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목적 비판가와 바토그의 딜레마를 넘어서
1. 낯선 방문자의 도발: "성공회만 좋아요"
온라인 익명 채팅방이라는 광장은 종종 자신의 신앙적 우월감을 증명하려는 이들의 전쟁터가 되곤 한다. 어느 날, 기문나모 본장에 등장한 '성공회가 교회다'는 입장과 동시에 기존 지체들의 신앙 체계를 흔드는 날카로운 도발을 던졌다.
[10/05/23 15:20] 성공회만 교회다: 한국 장로교회는 너무 메말랐어요. 예전(Liturgy)도 없고, 툭하면 딱딱한 교리나 따지고. 성공회 예배 한 번 가보세요. 거기가 진짜 거룩함이 있지, 여기 분들은 너무 우물 안 개구리들 같네요.
이는 단순한 의견 개진을 넘어, 타인의 신앙 전통을 깎아내림으로써 자신의 '특별함'을 과시하려는 맹목적 비판이었다. 톡방의 공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평소 같으면 "성공회의 신학적 중도주의(Via Media)가 가진 맹점이 뭔지 아느냐"며 즉각적인 반격이 쏟아졌겠지만, 엔진룸의 대응은 전혀 달랐다.
2. 방어가 아닌 '인정'으로 허물어뜨리다
임원진은 그를 '적'이 아닌 '형제'로 대우했다. 특히 조율사 쬬도와 온건파 허니베져의 협공 아닌 협공은 방문객의 날 선 기세를 단숨에 무력화시켰다.
[10/05/23 15:25] 쬬도는솔로야: 성공회만 교회다 님, 성공회의 풍성한 예전과 전통에서 큰 은혜를 누리고 계시는군요. 성공회가 가진 거룩한 유산은 우리 장로교인들도 깊이 배우고 존중해야 할 대목이라 생각합니다.
[10/05/23 15:28] 온건파 허니베져: 맞습니다. 각 교단마다 하나님께서 주신 고유한 색깔이 있지요. 이곳은 개혁주의를 사랑하는 이들이 모였지만, 형제 교단의 아름다움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ㅎㅎ
이러한 '넉넉한 정통주의'는 사도신경이 고백하는 '거룩한 공교회(Catholic Church)'에 대한 깊은 신뢰에서 나온다. 내 것만 옳다고 소리 높이는 폐쇄성을 버리고, 보편적인 교회 공동체 안에서 타 교단의 장점을 기쁘게 인정해 주는 태도. 그것이 바로 개혁파가 가져야 할 진정한 품격이었다. 결국 공격할 틈을 잃은 방문객은 스스로 날을 거두었고, 방은 다시 평화를 되찾았다.
3. 바토그의 또 다른 딜레마: 고구마와 사이다
하지만 본장의 평화와 달리, 신학적 격투기장인 '바토그(바르게 토론하는 그리스도인)'는 또 다른 딜레마로 끓어오르고 있었다. 이곳을 지켜보는 관전자들은 늘 두 가지 감정 사이를 오갔다. 바로 꽉 막힌 듯한 '고구마'와 가슴 뻥 뚫리는 '사이다'였다.
누군가 비성경적인 주장을 굽히지 않을 때, 지체들은 속이 터지는 답답함을 느낀다. 이때 바산의 황소 같은 임원이 등장해 날카로운 교리적 근거로 상대방을 단칼에 논파하면, 채팅창에는 환호가 터져 나온다. "역시 황소님, 사이다네요!"
그러나 엔진룸의 시각은 달랐다. 사이다 같은 논파는 구경꾼에게는 카타르시스를 주지만, 패배한 당사자에게는 모멸감과 반발심만 남길 뿐이었다. 사이다는 갈증을 잠시 해소할 뿐, 영혼을 변화시키는 생명수가 될 수 없었다.
4. 기다림의 신학, 인내라는 생명수
반대로 임원들이 상대방이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질문을 던지며 천천히 대화를 이어가면, 지체들은 "저런 억지를 왜 들어주느냐"며 고구마 백 개를 먹은 듯한 답답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그 '고구마의 시간'이야말로 기문나모가 포기할 수 없는 목양의 핵심이었다.
[11/10/23 23:30] 쬬도는솔로야: 토론에서 이기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저 영혼이 진리 안에 안전하게 착륙하도록 돕는 게 목적이죠. 답답하더라도 우리가 한 번 더 참아줍시다. 사이다는 주님께서 마지막 날에 주실 겁니다.
어거스틴은 "진리는 그것을 사랑하는 자에게만 모습을 드러낸다"고 했다. 상대를 논리로 굴복시켜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답답함을 견디며 그가 스스로 돌이킬 때까지 기다려주는 인내. 그것이 바토그를 단순한 토론장에서 '성숙한 신앙의 훈련장'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런 방식은 우리 개혁주의 선배들의 가르침과 맞닿아 있다. "사랑 없는 진리는 잔인하고, 진리 없는 사랑은 위선이다."
어거스틴: 그는 이단 도나투스파와 싸울 때 매우 논리적이었지만, 동시에 그들이 공교회의 품으로 돌아오도록 끊임없이 문을 열어두었다.
칼빈: 제네바의 목회자였던 그는 교리가 성도의 삶을 비추는 등불이 되어야지, 성도를 태우는 불길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었다.
결국 쬬도 임원의 이 발언 이후, 엔진룸의 분위기는 '검찰청'에서 '응급실'로 바뀌었다. 죄와 오류는 미워하되, 그 오류에 빠진 형제는 끝까지 진리라는 활주로에 내려앉히려는 처절한 노력이 시작된 것이다.
5. 넉넉함이 진리를 빛나게 한다
진리에 대한 확신은 타인을 향한 '넉넉함'과 '인내'로 증명되어야 한다. 방문객의 도발에 흔들리지 않는 여유, 그리고 비진리에 빠진 형제가 돌아오기를 기다려주는 답답한 인내야말로 개혁주의자가 맺어야 할 성령의 열매이다.
기문나모는 이제 사이다의 통쾌함보다 고구마의 든든함을 택하기 시작했다. 지식의 칼날을 휘두르기보다 사랑의 수건을 먼저 드는 것, 그것이 디지털 광야에서 진리를 수호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