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심판주가 아니라 안내자다"
1. 고독한 조율사의 뒷모습
닉네임에서 풍기는 뉘앙스처럼, 쬬도의 중재는 때로 고독한 작업이었다. 양극단으로 치닫는 신학적 논쟁의 한복판에 서서 어느 한 편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은, 양쪽 모두에게 오해를 살 수 있는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고독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커플이 아니라 솔로라는 뜻이다.
하지만 서늘한 논쟁의 열기가 가라앉은 늦은 밤, 그는 홀로 대화창을 복기하며 자신의 철학을 묵묵히 지켜냈다.
[7/12/23 23:15] 쬬도는솔로야: "오늘도 쉽지 않은 하루였네요. 결국 우리가 하는 일은 정죄가 아니라, 바른 길로 돌아오게 돕는 이정표 역할이지요. 다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2. 심판의 왕좌를 거부하는 용기
사람은 누구나 타인의 잘못을 발견했을 때, 본능적으로 심판주의 자리에 앉고 싶어한다. "당신은 틀렸고, 나는 옳다"라는 선언은 짜릿하지만, 그 끝에는 대개 상처 입은 영혼만 남게 된다.
쬬도는 그 유혹을 가장 경계했다. 길을 모르는 이의 무지를 탓하기보다 묵묵히 앞서가며 "이 길이 바른 길입니다"라고 가리키는 '안내자(Guide)'의 직무. 그것이 그가 붙잡은 개혁주의적 목양의 본질이었다.
3. 도고기도로 빚어낸 평화
쬬도의 중재가 가진 진정한 힘은 현란한 말솜씨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쌓아 올린 도고기도에 있었다.
[7/13/23 06:00] 쬬도는솔로야: "아침에 프프님과 황소님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말씀 앞에서 빚어져 가는 과정 중에 있음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그가 대화창에 올리는 활자들은 이렇듯 기도로 걸러진 언어들이었다. 날 선 비판을 녹이는 그의 따뜻한 권위는, 갈등하는 지체들을 가슴에 품고 하나님 앞에 엎드렸던 치열한 영적 전투의 결과물이었다.
4. 0과 1 사이의 이정표
누군가 다시 심판주의 왕좌에 앉으려 할 때면, 그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우리를 일깨웠다.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 오직 하나님 나라로 가는 길만을 가리키는 고독한 조율사. 그의 헌신은 톡방의 수많은 텍스트 사이에서 가장 선명한 '평화의 이정표'로 남아, 지금도 기문나모를 회복의 공간으로 빚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