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율법인가 가이드인가

규칙이 ‘사람’보다 앞서기 시작할 때 느끼는 임원들의 첫 번째 고민

by 초덕 오리겐

1. 성벽의 설계: 최소한의 안전장치


2020년 10월 31일, 0과 1의 디지털 사막 위에 기문나모라는 이름의 영적 텐트가 세워지던 날. 설계자 오리에탈을 비롯한 초기 파수꾼들이 가장 먼저 마주한 숙제는 다름 아닌 '질서'였다. 자유주의 신학이 난무하던 오픈카톡방 광장에,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 그대로 믿는 보수적인 신앙이라는 선명한 깃발을 보고 전국 각지에서 익명의 지체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 뜨거운 열정은 아름다웠으나, 자칫하면 무분별한 신학적 난상토론이나 이단의 교묘한 포교 무대로 전락할 위험이 다분했다. 성소를 짓기 위해서는, 외부의 이리 떼를 막아낼 튼튼한 성벽이 먼저 필요했다.


[10/31/20 21:18] 오리에탈: 저희가 해야 할 일을 살짝 정리하면, 카톡방 질서 유지입니다. 1. 이단 및 어그로 끄는 사람들 강퇴 처리 2. 분쟁 조절


이 명료하고도 건조한 두 가지 원칙은 기문나모의 성벽을 쌓는 첫 번째 기초석이 되었다. 질서가 없으면 아무리 귀한 은혜라도 깨진 독에 물 붓기처럼 새어 나간다는 뼈아픈 현실 인식 때문이었다. 그러나 성벽의 벽돌이 한 층씩 높아질수록, 임원들은 예상치 못한 한기에 몸을 떨어야 했다. 안전을 위해 세운 규칙들이 점차 거대해지면서, 그 성벽 안에 거하는 '사람'의 따뜻한 숨소리보다 '법'이 내뿜는 서늘한 금속음이 먼저 엔진룸을 채우기 시작했던 것이다.




2. 정치와 신념, 그리고 혐오의 경계


당시 한국 사회는 전염병의 창궐과 함께 극심한 정치적 양극화의 홍역을 앓고 있었다. 그 거친 광풍은 0과 1의 공간이라고 해서 비껴가지 않았다. 특정 정치적 신념을 마치 구원받은 자의 유일한 증거인 양 포장하며, 자신과 의견이 다른 형제를 날 선 언어로 정죄하는 이들이 방 안을 어지럽혔다.


[11/2/20 08:36] 오리에탈: 저는 참 좌파나 우파나 할 것 없이 정치와 신앙을 착각하면서 비난하는 사람들이 답답하네요. 자기들 정치 신념만 옳고 예수께서 자기들 정치 세력만 옹호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이 지점에서 임원진은 첫 번째 실존적 딜레마에 부딪혔다. 과연 어디까지가 세상을 향한 '거룩한 분노'이고, 어디서부터가 공동체를 파괴하는 '혐오와 비난'인가? 신앙의 이름으로 포장된 정치적 발언들을 솎아내기 위해, 임원들은 매 순간 규칙이라는 법전을 뒤적여야 했다.


치리를 위해 메시지를 분석하고 경고를 날리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파수꾼들은 어느덧 형제의 발을 씻기는 종이 아니라 그들의 신앙을 채점하는 재판관의 자리에 앉아 있는 자신들을 발견했다. 정답을 강요하고 어긋난 자를 베어내는 율법주의의 어두운 그림자가, 개혁주의라는 빛나는 이름의 뒤편에서 길게 늘어지고 있었다.




3. '대화가 통하지 않는' 지체에 대한 두려움


질서를 수호하겠다는 강박은 때로 특정 지체에 대한 '선제적 배제'로 흐르는 위험을 낳았다. 논리와 상식이 통하지 않고 자기 말만 반복하는 이른바 '고구마' 같은 상대를 마주할 때면, 영혼을 향한 애통함이나 도고기도보다는 규칙이라는 칼을 빼 들어 단숨에 상황을 종료하고 싶은 유혹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11/2/20 08:26] 흰수염고래: 진보든 보수든 서로 논리적 대화만 가능하면 되는데 왠지 저 분은 대화하면 빙빙 돌거 같은 느낌이 살살 드네요
[11/2/20 08:33] 오리에탈: 그러면 그냥 말 섞지 마세요ㅋㅋㅋ 괜히 감정 낭비입니다.


