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막간극 ③] 상담의 어머니 주아

: “비판보다 중요한 것은 영혼을 향한 긍휼이다” (정서적 케어)

by 초덕 오리겐

1. 감정의 배설구를 성소의 입구로 바꾸는 일


기문나모의 상담 채널은 때로 통제 불가능한 감정의 홍수가 밀려드는 하수종말처리장과 같았다. 익명성이라는 가면은 사람들에게 평소 오프라인 교회에서는 차마 꺼내지 못했던 추악한 죄의 고백과, 하나님을 향한 원망, 그리고 삶에 대한 극단적인 비관을 쏟아낼 용기를 주었다. 그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감정들이 가장 먼저 도달하는 곳, 그곳에는 늘 ‘주아’가 있었다.


그녀에게 상담은 단순한 조언이 아니었다. 그것은 타인의 고통 속에 자신의 영혼을 밀어 넣는 ‘대속적 경청’에 가까웠다. 사람들은 정답을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었다. 개혁주의 신학의 정답은 이미 도처에 널려 있었다. 그들이 주아를 찾는 이유는, 그 정당한 ‘정답’이 자신의 비참한 ‘현실’을 정죄하지 않고 품어줄 수 있다는 증거를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주아는 그 증거가 되기 위해 매일 밤 자신의 감정을 깎아 지체들의 눈물을 담을 그릇을 빚었다.




2. 상한 갈대를 꺾지 않는 신학


주아의 상담 철학은 철저히 개혁주의적 인간론에 기반을 두었다. 그녀는 모든 인간이 전적으로 부패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깊이 신뢰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교리를 ‘몽둥이’로 쓰지 않았다. 대신 ‘청진기’로 썼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마 12:20, 개역개정)


그녀는 지체들이 쏟아내는 거친 말과 불신앙적인 태도를 ‘교정에 대상’으로 보기 전에 ‘상처의 비명’으로 읽었다. 죄인인 인간이 죄악된 세상에서 겪는 비참함은 당연한 결과이지만, 그 당연한 결과가 주는 통증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그녀는 알았다. 주아는 신학적 정합성을 따지기 전에 그들의 아픔에 먼저 “그츄, 정말 아프죠”라고 반응했다.


이것은 감상주의가 아니었다. 죄인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성도의 견인’을 상담의 현장에서 실천하는 것이었다. 주아는 지체들이 자신의 비참함을 충분히 토해낼 수 있도록 기다려주었고, 그 배설된 감정들이 가라앉았을 때 비로소 그 빈자리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조심스럽게 채워 넣었다.




3. ‘상담자’라는 감투를 벗어던지다


온라인 상담의 가장 큰 유혹은 상담자가 ‘영적 스승’의 위치에 서는 것이다. 누군가의 인생에 개입하고 영향을 미치는 과정에서 느끼는 짜릿한 권위는 이른바 ‘감투놀이’의 가장 교묘한 형태다.


주아는 이 지점에서 자신을 철저히 지웠다. 그녀는 상담이 끝난 뒤 지체들이 자신을 기억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녀는 늘 상담의 마지막에 주권을 하나님께 돌렸다.


“제가 한 건 아무것도 없어요. 하나님께서 당신의 마음을 만지셨을 뿐입니다.”


그녀는 상담 과정에서 자신이 받은 은혜를 ‘자기 것’으로 취하지 않았다.


그녀는 임원방 내부에서도 자신을 높이지 않았다. 다른 임원들이 신학적 승리를 거두거나 방의 질서를 세우는 일에 집중할 때, 주아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상처 입은 이들의 뒷수습을 맡았다. 화려한 승전고 뒤에 남겨진 부상병들을 돌보는 야전 병원의 간호사처럼, 그녀는 기문나모의 영적 건강을 밑바닥에서부터 지탱했다. 그녀에게 익명성은 ‘나’라는 우상을 죽이고 ‘그리스도’라는 위로자만을 드러내는 가장 안전한 장치였다.




4. 밤을 지새우는 중보의 무게


주아의 사역은 상담 텍스트가 멈춘 뒤에도 계속되었다. 그녀는 상담했던 지체들의 아이디와 그들의 고민을 메모장에 기록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 텍스트는 휘발되지만, 그 영혼이 겪는 고통은 여전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가장 힘든 순간은 자신의 한계를 마주할 때였다. 어떤 고민은 인간의 말로 위로가 불가능했고, 어떤 죄는 너무나 깊어 감히 조언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럴 때 주아는 자신의 무능함을 안고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


“주님, 저는 이 지체를 살릴 능력이 없습니다. 오직 성령께서 저 영혼의 죽은 마음을 살려주옵소서.” 이러한 겸손한 호소는 주아의 상담에 영적인 무게감을 더해주었다.


그녀의 상담이 따뜻했던 이유는 그녀가 상담 기술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 영혼을 위해 실제로 눈물을 흘려본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주아는 기문나모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자칫 차가운 기계처럼 돌아가지 않도록, 매일 자신의 눈물로 엔진에 기름을 쳤다.




5. 기문나모의 정서적 요새, 주아


오리에탈이 법을 세우고, 고래가 웃음을 주고, 낮은선율이 질서를 잡았다면, 주아는 그 모든 것이 흘러갈 수 있는 ‘강물’이 되었다. 그녀가 있었기에 기문나모는 “옳은 말만 하는 곳”이 아니라 “사랑이 있는 곳”이 될 수 있었다.


주아는 0과 1의 세계에서도 인격적인 교제가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진심을 담은 텍스트는 모니터를 넘어 상대방의 심장에 닿는다는 것을 그녀는 몸소 보여주었다. 그녀는 여전히 닉네임 뒤에 숨어 “그츄”라는 짧은 말로 누군가의 하루를 살려내고 있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오직 하나님의 긍휼만을 전달하는 그녀의 손길이 있기에 기문나모의 광장은 오늘도 따뜻한 소망의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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