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신학의 선명성을 들고 나타난 '바산의 황소'
1. 엔진룸에 울려 퍼진 묵직한 발걸음
첫 번째 안식이 가져다준 평화는 임원들에게 달콤했지만, 기문나모라는 거대한 영적 전쟁터는 그들을 오래 쉬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0과 1의 광장에는 여전히 이단적 사상과 인본주의적인 교훈들이 호시탐탐 틈을 노리고 있었고, 이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행정력' 이상의 것이 필요했다. 바로 신학의 선명성이었다.
바로 그 시기, 방장 오리에탈의 초대를 받아 엔진룸(임원방)의 문을 열고 들어온 묵직한 발걸음이 있었다.
[4/26/23 22:10] 바산의 황소: "안녕하십니까 경북지역에서 사역하며 방장님의 초대를 받아 들어오게 된 황소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스스로를 '황소'라 칭하며 등장한 이 사역자의 합류는, 훗날 기문나모의 신학적 지형도를 가장 역동적으로 바꾸어 놓는 결정적 장면이 된다.
2. 타협 없는 신학적 엄밀함: 포효하는 사자
'바산의 황소'. 성경에서 이스라엘을 위협하던 강력한 힘을 상징하는 이 별명처럼, 그의 화법은 온라인 커뮤니티 특유의 에두르는 법이나 부드러운 포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비성경적인 주장이나 기복주의, 감상적인 신비주의가 등장할 때면 사자처럼 포효했다.
그는 단순히 규정 위반을 이유로 사람을 내쫓는 '관리자'가 아니었다. 상대방의 논리적, 신학적 허점을 정면으로 돌파하며 진리의 검을 휘두르는 '논객'이자 '투사'였다.
*참고로, 이 닉네임은 아모스에서 유래했다. 바산의 암소 말이다. 하지만 남자니까 황소다. 본래는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의미였다.
[7/12/23 14:50] 온건파 허니베져: "프프님은 발려도 그냥 잘 버티잖아요"
[7/12/23 14:50] 바산의 황소: "프프님은 제가 좀 강도높게 비판했죠"
[7/12/23 14:50] 온건파 허니베져: "원래 그정도면 보통 나갑니다"
상대방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강도 높은 비판을 서슴지 않는 그의 스타일은, 때로는 지켜보는 임원들조차 혀를 내두르게 만들었다. 둥글둥글하게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의 타협은 그의 사전에 없었다. 진리는 다수결로 정해지거나 감정으로 호소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의 거침없는 팩트 폭격은 방 안에 개혁주의 신학의 선명한 기준을 세우는 강력한 말뚝이 되었다.
3. 사역의 흉터: 피투성이가 된 순종
그러나 바산의 황소가 가진 진짜 무게감은 그의 날카로운 논리나 차가운 지식에서 온 것이 아니었다. 그의 신학은 책상머리에서 완성된 죽은 활자가 아니라, 사역의 현장에서 피와 눈물로 써 내려간 '생존기'였다.
그가 왜 그토록 거짓 교리와 값싼 은혜에 분노하는지, 왜 그토록 치열하게 진리를 사수하려 하는지 그 이유가 밝혀진 대화가 있었다. 신앙적 고통과 용서에 대한 깊은 논의가 오가던 중, 황소는 자신의 가장 아픈 상처를 꺼내놓았다.
[5/16/23 14:22] 바산의 황소: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희 가정은 진짜 그 용서를 하기 싫었어요. 그러나 사역자로써의 그 책임감, 그런 아버지의 사역을 도와야 한다는 책임감이 우선이었고, 그 용서를 한 뒤에는 더 많은 기쁨을 허락해 주심을 경험하긴 했습니다. 다만 그 흉터는 아직까지 남아있네요."
[5/16/23 14:24] 바산의 황소: "누구라도 자기 어머니, 자기 아내를 향해서 하나님께 벌받아서 쓰러졌다고, 사경을 헤매는 사람을 향해서 그런 말을 하는데 웃으면서 쉽게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사경을 헤매는 가족을 향해 저주를 퍼붓는 자를, 오직 '사역자의 책임감'과 말씀에 대한 순종 때문에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용서해야만 했던 사람. 그 남겨진 흉터를 여전히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목회자.
이 고백은 임원방 전체에 무거운 침묵과 경외감을 가져왔다. 그가 휘두르는 신학의 검이 날카로웠던 이유는, 타인을 정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신이 먼저 말씀의 날 선 검에 자신의 가장 아픈 자아를 베어내는 고통을 통과했기 때문이었다.
4. 율법의 칼이 아닌 복음의 쟁기
지식으로만 무장한 자의 비판은 교만으로 흐르지만, 십자가의 흉터를 가진 자의 비판은 영혼을 살리는 수술 칼이 된다. 바산의 황소가 보여준 개혁주의는 결코 차갑거나 메마르지 않았다. 그는 거친 숨소리로 포효했지만, 그 포효의 끝에는 언제나 성도들이 바른 진리 위에 굳건히 서기를 바라는 애끓는 목자의 심정이 배어 있었다.
이전까지 기문나모의 임원들이 주로 '행정적인 질서'를 세우기 위해 고군분투했다면, 바산의 황소의 등장 이후 기문나모는 '신학적인 뼈대'를 강건하게 세우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그는 기복주의와 싸우고, 이단의 간교한 논리에 쐐기를 박으며, 때로는 흔들리는 지체들을 향해 매서운 회초리를 들었다.
그러나 그 매서운 회초리를 맞는 이들조차 알고 있었다. 그 묵직한 황소의 걸음마다, 교회를 사랑하는 사역자의 눈물이 깊게 패여 있다는 것을. 안식의 평안을 깨고 나타난 이 거친 사자 덕분에, 기문나모의 진리는 타협의 녹을 벗고 비로소 푸른 빛으로 제련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