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 성경을 체계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면 때때로 반 율법주의에 빠지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주일성수, 십일조와 같은 것을 율법주의라고 비난하며 모든 율법에 대한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야고보서나 로마서만 제대로 읽었어도 이런 오류에 빠지지는 않았을 텐데, 성경을 진지하게 읽어보지 않았거나, 아니면 성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에 벌어지는 오류입니다.
반 율법주의를 이해하려면 먼저 율법주의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율법주의는 대개 율법의 기준을 다른 사람들을 비판할 때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자기는 새벽 예배를 드리는데, 새벽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성도들을 바라보며 "믿음이 없는 거야"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율법주의자의 모습입니다. "나는 하는데 너는 못한다"는 마인드가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율법주의에는 더 자세히 다뤄야 하는 면모들(스스로를 율법의 노예로 만들게 한다든가 등)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지금 우리가 다룬 율법주의자의 모습이 때때로 반 율법주의자에게도 발견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헌금도 주일성수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헌금과 주일성수를 강조하는 사람을 율법주의자로 몰아갑니다. 물론 이때 자기는 율법주의를 벗어난 우월한 사람이 됩니다. 바로 반 율법주의라는 이름의 율법주의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교회에서 해악을 끼치기로는 거의 첫 번째로 꼽아도 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들은 정말이지 교회에서 해충과도 같은 역할을 하는데, 보통 교만함이 가득하고, 인정받으려고 목사를 비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서 정말이지 교회를 혼란스럽게 만드니 해충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말도 안 되는 논리이기는 하지만, 그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순진한 성도들의 신앙 생활을 훼파하기 때문입니다.
(반 율법주의라는 이름의 율법주의를 포함한) 율법주의자는 결국 다른 사람을 공감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합니다. 정죄와 비판 밖에는 없습니다. 교회에서 뭔가 엘리트 느낌이 물씬 드는 사람들 중에 이런 부류가 많습니다. 배우기는 많이 배우지만 진리의 지식에 이르지는 못한 것입니다.
결국 이 사람의 마음에는 내 능력, 내 지식, 내 공로, 내 노력에 대한 마음이 큽니다. 내 노력을 생각하면 하나님은 저 사람보다 나에게 더 큰 상급을 주셔야 한다는 겁니다. 내 지식을 생각하면, 나는 저런 무식한 교회 내의 대중과 다른 존재라는 겁니다. 내 지체와 나를 동등하게 생각하는 걸 싫어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율법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나요? 다음에는 율법의 세 가지 기능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