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31일, 설계자 '오리에탈'과 '흰수염고래'의 첫 걸음
1. 비텐베르크의 망치 소리, 그리고 카카오톡 알람
2020년 10월 31일 토요일. 세상은 온통 기괴한 분장과 소란스러운 파티로 가득한 할로윈의 열기에 들떠 있었다. 하지만 개혁주의 신앙의 유산을 소중히 여기는 이들에게 이 날은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왔다. 1517년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당 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이며 잠들었던 유럽의 영성을 깨웠던 '종교개혁 기념일'이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500여 년이 흐른 2020년의 가을은 잔인했다.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라는 역병은 성도들이 마주 앉아 떡을 떼며 교제하던 '대면의 기쁨'을 앗아갔다. 교회 문은 굳게 닫혔고, 성도의 교제는 비말 차단 마스크와 줌(Zoom)이라는 차가운 화면 뒤로 숨어버렸다. 바로 그날 오후 5시 24분, 고요한 디지털 사막 위에 작은 망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성당의 나무 문 대신 스마트폰의 액정을 두드리는 소리, 바로 '기문나모(기독교 문화 나눔 모임)' 임원방이 개설되는 소리였다.
이 방의 설계자인 '오리에탈'은 개혁주의적 질서에 천착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온라인 공간이 가진 무질서와 휘발성을 경계했다. 수많은 기독교 단톡방이 생겨났다가 이단의 침투나 무의미한 분쟁으로 무너지는 것을 보아온 그는, 공동체를 지탱할 견고한 '엔진룸'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10/31/20 17:24: 오리에탈님이 들어왔습니다.
그는 홀로 방에 앉아 앞으로 이 방을 거쳐 갈 영혼들을 생각했다. 0과 1로 이루어진 가상의 공간이라 할지라도, 그곳에 모이는 이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실재하는 인격체들이다. 오리에탈은 이 공간이 단순히 정보가 오가는 '채팅방'을 넘어, 보이지 않는 교회의 지체들이 연합하는 '거룩한 통로'가 되기를 소망했다.
2. "꼬고댁!" 익숙한 이의 엉뚱한 인사
방이 만들어지고 약 11분이 흐른 오후 5시 35분, 고요하던 엔진룸에 첫 번째 동역자가 발을 들였다. 닉네임 '흰수염고래'. 그는 오리에탈의 진중함과 대조되는 유쾌함과 에너지를 가진 인물이었다. 사실 두 사람은 온라인에서 처음 본 사이가 아니었다. 이미 오프라인에서 서로의 신앙과 인격을 알고 있던 '지인'이었고, 그 깊은 신뢰 관계가 있었기에 이 무모해 보이는 온라인 사역의 동역자로 부름을 받은 것이었다.
10/31/20 17:35: 흰수염고래님이 들어왔습니다.
10/31/20 17:36, 흰수염고래 : 꼬고댁!
10/31/20 17:36, 흰수염고래 : 댁!
10/31/20 17:36, 흰수염고래 : 푸드득...
그의 첫 인사는 의외였다. 장엄한 신학적 선언이나 경건한 기도문 대신, 그는 닭 울음소리를 내며 방 안의 긴장을 단번에 깨뜨렸다. 이미 서로를 잘 아는 사이이기에 가능한 격의 없는 농담이었다. 하지만 이 닭 울음소리는 정체된 온라인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신호탄과 같았다. 오리에탈은 이 엉뚱한 인사에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즉시 이 방의 '첫 번째 철칙'을 선포했다.
*참고로, 이때 기문나모 카톡방에서 흰수염고래의 닉네임은 닭이었다. 그래서 꼬고댁 하고 들어온 것이다.
3. "이름 바꿔" - 본명을 지우고 진실을 새기다
10/31/20 17:37, 오리에탈 : 이름 바꿔ㅋㅋㅋ
오리에탈의 이 짧은 명령에는 깊은 의도가 숨어 있었다. 보통의 지인 단톡방이라면 본명을 쓰는 것이 예의겠지만, 이곳은 달랐다. 오리에탈이 요구한 것은 '본명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었다.
