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토론과 공동체 정서 사이의 외줄 타기
1. 야생의 격투기장, '바토그'의 탄생
기문나모가 성장하면서 단톡방 본장(메인방)에는 매일 수백, 수천 개의 메시지가 쏟아졌다. 초신자들의 순수한 질문부터 일상의 나눔, 그리고 깊이 있는 신학적 주제까지 모든 것이 한곳에 뒤섞였다. 문제는 개혁주의 신학의 '뼈대'를 세우고자 하는 지체들의 치열한 논쟁이 시작될 때였다.
예정론, 성령의 은사, 종말론 등 무거운 주제가 등장하면 대화의 온도는 순식간에 끓어올랐고, 갓 신앙생활을 시작했거나 평안한 교제를 원했던 지체들은 그 맹렬한 기세에 놀라 방을 떠나는 일이 잦아졌다.
엔진룸 임원진은 결단이 필요했다.
"진리를 탐구하는 치열한 토론은 보장하되, 연약한 지체들이 다치지 않게 보호해야 한다."
그렇게 본장과 분리되어 오직 신학적, 신앙적 난상토론만을 위해 만들어진 별도의 공간, '바토그(바른 토론 그룹)'가 탄생했다. 지체들은 이곳을 영적 검투사들이 모인 '야생의 격투기장'이라 불렀다.
*사실 바토그라는 이름은 추후에 변경된 것이다. 처음에는 신학방이었다. 그리고 여기서는 바른 토론 그룹의 줄임말인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실제로는 <바른 토론을 하는 그리스도인>의 줄임말이다. 다만 제목이 너무 길어서 브런치 포스팅 제목으로 올릴 수 없기에 줄인 것이다. 그런데 또 한 번 방제를 바꾸게 되었으니.. 다른 방에서 우리 카톡방의 이름을 그대로 따 와서 동일한 이름으로 운영하고 있는 거다. 그래서 우리는 최근에 뜨신방, <뜨거운 신학 토론방>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2. 자유와 방종의 아슬아슬한 경계
바토그의 규칙은 단 하나였다. "이단적 사상이 아니라면, 어떤 주제든 성경과 신학의 테두리 안에서 치열하게 논쟁할 수 있다."
초기에는 이 목적이 훌륭하게 달성되는 듯했다. 지체들은 각자의 교단 헌법과 신학 서적을 인용하며 밤을 새워 토론했다. 그러나 인간의 죄성은 가장 거룩한 주제를 다룰 때조차 교만함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점차 토론의 목적이 '진리 탐구'에서 '상대방을 논리로 굴복시키는 것'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8/20/23 21:15] 토론자 A (바토그): 그건 완전히 알미니안적인 발상입니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제대로 읽어보시긴 한 겁니까?
[8/20/23 21:23] 토론자 B (바토그): 신학 서적 몇 권 읽었다고 성경 전체를 다 아는 것처럼 교만하게 말씀하시네요. 지금 그 해석은 문맥을 완전히 무시한 억지입니다.
[8/20/23 21:30] 바산의 황소 (임원): 두 분 다 언사 주의하십시오. 여긴 신학적 견해를 나누는 곳이지, 형제를 정죄하는 곳이 아닙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바토그는 딜레마에 빠졌다. '자유로운 토론'을 보장하자니 대화가 날카로운 비수로 변해 공동체의 정서를 해치고, 그렇다고 토론을 '강제 종료'시키자니 개혁주의가 생명처럼 여기는 '진리에 대한 자유로운 탐구'를 억압하는 꼴이 되었기 때문이다.
3. 신학의 칼날이 형제를 겨눌 때
바토그에서 입은 내상은 결국 본장으로까지 이어졌다. 토론방에서 얼굴을 붉힌 지체들은 본장에서도 서로를 냉대했고, 이는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몸을 찢는 것과 같은 아픔이었다.
엔진룸에서는 밤늦게까지 이 문제를 두고 긴급 회의가 열렸습니다.
[8/21/23 23:45] 온건파 허니베져: 바토그가 자칫 정죄의 온상이 될까 걱정입니다. 신학적 지식이 형제를 사랑하는 데 쓰이지 않는다면 그게 무슨 소용일까요?
[8/21/23 23:55] 쬬도는솔로야: 맞습니다. 아무리 바른 교리라도 덕을 세우지 못한다면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합니다. 규칙을 더 세밀하게 다듬어야 할 것 같습니다.
4. 어거스틴의 조언: 진리는 교회를 세운다
임원진은 교회사 속 믿음의 선배들에게서 답을 찾았다. 위대한 교부 어거스틴은 교회의 분열을 막기 위해 숱한 논쟁을 치르면서도, 늘 "본질적인 것에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에는 자유를, 그리고 모든 일에는 사랑을" 실천하려 애썼다. 존 칼빈 역시 바른 교리가 결국 '하나님을 경외함'과 '교회의 하나 됨'으로 이어져야 함을 거듭 강조했다.
우리가 아무리 완벽한 교리 체계를 갖추었다 한들, 그것이 형제를 향한 도고기도의 무릎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죽은 정통에 불과하다. 바토그의 목적은 '누가 더 신학적으로 우월한가'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치열한 논쟁 끝에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구제 불능인 죄인입니다"라는 십자가 앞의 겸손으로 나아가는 것이어야 했다.
5. 바토그의 새로운 외줄 타기
결국 엔진룸은 바토그에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선포했다.
첫째, 토론의 끝은 반드시 상대방을 향한 도고기도와 축복으로 마무리할 것.
둘째, 상대를 향해 '이단', '적그리스도' 등 교회가 공식적으로 치리하지 않은 정죄의 단어를 함부로 사용하지 말 것.
이후 바토그의 풍경은 조금씩 달라졌다. 여전히 밤을 지새우는 치열한 토론이 오갔지만, 그 끝에는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에베소서 4:15, 개역개정)라는 말씀처럼, 서로의 연약함을 품어주는 성도의 교제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바토그는 여전히 자유로운 토론과 공동체의 화평이라는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혼자 걷지 않는다. 진리라는 장대와 사랑이라는 균형추를 양손에 쥐고, 함께 그리스도라는 푯대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