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온건함의 무게"
1. 온건함은 결코 약함이 아니다
흔히 '온건(Moderate)'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미지근하거나 결단력이 부족한 상태를 떠올리곤 한다.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책망처럼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한"(요한계시록 3:15, 개역개정) 상태 말이다. 하지만 기문나모 엔진룸에서 목격한 허니베져의 온건함은 그 성질이 전혀 달랐다.
그의 온건함은 뜨거운 용광로 같은 비판과 차가운 얼음물 같은 논리 사이에서 정확히 중심을 잡는 '영적 평형 감각'이었다. 그는 여호수아에게 주셨던 말씀처럼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고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라"(여호수아 1:7)는 명령을 온라인 커뮤니티라는 삭막한 광장에서 실천하고 있었다.
2. 엔진룸의 '정지 비행'
바산의 황소가 "심각한 오류가 있다"며 교리적 맹공을 퍼부을 때, 엔진룸의 온도는 순식간에 발화점에 도달합니다. 이때 허니베져는 벌새처럼 정지 비행을 하며 상황을 관조한다. 그는 무작정 황소를 말리지도, 그렇다고 상처 입은 지체를 방치하지도 않았다.
[7/12/23 14:43] 온건파 허니베져: 심각한 오류가 있다라는 단어 선정은 좀 강하긴 한 것 같아요 ㅎㅎ
그의 대화법에는 항상 'ㅎㅎ'라는 특유의 여유가 묻어났다. 자칫 감정 싸움으로 번질 수 있는 신학 논쟁에 그는 '유머'라는 완충재를 집어넣었다. 이는 비진리와 타협하는 비겁함이 아니라, 진리가 전해지는 '통로'를 확보하려는 중재자의 지혜였다. 어거스틴이 말했듯, "본질적인 것에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에는 자유를, 그리고 모든 일에는 사랑을" 실천하려는 노력이었다.
3. 도고기도(禱告祈禱)의 심장으로
허니베져가 가진 온건함의 뿌리는 사실 '긍휼'에 있었다. 그는 엔진룸 뒤편에서 상처 입은 지체들을 위해 누구보다 뜨겁게 도고기도를 올리는 사람이었다.
그는 날 선 비판을 받은 지체가 방을 나가버릴까 노심초사하며, 그들의 마음이 복음 안에서 다시 회복되기를 구했다. 그에게 중재란 단순히 싸움을 말리는 행위가 아니라, 한 영혼이 공동체라는 은혜의 울타리 안에 끝까지 붙어 있게 만드는 '성도의 견인' 사역이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아무리 바른 교리라도 그것을 담는 그릇이 깨져버리면 생명수가 흘러나갈 수밖에 없음을 말이다.
4. 흔들리는 배의 평형수
기문나모라는 배가 거센 교리 논쟁의 파도를 만날 때마다 전복되지 않았던 이유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직하게 자리를 지킨 허니베져라는 '평형수' 덕분이었다.
그는 황소의 날카로움에 베인 이들에게는 부드러운 연고가 되었고, 지나치게 감상에 빠진 이들에게는 다시금 개혁주의의 선명한 기준을 상기시켰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그의 중재 덕분에 엔진룸은 비로소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마태복음 5:9)라는 말씀을 체감하는 공간이 되었다.
진리의 엄밀성을 지키면서도 형제의 심장을 상하게 하지 않는 것. 허니베져는 그 불가능해 보이는 줄타기를 '온건함'이라는 이름의 십자가를 지고 묵묵히 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