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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당근 Apr 25. 2024

예정론은 왜 필요한가요?

Intro

예정론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없느냐”라고 몰아가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정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과연 자유의지가 없다고 말할까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예정론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예정론은 자유의지를 부정하지 않는다

예정론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란 없다”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칼빈만 해도, 예정론을 다룰 때 신론에서 다루지 않습니다. 교회론 바로 직전에 다룹니다. 즉, 우리의 구원을 다룰 때 “내 믿음은 내가 시작한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그 전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어”라는 고백이 바로 예정론입니다.




내 힘으로 믿어야 할 때

알미니안과 칼빈주의 사이의 차이를 살펴보면 이것이 두드러집니다. 알미니안의 경우, ㄱ.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ㄴ. 이제 인간이 그리스도에게로 가야 합니다. 믿든가 믿지 않든가, 여기서부터는 사람에게 구원이 달려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칼빈주의는 알미니안과 정반대입니다. 알미니안의 구조 속에서는 이미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모든 것을 하셨기 때문에, 이제 사람이 움직여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믿으려고 해봐도 내 노력으로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때 제가 경험한 많은 알미니안이 “더 노력해”, “니가 노력이 부족해서 못 믿는 거야”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칼빈주의를 제외하고는 우리가 노력해야 받습니다. 열심히 기도해서 방언도 받고 구원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해도 믿어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겁니다. 교회를 떠난 많은 사람들이 이것 때문에 떠났습니다. 그렇게 많은 노력을 했는데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칼빈주의가 시작됩니다.


내 힘으로는 아무리 해도 안 된다. 하나님이 하셔야 한다.




하나님이 하실 때

내 힘으로 믿을 수 없다고 고백할 때 하나님이 믿음을 시작하십니다여기서 칼빈주의는 전적인 무력감과 하나님의 주권을 말합니다. 우리 믿음의 시작도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원죄" 또는 "죄성"은 결국 우리 힘으로 하나님께 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으로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곧, 모든 순간, 하나님이 일하셔야 합니다.


즉,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을 알 수 없을 때, 우리는 여기서 우리의 죄성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죄를 고백할 때, 우리의 무력함을 고백할 때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끄셨다. 이것이 바로 예정론에 대한 바른 믿음입니다.




개혁주의는 행위를 부정하는가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기도 열심히 해"라거나 “열심히 봉사해”라며 기도해야 방언 받는다거나 구원 받는다며 열심히 신앙생활하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해도 믿음이 생기지 않은 사람들은 "네게 죄가 있어서 그런 거야"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래도 믿음이 생기지 않으면 교회에서 떨어져 나가게 됩니다.


하지만 칼빈주의자인 제 생각은, 열심히 하면 좀더 은혜의 통로는 많이 얻을 수 있으나, 결국 하나님이 안 주시면 소용 없다는 것입니다. 즉, (은혜의 방편이기에) 더 많은 은혜를 누리려면 열심히 기도하고 예배를 하는 게 맞기는 합니다. 하지만 결국 이것은 은혜이기에, 하나님이 주셔야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은혜의 방편에 접근하는 것에 있어서, 복음주의의 반응과 칼빈주의의 반응이 한 끝 차이이긴 한데 그 한끝 차이가 큽니다. 복음주의는 은혜를 못 받으면 "너가 열심히 안 해서 못 받은 거야"라고 말할 위험이 있지만, 개혁주의는 은혜의 방편을 말하면서도 그것이 공로가 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금합니다.




결론

알미니안은 율법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칼빈주의는 게으름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또한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할 위험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 칼빈주의가 좀더 복음에 대해 일관성이 있다고 보지만, 칼빈주의나 알미니안 모두 자신의 약점을 자각하고 주의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예정론을 이해할 때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예정론은 위에서 본 것처럼 “노력이 아닌 은혜로 우리 믿음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고백하는 자세로 접근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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