
가족끼리도 습관이나 생각, 취향이 이렇게나 다르다.
사람은 다 다르다. 그런데 여기에서 두 가지 반응이 나온다. 나와 다른 사람은 정신병자라고 생각하고 말 것이냐, 아니면 맞추어갈 것이냐
심리학의 아버지 “프로이트”는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들을 진료하면서, 왜 이 사람에게는 이런 문제가 있는가를살피고 분석해서 책을 썼다. 바로 <꿈의 해석>이다.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심리학을 잘못 공부하면, 나와 다른 모든 사람을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하고 정죄하게 된다. 심리학을 전공한 학생들 중에도 사람을 계속 유형에 맞추다 보면 "쟤는 저리니까"라는 생각에 쉽게 빠진다고 한다. "너는 T니까" 또는 "너는 F니까"라는 말로 정죄하는 분위기가 이것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성경은 뭐라 말할까? 고린도전서 12-14장을 살펴보자.
고린도전서 12장을 보면, 우리의 하나님은 한 분, 우리의 머리이신 예수님도 한 분, 우리에게 은사를 주시는 성령님도 한 분인데 왜 우리는 이렇게 다르냐고 묻는다.
한 분 하나님을 믿는데 우리는 너무 다르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은사도 너무 다양하다.
한 분 하나님을 믿는데(신앙), 왜 우리의 생각은 이토록 다양하냐(신념)고 질문하는 사람도 많다. 그 단적인 질문이, 왜 교회는 교단이 이렇게 많냐는 거다. (신앙과 신념에 대해서는 아래의 링크를 참조하도록 하자.)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렇게 다양한가? 고린도전서 12장에 의하면, 서로를 유익하게(돕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린도전서 12장은 가장 큰 은사가 있다고 결론 짓고 끝난다.
그렇다면 가장 큰 은사란 무엇인가? 바로 "사랑"이다. 사랑 없이는 모든 은사가 다 아무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은사를 주신 목적 자체가 “서로 돕고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즉, 고린도전서 12장은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을 말하기 위한 디딤돌 역할을 하고 있다. 그 논리구조를 간단하에 요약하면 이렇다.
고린도전서 12장
1) 왜 하나님은 한 분인데 우리는 이렇게 다르고 우리 은사는 이렇게 다른가?
2) 서로에게 유익이 되도록 서로 다른 은사를 주신 거다.
고린도전서 13장 1-8절
3) 그렇기 때문에 서로 사랑하지 않고, 서로를 돕지 않으면 이 은사들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고린도전서 13:9–13은 이렇게 말한다. 아까 보았던 것이지만 다시 살펴보자.
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이것을 요약 정리하면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다.
ㄱ.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한 지금도 우리는 서로를 100% 이해하지 못한다. 서로 미워하기도 하고 우리 사이에도 다툼도 있다. 심지어 한 하나님을 섬기는 한 몸 교회 안에서도, 그리고 가정 안에서도 다툼이 있다.
ㄴ. 하지만 그날(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히 임할 때)에는 우리는 서로를 완전하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세 가지 영원한 것이 있다. 바로 믿음, 소망 사랑이다.
그렇다면 본문에 근거해서 믿음, 소망, 사랑이란 무엇이낙?
믿음이란,
우리가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세상,
하나님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세상을 위해
하나님께서 이미 일하셨다는 믿음 (천국에 대한 믿음)을 말한다.
소망이란,
언젠가 우리의 지체를 우리가 완전히 이해하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날을 주실 것이라는 소망 (천국에 대한 소망)을 말한다.
사랑이란,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도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고,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이곳에 하나님 나라 건설)이다.
좀 어려운가? 다시 설명해보겠다.
ㄱ. 믿음이란, 우리가 서로 사랑하도록 하나님께서 이미 일하셨다는 믿음이다. (예수의 사역 등)
ㄴ. 소망이란, 우리가 서로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나라에 대한 소망이다.
