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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당근 May 21. 2024

욥기 4장 1절-11절 묵상

엘리바스의 말 : 잘못된 위로의 시작

말씀 관찰


1. 1-2절, 엘리바스의 위로가 시작된다.

2. 3-6절, 욥이 부유할 때, 잘나갔을 때 했던 충고와 가르침으로 욥에게 충고한다.

3. 7-12절, 엘리바스의 신학이 드러난다. 선한 사람, 정직한 사람은 부자가 되고 악한 사람은 저주를 받는다.




해석


1. 1-2절, 기독교는 웃는 사람과 함께 웃고, 우는 사람과 함께 울어주는 종교이다. 그런다 여기서 엘리바스의 위로는 그렇지 않다.

2. 3-5절, 엘리바스는 욥에게 언행일치를 하라고 조언한다. "니가 과거에 조언했던 것처럼 너도 살아봐"라는 것이다. 그러나 팩트폭행이랍시고 하는 이 조언은 욥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잘못된 조언이다. 엘리바스는 일단 욥을 죄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무죄추정의 원칙이랑은 정반대이다.)

3. 7-12절, 여기서 보이는 엘리바스의 신학은 번영신학이다. 착한 사람은 부자가 되고 복을 받으며, 가난한 사람은 저주를 받은 악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이 세상과 삶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순진한 이론이며, 의인을 잘못 정죄할 수 있는 이론이다. 물론 이것은 타락 전 세상, 하나님의 법과 질서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세상이었다면 옳았을 것이다.




적용

1. 다른 사람에 대한 우리의 위로는 어떠한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상대방을 위로한다고 하면서, 실제로 그 위로의 주인공이 상처받은 대상자인지, 아니면 위로하는 나인지 분별해야 한다. 상대방에게 관심이 없는 위로는 오히려 상대방을 찌르는 칼이 될 수 있다.

2. 조언도 마찬가지이다. 엘리바스는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욥에게 충고한다. 오늘날 우리가 기독교인들에게서 보는 꼰대의 모습이 엘리바스에게서 그대로 드러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잘못된 충고를 하는 것이다.

3. 욥기는 계속해서 번영신학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보여준다. 잠언을 읽었다면, 선을 행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보답하실 거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보답이 꼭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지는 알 수 없다. 시편만 보아도, 의인이 고난을 당한다. 인간의 타락으로 망가진 이 세상에서는 의인이 고난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보면, 결국 의인에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주어진다.

그렇기에 우리는 번영신학의 순진한 신학에서 벗어나, 성경을 깊이 있기 이해해야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성경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성경을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자의적으로 성경을 읽고, 선별적으로 이해하는 모습은 꼭 엘리바스와 똑같다. 그래서 우리는 선배들의 성경 해석(체계적으로 systematically 정리한 성경 해석 theology을 우리는 조직신학이라고 부른다)에서 도움을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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