이 대화는 24시간 쏟아지는 알람 속에서 엔진룸의 과부하를 막기 위한 지극히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조언이었다. 하지만 영적인 관점에서 이는 매우 아슬아슬한 줄타기였다. '우리와 논리적으로 말이 통하는 사람'만을 선별하고, 그렇지 못한 자들은 은연중에 방치하거나 밀어내려는 배타적 공동체로 변질될 수 있는 신호였기 때문이다.


가이드라인은 길을 잃은 사람을 돕기 위해 존재하는 지팡이여야 함에도, 어느덧 그 지팡이가 사람의 자격을 심사하는 몽둥이로 쓰이고 있었다는 사실이 임원들을 짓눌렀다.




4. 지식의 저주: "이론으로만 아는 사랑"


개혁주의 교리의 순수성을 수호하겠다는 열정은 때로 지식의 저주가 되어 임원들의 발목을 잡았다. 이단적 사설을 방어하고 성경의 진리를 치밀하게 변증하려다 보니, 정작 그 위대한 텍스트가 가리키는 본질인 '그리스도의 사랑'을 잃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 논쟁 끝에 남겨진 오리에탈의 뼈아픈 자기 성찰은 임원방 전체에 묵직한 파문을 던졌다.


[2/26/21 16:04] 오리에탈: 이론으로만 하나님을 알고 이론으로만 사랑을 아는 사람이에요ㅎㅎ 교만한 사람입니다.


이 짧은 탄식은 타인을 향한 것이었으나, 동시에 규칙 뒤에 숨어 있던 임원들 스스로를 향한 날카로운 거울이기도 했다. 규칙을 집행하는 자들이 가장 쉽게 빠지는 함정, 즉 '나는 정통이고 너는 틀렸다'는 영적 우월감과 교만이 소리 없이 공동체의 온기를 앗아가고 있었음을 철저히 자각한 순간이었다. 머리만 거대해지고 가슴은 차갑게 식어버린 바리새인이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거룩한 공포가 엔진룸을 휩쓸었다.




5. 가이드의 재정의: 율법에서 복음으로


끝없는 번민과 성찰의 밤을 지나며, 임원진은 마침내 하나의 중요한 영적 이정표에 도달한다. 규칙은 분명 기문나모를 지키는 성벽이지만, 그 성벽의 진정한 목적은 사람을 옥죄고 가두는 것이 아니라, 상처받기 쉬운 연약한 영혼들을 세상의 거친 파도로부터 '보호'하는 데 있어야 한다는 진리였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온 것은, 정서적 지지대였던 주아의 따뜻하고도 세밀한 시선이었다. 그녀는 규칙의 '정당성'을 따지기 전에, 그 규칙을 처음 마주하는 지체들의 '두려움'을 먼저 읽어냈다.


[8/15/23 13:38] 주아: 방에 들어왔을 때 공지를 봤을 때 자기소개 5분에 대한 압박감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네유.


'우리의 규칙이 누군가에게는 폭력적인 압박감이 될 수 있다'는 주아의 이 부드러운 지적은, 기문나모의 질서가 율법의 굴레를 벗고 복음의 자유를 입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임원들은 공지사항의 단어 하나하나를 다시 뜯어고쳤다. 단순하고 고압적인 '금지 명령'들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좁은 길을 함께 걸어가기 위한 '사랑의 안내서'로 그 결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통제하는 성벽에서 품어주는 울타리로. 질서와 은혜가 마침내 위태로운 균형을 찾은 듯했다. 그러나 이 평화로운 조율의 시간도 잠시, 0과 1의 세계에서 24시간 쉬지 않고 울려대는 알람 소리는 파수꾼들을 사상 초유의 영적 고갈과 번아웃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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