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에 대한 시리즈는 아래의 링크에 정리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과연 나쁜 것인가, 율법주의는 무엇인가에 이어 이번에는 반 율법주의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복음을 처음 배우다 보면 복음의 은혜에 감격해서 무법주의라고도 불리는 반 율법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처음 신학교에 들어간 신학생들이나 모태신앙이었다가 복음을 처음 깨달은 학생들을 비롯하여 복음의 감격에 너무 감동해 반 율법주의에 빠지게 되는 예는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저도 복음에 침잠하고 깊숙이 몰입하여, 성경의 모든 것을 반 율법주의 복음의 시선으로, 즉 다시 말해 편향적으로 읽었던 예가 있었습니다.
스스로를 복음주의자라고 말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도 이런 사람들이 많고, 심지어 종교개혁자 루터도 그런 식으로 읽다가 성경 중 하나를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불렀던 실수를 하기도 했습니다. 뭐, 역사나 성경 중 하나를 제대로 공부한다면 여기에서 금방 벗어나겠지만,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이 상태 그대로 10년 넘게 머무르는 사람도 간혹 보입니다.
물론 복음을 알고 신앙의 초보에 들어서게 된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지만, 거기서 머무르면 안 되고, 어린아이의 신앙에서 빨리 성장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앙 방종에 빠질 수 있습니다.
반 율법주의에 빠진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율법은 나쁘다”, “왜 십계명을 지키냐”고 말합니다. 이건 마치 아버지가 “동생을 때리지마” 라고 말씀하실 때, “동생을 사랑하기만 하면 되지, 꼭 안 때려야 돼?”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십계명을 주셨는데, “사랑하기만 하면 되지 꼭 거짓말 안 해야 돼?”라거나 “사랑하기만 하면 됐지 꼭 미워하지 말아야 돼?”라고 말하는 게 반 율법주의자의 모습입니다. 초등학생도 아는 십계명인데, "십계명을 꼭 지켜야 돼?"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저런 웃음도 안 나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는 걸 아는지 가끔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다시 설명하자면, 십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은 정말로 우스운 소리입니다. 십계명에 나와 있는 살인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십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는 다른 말로 살인이나 폭력 등을 정당화하는 소리입니다.
야고보는 이러한 신앙을 죽은 신앙, 귀신들의 신앙이라고 말합니다.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18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약 2:15-19]
반 율법주의는 율법주의와 정 반대의 모습과 비슷한 모습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정 반대되는 모습에 대해서는, 결혼 이야기를 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율법주의 남편은 남편으로서 할 일은 다 하지만 아내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반 율법주의 남편은 다른 여자와 바람 피면서 “그렇지만 나는 너를 사랑해”라고 말하거나 집에는 1년 동안 안 들어오지만, “나는 너를 사랑해”라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사랑하기만 하면 되었지 십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는, 배우자에게 거짓말해도, 배우자를 때려도, 배우자를 살인해도, 사랑하기만 하면 상관 없다는 소리입니다. 야고보는 그런 사람을 보고, "아내를 때리다니. 어떻게 그게 아내를 사랑하는 거냐"라고 비난합니다.
그리고 반 율법주의는 율법주의와 비슷한 오류에 빠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남편을 사랑해서 요리를 해주면, “너 그거 율법주의야”라고 말하면서 비난합니다. 어떤 남자가 여자 친구 생일 선물로 무언가를 준비하면, “그거 율법주의야”라고 비난합니다. 누군가 십일조를 하면 “그거 왜 지켜? 너 율법주의야?”라고 말합니다. 행위만 이야기했다 하면, 도끼눈을 뜨면서 비난을 합니다.
즉, 이 사람은 행위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겁니다. 행위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어떻게든 다른 사람의 행위를 못하게 훼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다른 사람을 훼방하는 이 사람의 마음 속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이 없으니 다른 사람을 쉽게 정죄하고 훼방하는 것입니다.
즉, 이 사람은 “율법주의의에 빠지지 않은 나”라는 모습에 취해 있는 사람입니다. 스스로는 복음을 안다고 말하지만,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지는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나 잘난 맛에 스스로를 우상숭배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 내 반 율법주의자들은 율법주의자보다 더욱 해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들은 율법주의자와 똑같이 다른 사람을 비난하면서 동시에, 교회의 행사 또한 훼방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저는 이런 사람도 만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되지 꼭 수련회 해야 하느냐. 꼭 기도회 해야 하느냐. 꼭 심방 해야 되느냐." (아래의 링크를 참조)
저에게는 마치 남녀가 서로 사랑하는데, "사랑하면 되지 꼭 손을 잡아야 하느냐, 꼭 영화를 봐야 하느냐, 꼭 카페에 같이 가야 하느냐" 같은 소리로 들립니다. 손을 잡아야만 사랑하는 건 아니지만, 사랑한다면 손을 잡든 밥을 같이 먹든 어떤 행동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사랑한다면서 바람 피고, 욕하고, 때린다면..? 그 사람이 말하는 사랑은 의심스러운 보이는 것이죠.
이제 이번 시리즈 <율법은 사랑입니다>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율법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두 가지 대계명입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 안에 복음과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바람에 율법에 대한 잘못된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국 교회 안에 율법주의와 반 율법주의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쉽게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율법주의와 반 율법주의라는 두 가지 잘못된 신앙의 모습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율법의 참된 의미를 통해 사랑이 넘치는 신앙 생활하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