왜 우리는 서로를 잘 알면서도 이름을 가려야 했을까?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더 진실하게 말하기 위해서'였다. 실생활에서의 이름은 사회적 직위, 나이, 교단에서의 위치라는 무거운 외투를 걸치고 있다. 그 외투를 입은 채로는 온라인이라는 거친 광장에서 쏟아지는 날 선 질문과 갈등에 정직하게 응답하기 어려웠다. 본명을 지우는 순간, 우리는 세상의 '누구'가 아닌 하나님 앞의 '단독자'로 설 수 있었다.
또한 그것은 '서로를 향한 보호'였다. 앞으로 임원들은 수천 명의 지체가 모인 공개방에서 때로는 쓴소리를 해야 하고, 때로는 이단을 단호히 쳐내야 하며, 때로는 감투놀이 한다는 조롱을 감내해야 할 터였다. 본명을 숨김으로써 임원들은 오프라인의 삶을 보호받는 동시에, 공동체의 질서를 위해 더 단호하고 객관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성벽'을 얻게 된 것이다.
4. 설계된 익명성: 코람 데오(Coram Deo)의 실천
오리에탈은 흰수염고래에게 이 원칙을 강조하며, 앞으로 들어올 '김시로'를 포함한 모든 임원이 이 규칙을 따를 것임을 분명히 했다.
10/31/20 17:37, 오리에탈 : 다른 한 명도 들어올 거야ㅋ 김시로.
이들은 본명을 숨김으로써 서로에게 더 투명해지기로 약속했다. 사회적인 체면이나 오프라인에서의 관계 때문에 해야 할 말을 못 하는 비겁함을 버리기로 했다. 오직 성경의 원리(Sola Scriptura)만이 이 방의 유일한 권위가 되도록, 사람의 이름이 아닌 하나님의 진리만이 드러나도록 설계한 것이다.
흰수염고래는 이미 유튜브 등을 통해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었지만, 이 임원방에서만큼은 그 역시 '이름 없는 파수꾼' 중 하나가 되어야 했다.
10/31/20 17:38, 오리에탈 : 하기야 너는 유튜브 올렸으니 이름 드러나도 상관없긴 하겠다.
10/31/20 17:38, 흰수염고래 : 아, 임원방이 공개 임원방임?
흰수염고래의 질문은 날카로웠다. 익명성 뒤에 숨어 무책임하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끼리는 철저히 보호하되 밖으로는 질서를 보여줘야 한다는 본질을 꿰뚫고 있었다. 오리에탈은 임원방이 철저히 비공개로 유지되어야 함을 확인하며, 이곳이 '감투'를 쓰는 자리가 아니라 '십자가'를 지는 자리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5. 1화의 마침표: 0과 1의 성소를 향한 첫 맹세
루터가 로마 가톨릭의 권위 앞에 "내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다"고 외쳤던 것처럼, 오리에탈과 흰수염고래는 카카오톡이라는 현대적 도구 앞에 섰다. 그들은 지인이라는 편안함을 내려놓고, '이름 없는 임원'이라는 무거운 소명을 받아들였다.
본명을 숨긴 자들의 진실한 대화. 그것이 기문나모 엔진룸의 시작이었다. 텍스트 데이터가 오가는 전선 줄 사이로 성령의 교통하심이 흐를 수 있도록, 그들은 기꺼이 자신의 사회적 정체성을 지우고 0과 1의 바다로 뛰어들었다.
비록 시작은 "꼬고댁"이라는 싱거운 농담이었지만, 그 뒤에 숨겨진 결의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서로를 보호하고, 서로에게 정직하며, 오직 하나님 나라의 질서만을 세우겠다는 이들의 첫 약속은 앞으로 이어질 2,000일 대장정의 든든한 주춧돌이 되었다.
엔진룸의 불빛은 그렇게 첫날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켜져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채팅 기록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가 디지털 영토로 확장되는 거룩한 서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