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대원 시험지 일화로 본 기복주의와 나태에 대한 경종
1. 무당이 된 그리스도인들
기문나모의 엔진룸(임원방)은 때로 뜨거운 신학 토론의 장이 되곤 한다. 어느 날, 엔진룸의 분위기를 단숨에 얼어붙게 만든 것은 '바산의 황소'가 던진 묵직한 일갈이었다. 그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이라는 이름 아래 행하는 일련의 행태들을 향해 '무당적'이라는 파격적인 표현을 사용했다.
[11/22/23 18:43] 바산의 황소/합동/총신: 예수님의 능력을 무당적으로 사용하는 말입니다.
그가 분노한 지점은 명확했다. 하나님을 인격적인 창조주이자 주권자로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 내 욕망을 채워줄 영험한 '신령' 정도로 취급하는 기복주의적 태도였다. 기도는 대화가 아닌 주문이 되었고, 예배는 헌신이 아닌 복채가 되어버린 현실에 대해 그는 개혁주의 신학의 날 선 칼을 뽑아 들었다.
2. "귀때기를 맞아야 합니다"
황소의 비판은 거침이 없었다. 그는 특히 '성실함'이 결여된 채 오직 '기적'만을 바라는 요행 신앙을 정면으로 타격했다.
[11/22/23 18:50] 바산의 황소/합동/총신: 병도 낫고!!! 마 성적도 오르고!! 결혼도 한다!! 예배만 잘 드려라!! 이러면 귀때기 맞아야함다.
이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 섞인 외침은 엔진룸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귀때기를 맞아야 한다"는 말은 단순히 폭력적인 표현이 아니었다. 진리를 왜곡하여 성도들을 나태함의 늪으로 몰아넣는 거짓 가르침에 대한 거룩한 분노였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일반 은총의 영역, 즉 인간이 마땅히 감당해야 할 성실함과 의무를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퉁치려는 태도를 '영적 사기'로 보았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에서 누구보다 성실한 납세자여야 하며, 가장 정직한 노동자여야 하고, 가장 치열한 학생이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3. 하나님은 아시지만, 너는 모른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신학교 교정에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유명한 일화를 꺼내놓았다.
[11/22/23 18:46] 바산의 황소/합동/총신: 신대원에서 시험공부는 안하고 맨날 기도실에서 기도만 하던 학생이 시험날 '하나님은 다 아신다'라고 적어놓으니까 교수가 '하나님은 모든걸 아시지만 학생은 모르는것 같다.'라며 F 학점을 준 사건...
이 뼈아픈 농담은 기문나모가 지향해야 할 신앙의 태도를 함축적으로 보여주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는다는 것은, 인간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기에, 그분이 허락하신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서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노동하는 것이 참된 경건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다 아신다"라는 고백은 성도가 고난 중에 드릴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신뢰의 언어여야지, 자신의 게으름을 가리는 비겁한 가림막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경종이었다.
4. 일상이 곧 예배가 되는 공동체
바산의 황소의 이 일갈 이후, 기문나모의 가이드라인은 더욱 선명해졌다. 기문나모는 '기도만 하면 다 된다'는 식의 무책임한 위로를 건네는 곳이 아니었다. 오히려 "네가 처한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얼마나 성실히 발을 붙이고 있는가?"를 묻는 곳이 되었다.
[11/22/23 18:44] 바산의 황소/합동/총신: 자신의 의무를 다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기본이기에...
이 정신은 훗날 '노동과 기도(Laborare est Orare)'라는 개혁주의적 가치로 이어졌다. 엔진룸의 임원들은 지체들이 신비로운 체험에 매몰되기보다, 당장 눈앞의 전공 서적을 펼치고, 밀린 업무를 정직하게 처리하며,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의 도리를 다하는 것을 더욱 격려하기 시작했다.
기복주의의 달콤한 사탕발림을 걷어낸 자리에는, '코람 데오(Coram Deo)', 즉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단독자의 엄중한 성실함이 남았다. 바산의 황소가 휘두른 '귀때기'의 일침은, 기문나모가 온라인의 구름 위를 떠다니는 몽상가들의 모임이 아닌, 대지에 굳건히 뿌리 박은 그리스도인들의 현실적인 성소로 거듭나게 하는 밑거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