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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당근 May 02. 2024

율법주의의 세 가지 특징

Intro


많은 사람들이 율법주의에 대해 비판합니다. 그런데 율법주의가 뭔지 모르고  율법주의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율법주의를 비난한다며 율법주의 자세를 취하기도 합니다. (특히 반 율법주의자들이 그러하지요.)


그렇다면 율법주의란 무엇일까요?




율법주의의 특징 세 가지


율법주의는 대체로 세 가지 특징을 가집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 이 세 가지 특징 모두를 가질 수도 있고 하나만 가질 수도 있습니다.


첫 번째, 나르시시즘에 빠져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사람


첫째로, 율법주의의 함정에 빠진 첫 번째 사람은 자기는 옳다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을 정죄합니다. 자기 자신의 연약함, 자신의 죄성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보통 이런 함정에 많이 빠집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은연중에 "나는 하는데 왜 너는 안 해?" 라는 뉘앙스를 줍니다.


반 율법주의라는 이름의 율법주의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율법주의에 빠지지 않았는데 왜 너는 율법주의에 빠져 있니?" 라는 식으로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겁니다.


그런데 초대교회부터 교회는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즉, "나는 아무런 자격이 없는데 하나님이 은혜로 나를 구원해주셨다"고 믿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나 스스로가 의롭다며 다른 사람을 비난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런 자격이 없는데 구원하셨다는 자세는 특히나 가톨릭에서 갈라져 나온 이후 개혁주의가 견지하는 입장이기도 합니다. (가톨릭 내에서도 어거스틴의 전통을 제대로 잇고 있는 사람들도 자격 없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23] 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24] 결산할 때에 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25]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하니 [26]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27]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28]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이르되 빚을 갚으라 하매 [29] 그 동료가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나에게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30]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그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31] 그 동료들이 그것을 보고 몹시 딱하게 여겨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알리니 [32]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34]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마태복음 18장 23-34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장 6-8절




두 번째 자존감이 낮은 사람


둘째로, 율법주의의 함정에 빠진 두 번째 사람은 자존감이 낮아집니다. 율법이 나 자신의 연약함을 고발한다고 해도 그리스도의 은혜가 있다면 율법의 종노릇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은혜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율법의 종노릇을 하게 됩니다.


교회에서도 율법의 종노릇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기가 잘하지 못한 것에 대해 "자책하고 또 자책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입니다. 내 행위가 나 자신의 자존감을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Being보다 Doing과 Having이 이 사람들의 자존감을 결정합니다. 


부자가 되어야, 실수하지 않아야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나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복음은 이 사람들이 스스로를 그 자체 그대로 사랑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줍니다.




세 번째, 행위 자체를 신성시하는 사람


셋째로, 율법주의의 함정에 빠진 세 번째 사람은 행위 자체를 신성하게 여깁니다. 그러니까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신앙이 없다고 생각한다든지, 아파도 주일성수를 하지 못한다면 문제라고 생각한다든지 행위에 따라 사람을 판단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행위를 우상으로 숭배하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나 상관 없이 행위에 따라 공평하게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러 경우에 우리는 공평하게 기준을 지켜야 합니다. 교사라면 동일한 기준으로 점수를 주어야지, 어떤 학생은 25개 중 하나 틀렸는데도 B를 주고, 다른 학생은 25개 중 5개 맞았는데 A를 준다면 그건 문제가 됩니다.


하지만 신앙에 있어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야 합니다. 물론 주일성수나 십일조, 그리고 봉사 등을 집사 직분을 주거나 장로 직분을 줄 때 기준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외적 기준은 사람의 내면을 알 수 없기에 차선으로 선택된 기준이지, 하나님의 기준인 것은 아닙니다그렇기에 이러한 외적 기준으로 누군가를 정죄한다면 문제가 됩니다.




정리하며


이렇게 율법주의에 특징 세 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나 스스로 율법주의에 빠지지 않았는지 돌아보며, 

더 복음을 알고 주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더 많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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