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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당근 May 26. 2024

욥기 5장 1절-16절 묵상

편향된 신학, 잘못된 위로

말씀 관찰


5:1-5:7

4장에서부터 엘리바스의 비판이 이어진다. 여기서 엘리바스는 욥을 어리석은 자로 비유한다. 그리고 재난과 고생은 어리석어서 겪는 것처럼 말한다.


5:8

엘리바스는 욥을 위로한다면서 "나라면 하나님을 찾을 거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 뒤부터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설명한다. 이 설명은 잠언과 시편에 나오는 하나님을 생각나게 한다.


5:15-16

엘리바스는 결국 욥에게 "하나님께 가서 악행을 회개하라"고 말한다.




해석

5:1-5:7

여기서 엘리바스는 욥을 어리석다고 정죄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아왔듯이 이 정죄는 두 가지 이유로 잘못되었다. 1) 욥은 죄를 저질러서 고난을 받는 게 아니었다. 2) 고난을 당한 사람에게는 정죄가 아니라 위로가 필요하다. 즉, 엘리바스는 위로자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하고 있다.


또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고난을 당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고난을 당하지 않는 게 아니다. 어리석지만 고난이 없을 수 있고, 지혜롭지만 고난을 당할 수 있다. 지혜롭다고 해서 재난과 고난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물론 지혜롭다면 재난과 고난에 지혜로운 대처를 할 수는 있을 것이다.


5:8

여기서 엘리바스는 욥에게 "나라면 하나님을 찾을 거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마치 욥이 하나님을 찾지 않았던 것처럼 말한다. (즉, 허수아비 논법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을 찾고 있었다.


5:15-16

욥에게 회개하라고 엘리바스는 말하는데, 이것 또한 잘못된 충고이다. 왜냐하면 욥은 악을 행하지 않았다.




적용

1)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충고하고 위로할 때 주의해야 한다. 마치 그 사람에 대해 우리가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충고해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이 하나님을 찾지 않은 것처럼, 죄를 회개하지 않은 것처럼 정죄하면서 스스로를 가르치는 자의 위치에 두는 것은 가스라이팅이 될 여지가 있다. 우는 사람이 있다면 함께 울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2장 12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욥의 친구들은 욥을 위해 울어주는 사람이었다. 즉, 그들은 우는 자를 위해 함께 우는 자들이었다. 하지만 "내가 너를 위해 울어주었으니 이제 내가 너를 정죄하겠어"와 같은 자세는 성경이 말하는 위로자의 자세가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는 자를 위해 함께 우는 것"이 어떤 것인지 우리 삶의 각 자리에서 고민이 필요하다.)


2) 욥은 죄를 저지르지 않았다. 그러나 욥 또한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다. 즉,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어리석을 수밖에 없다는 엘리바스의 주장은 한국 교회에서 많이 사용하던 자세였다.


특히나 수련회 기간에 많은 사역자들이 기도회를 인도하면서 "너는 죄인이야"라는 프레임을 어떻게든 가져가려고 한다.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 어디있냐"며 어떻게든 수련회 때 울게 만들고자 하는 목적에서 협박성으로 죄를 거론하는 것인데, 마치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엘리바스의 모습과 같다.


물론 나는 수련회 때 기존에 하던 대로 죄에 대해 설명하고 회개하게 하는 것이 필요없다고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미 지난 수련회 때 죄 때문에 회개해서 울었던 애들을 가지고 다시 정죄하고 회개시키는 것은 의아할 때가 많다. 복음 설교를 한 뒤, 기도회를 인도하다가 울게 될 수는 있지만, 어떻게든 울리려고 하는 모습은 방법론에 매몰되지 않았다 되돌아보아야 한다.


아담의 타락 이후 모든 인류가 가진 죄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중요하고 필요하다. 그 죄성이 나에게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도 꼭 이야기해야만 한다. 하지만, 수련회 때마다 어떻게든 학생들을 고꾸러트리고 울리기 위해 하는 것처럼 상대에게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는 엘리바스의 방법은 주의해야 한다.


3) 말씀을 다각도로 읽어야 한다. 욥의 친구들이 하는 말을 잘 들어보면, 교회에서 하는 말, 그리고 잠언이나 시편 등에서 많이 살펴볼 수 있는 말이다. "옳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못된 말, 잘못된 가르침을 전할 수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리고 성도들을 보면, 하나의 진리만 가지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욥의 친구들처럼 잠언이나 시편의 일부 내용만 가지고 율법주의, 번영신학, 기본주의 신앙에 빠져 있는 것처럼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반 율법주의 신앙에 빠져 있다. 정의의 하나님만 이야기하거나, 사랑의 하나님만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하나의 진리만을 가지고 극단적이고 편향적인 신앙을 해서는 안 된다.


특히나 가나안 성도들을 보면 이것이 더욱 심해진다. 오픈카톡방에서 많은 가나안 성도들과 대화를 했는데, 다른 사람과 신앙적 대화를 나누지 못할 정도로 편향되고 극단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교회 안에서도 다른 사람과 신앙을 나누지 않고, 혼자만 독불장군 식으로 신앙생활 하거나 자기 생각에 갇혀 있는 사람들도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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