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빈자리를 채우는 섭리

김시로의 퇴장과 초기 행정 시스템의 부재

by 초덕 오리겐

1. 개척의 열기가 가라앉은 아침


2020년 10월 31일의 밤은 뜨거웠다. 종교개혁의 후예라는 정체성 아래, 오리에탈과 흰수염고래, 그리고 김시로가 0과 1의 세계에 세운 '기문나모(기독교 문화 나눔 모임)'의 뼈대는 거창하고도 순수했다. 익명성이라는 방패를 들고 오직 진리만을 논하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엔진룸(임원방)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개척의 흥분이 가라앉고 맞이한 현실의 아침은 차갑고 무거웠다. 온라인 공동체는 오프라인 교회처럼 일주일에 한 번, 정해진 시간에만 문을 여는 곳이 아니었다. 스마트폰의 전원이 켜져 있는 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은 24시간 내내 멈추지 않고 굴러가는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와 같았다.


전국 각지에서, 각기 다른 교단적 배경과 신앙의 색깔을 가진 익명의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순수한 교제를 원했고, 누군가는 자신의 신학적 지식을 과시하려 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그저 논쟁을 위한 논쟁의 대상을 찾고 있었다. 아직 명문화된 규칙도, 이를 통제할 행정 시스템도 부재했던 초기 기문나모는 그야말로 '야생'에 가까웠다. 은혜를 나누고자 만든 공간이 순식간에 난상토론의 장으로 변질될 위험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었다.




2. 열정의 한계와 행정의 부재


오리에탈은 공동체의 큰 그림을 그리는 설계자였고, 흰수염고래는 굳어가는 분위기에 활력을 불어넣는 분위기 메이커였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역할만으로는 매일같이 쏟아지는 실무적 위기들을 감당할 수 없었다.


신학적 이견이 충돌할 때 이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누군가 무례한 언사를 사용할 때 경고의 기준은 무엇인가?


새로 들어온 지체들에게 이 방의 목적을 어떻게 안내할 것인가?


이 모든 것은 철저히 '행정(Administration)'의 영역이었다. 개혁주의 교회 정치 원리에 따르면, 교회는 말씀 사역자만으로 세워지지 않는다. 말씀을 보존하고 성도를 돌아보며 질서를 치리하는 장로와 집사의 직분이 필수적이다. 아무리 올바른 개혁주의 신학을 표방한다 할지라도, 그것을 담아낼 '질서의 그릇'이 없다면 은혜는 바닥으로 쏟아져 버린다. 초기의 기문나모는 훌륭한 신학적 비전을 가졌으나, 그것을 일상적으로 유지할 행정적 매뉴얼이 철저히 부재했다.


알람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울렸다. 오리에탈과 고래는 각자의 생업과 일상이 있었음에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한 채 몰려오는 파도를 맨몸으로 막아내야 했다. 열정만으로는 시스템의 부재를 영원히 메울 수 없다는 뼈아픈 현실을 직면하는 시간이었다.




3. 세 번째 징검다리, 김시로의 퇴장


이러한 혼란의 초기, 엔진룸의 한 축을 담당했던 '김시로'가 조용히 자리를 비우게 된다. 정확한 사유가 텍스트 기록으로 길게 남아있지는 않으나, 온라인 사역의 특성상 각자의 삶의 여건이나 소명의 변화에 따라 누군가 떠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면, 창립 멤버의 조기 이탈은 공동체의 위기이자 실패로 간주되기 쉽다. "그것 봐라, 온라인 모임이 얼마나 가겠냐"는 식의 냉소적인 시선이 향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오프라인 교회에서도 헌신하던 일꾼이 떠나면 그 빈자리는 크고 시리게 느껴지는데, 텍스트 데이터에 기대어 서로를 지탱하던 이 가상의 공간에서 동역자의 이탈이 주는 상실감은 결코 가볍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개혁주의적 관점에서 우리는 이것을 '실패'라 부르지 않고 '섭리(Providence)'라 부른다.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서 모든 인간은 그저 도구일 뿐이며, 각자에게 허락된 '때와 기한'(전 3:1)이 있다.


김시로는 기문나모가 가장 처음 태동할 때, 오리에탈과 고래가 '우리 둘만의 사적인 모임'이 아닌 '공적인 임원진'이라는 틀을 갖추도록 만들어준 필수적인 징검다리였다. 그의 합류가 있었기에 모임은 시작될 수 있었고, 그가 자리를 지켜준 짧은 기간 덕분에 공동체는 완전한 무정부 상태로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징검다리를 이루는 돌은 강을 건너는 사람과 평생을 함께하지 않는다. 누군가 다음 돌을 밟고 무사히 건너갔다면, 그 돌은 이미 자신의 거룩한 사명을 다한 것이다. 김시로의 퇴장은 도망이 아니라, 자신의 몫을 다한 파수꾼의 조용한 퇴장이었다.




4. 빈자리를 채우시는 하나님의 섭리


김시로가 떠나고, 초기 시스템의 부재가 맞물리면서 엔진룸의 온도는 위험 수위로 치솟고 있었다. 오리에탈의 원칙과 흰수염고래의 유머만으로는 이 거대한 유기체를 온전히 통제할 수 없음을 절감하던 때였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개역개정).


오리에탈과 임원진은 이 혼란 속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목도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특정한 자리를 비우심으로써, 그 자리에 가장 적합한 은사를 가진 다른 지체를 채워 넣으신다. 만약 초기의 임원진이 완벽하게 톱니바퀴처럼 돌아갔다면, 그래서 그들끼리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그들만의 견고한 성을 쌓고, 외부의 새로운 은사가 들어올 틈을 주지 않는 배타적인 공동체로 전락했을지도 모른다.


행정의 빈자리, 그리고 초기 멤버의 퇴장이라는 '공백'은 역설적으로 기문나모가 더 큰 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여백'이었다. 이 빈자리를 통해, 기문나모는 자신들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들인지, 오직 하나님의 은혜(Sola Gratia)가 아니면 단 하루도 이 온라인 광장을 유지할 수 없음을 철저히 깨달았다.


이 공백의 시간 동안, 하나님은 이미 다음 파수꾼들을 예비하고 계셨다. 감정 소모가 극심한 이 온라인의 바다에서 묵묵히 행정의 닻을 내려줄 사람, 그리고 차가운 텍스트 논쟁에 지친 영혼들을 따뜻하게 품어줄 사람이 수면 아래에서 준비되고 있었다.


오리에탈과 흰수염고래는 당장 눈앞의 쏟아지는 채팅들을 수습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새롭게 합류할 동역자들을 기다렸다. 거친 바람이 부는 디지털 광야 위, 세워진 지 얼마 되지 않은 기문나모의 텐트가 펄럭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 텐트를 붙잡고 있는 것은 임원들의 악력이 아니라, 빈자리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섭리였다.


그렇게, 가장 낮고 조용한 곳에서부터 공동체의 진정한 뼈대를 세워 줄 새로운 선율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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