ㄷ. 사랑이란, 그렇기에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 결국 믿음도 소망도 사랑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이중 제일은 “사랑”이다.
고린도전서 14장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ㄱ.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은사들을 구해야 한다.
ㄴ. 그리고 우리가 구해야 하는 우리의 은사는 교회의 덕을 세우고 다른 지체를 섬기는 것이 되어야 한다.
세상은 나와 다른 사람을 <어딘가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본다. 그 단적인 예가 왕따이다. 나와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괴롭히고 왕따 시키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어디서든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성경은 저 사람이 나와 다른 이유가, 우리가 서로 더 잘 사랑할 수 있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으로 본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더 잘 사랑하고 더 잘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보통 나는 위의 설명이 끝나면 기질 테스트 및 그에 대한 설명을 한다.
오케스트라의 악기를 생각해보자. 악기들마다 음색도 다르고 높낮이도 다르다. 서로 다른 박자, 음정, 소리를 맞추는 방법이 있다.
ㄱ. 그 첫 번째는 악보이다. 오케스트라는 악보를 기준으로 연주를 한다.
ㄴ. 두 번째는 지휘자이다. 지휘자의 지휘에 맞춰서 연주자들은 연주를 해야 한다. 만약 지휘자의 지휘를 무시한다면, 불협화음이 날 것이다.
ㄷ. 세 번째는 조율이다. 보통 수석 오보에 연주자가 음을 만들면 그에 따라 조율을 한다.
친구 중에 예술의 전당 국립 합창단 소속이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들 이미 노래 잘 부르는 사람들인데도 매일 몇 시간씩 모여서 서로 목소리를 맞추는 연습을 한다고 들었다.
오케스트라도 마찬가지다. 절대음감도 많고, 다들 실력 뛰어나다. 하지만 그런데도 각 악장마다 새로이 악기의 음을 조율한다. 바로, 소리가 조화를 이루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만약 오케스트라를 하는데 각 악기의 음이 조율되어 있지 않고, 합창을 하는데 합창단원들이 서로 목소리를 맞추지 못하면 그 음악은 음악이 아니라 소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서로 다르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이지만, 모일 때마다 시끄럽고 싸움이 나고 갈등이 생기며 상처를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조율이 필요하다.
교회에서는 두 가지를 가지고 조율해야 한다. 하나는 성령이고, 다른 하나는 사랑이다. (사실 고대에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니라"라고 할 때 성령을 사랑으로 보았다. 즉, 결국 한 가지라고 말할 수도 있다.)
가장 먼저 우리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기준은 바로 성령이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말씀(성경)과 기도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생각과 의견을 그냥 무작정 말하는 게 아니다. 성경적 원칙에 근거하여 말한다. 각 교단의 법조차도 나름대로 성경을 근거로 한다. 교회의 여러 가지 문제 또한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방법들을 기준으로 삼는다. 우리가 법을 말할 때 헌법이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처럼, 교회의 다양한 규범들은 그 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 성경을 근거로 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서로를 위해 기도해주어야 한다. 다른 사람이 불협화음을 낸다는 이유로 쉽게, 그리고 함부로 상처받는 말로 지적해서는 안 된다. 기도로 그 사람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서로를 지지해주어야 한다.
결국 사랑이다. 고린도전서 12-14장에 말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고린도전서 12장에, 우리가 서로 다르고 우리의 은사가 서로 다른 이유를 서로를 사랑하기 위해서이고.
고린도전서 13장에,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며.
고린도전서 14장에, 서로를 사랑하기 위해, 서로를 세워주기 위해 은사를 사용해야 한다.
다시 오케스트라를 생각해보자. 우리 안에 성령이 목소리를 내시고, 또 사랑이 있을 때 우리는 하나의 화음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내 생각만 있을 때 불협화음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 오케스트라이다.
천국에 갈 때까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날은 오지 않는다. 하지만 서로를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과 사랑만 있으면 그래도 어느 정도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직 완전히 사랑하고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이미 이해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