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금지하는 게 많나요?” - 공동체 수호를 위한 최소한의
1. 익명의 바다, 무질서의 파도가 덮치다
2020년 말, 기문나모 오픈채팅방의 인원이 세 자릿수를 넘어서기 시작하자 엔진룸(임원방)의 경보음은 쉴 새 없이 울려댔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필연적으로 ‘자기중심성’이라는 인간의 전적 부패함이 고개를 들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검증되지 않은 이단 신학의 링크를 쏟아부었고, 누군가는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성경의 권위보다 높게 두며 논쟁을 부추겼다. 또 다른 누군가는 이곳을 사적인 연애의 장으로 삼으려 접근했다. “사랑과 은혜로 다 용납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감상적인 구호 뒤에서, 공동체의 정체성은 서서히 침식되고 있었다.
오리에탈은 결단해야 했다. 개혁주의적 관점에서 자유는 방종이 아니며, 진정한 자유는 하나님의 율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만 만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펜을 들었다. 아니, 키보드를 잡았다. 그것은 기문나모의 헌법이자, 양들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성벽’인 공동체 규칙의 탄생이었다.
2. 성벽을 쌓는 자의 고뇌: 율법인가, 울타리인가
규칙이 공지사항에 게시되자마자 즉각적인 반발이 터져 나왔다.
“여기가 군대입니까?”, “기독교 방이라면서 너무 숨 막히게 하네요.”, “성령의 인도하심보다 규칙이 앞서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비판들은 임원들의 심장을 찔렀다. 특히 ‘감투놀이’를 경계하던 오리에탈에게 “독재자”라는 프레임은 가장 아픈 공격이었다. 하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잠언 25장 28절의 말씀을 붙들었다.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잠 25:28, 개역개정)
그는 깨달았다. 성벽이 없는 성읍은 침략자에게 유린당할 뿐만 아니라, 그 안의 주민들도 보호받지 못한 채 불안에 떨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문나모의 규칙은 사람을 억압하기 위한 ‘쇠사슬’이 아니라, 외부의 오염으로부터 내부의 연약한 지체들을 보호하기 위한 ‘성벽’이어야 했다.
그는 금지 조항들을 하나하나 다듬었다. 정치 발언 금지, 사적인 일대일 대화(갠톡) 금지, 검증되지 않은 외부 링크 공유 금지. 이 모든 ‘금지’는 역설적으로 ‘진리의 보존’을 향하고 있었다. 그는 규칙을 세우는 행위가 자신의 권위를 세우는 일이 되지 않도록, 모든 조항의 근거를 성경적 원리와 공동체의 유익에 두었다.
3. “갠톡 금지”라는 방패
특히 가장 논란이 되었던 규칙은 ‘일대일 대화(갠톡) 금지’였다. “친해지려고 모인 건데 왜 개인적인 연락을 막느냐”는 불만이 팽배했다. 그러나 오리에탈과 낮은선율은 온라인 공동체에서 발생하는 사고의 90%가 보이지 않는 밀실(갠톡)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었다.
밀실은 유혹이 자라기 좋은 토양이다. 검증되지 않은 가르침이 스며들고, 사적인 감정이 섞여 관계가 깨지면 결국 공동체 전체가 병든다. 임원진은 ‘공적인 광장’에서의 소통만을 장려함으로써, 모든 대화가 진리 안에서 투명하게 검증받도록 설계했다. 이것은 관계를 단절시키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거룩하게’ 유지하는 지혜였다.
4. 규칙의 뒤편에서 흐르는 눈물
규칙이 시행되면서 임원들의 업무는 가중되었다. 규칙을 어기는 지체들에게 경고를 주고, 때로는 가차 없이 가리거나 내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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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차갑게 집행되는 결과만을 보았지만, 엔진룸 안에서 임원들은 매번 신음했다. 주아는 차단된 지체의 이름을 보며 조용히 도고했고, 낮은선율은 비난 섞인 항의 메시지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제 뺨을 치십시오"라고 되뇌었다. 오리에탈은 자신이 만든 규칙이 혹여나 '율법주의의 몽둥이'가 되어 누군가의 영혼을 멍들게 하지는 않았는지 밤잠을 설쳤다.
그들은 규칙을 집행할 때마다 자신들의 손에 묻은 피를 닦아내는 기분으로 무릎을 꿇었다.
“주님, 우리는 심판주가 아닙니다. 그저 당신의 양 떼를 지키기 위해 성벽을 보수하는 석공일 뿐입니다. 우리의 완악함이 복음을 가리지 않게 하소서.”
5. 성벽 안에서 싹트는 진정한 자유
시간이 흐르자, 엄격한 규칙은 예상치 못한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무분별한 광고와 비방이 사라진 자리에서 깊이 있는 신학적 토론이 꽃피웠다. 정치적 논쟁이 멈춘 곳에서 성경의 본의를 묻는 질문들이 올라왔다.
지체들은 이제야 안심하고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규칙이라는 성벽이 자신들을 비난과 오염으로부터 지켜주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한 것이다. “숨 막힌다”던 불평은 “안전하다”는 감사로 변했다.
기문나모의 규칙은 그렇게 탄생했다. 그것은 인간의 통제욕이 빚어낸 산물이 아니라, 거룩한 공동체를 향한 간절한 열망과 그 책임을 피하지 않았던 임원들의 눈물이 섞인 ‘은혜의 울타리’였다. 성벽은 견고해졌고, 이제 그 안에서 복음의 노래가 더 멀리, 더 맑게 울려 퍼질 준비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