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을 당한다면 죄를 저지른 사람이다..?
17절 이전에, 회개를 말한 엘리바스는, 이제 17절에서 (죄에 대한) 징계에 대해 말한다. 징계는 복이니 얼른 회개하라는 것이다.
25절에 엘리바스는 자손이 많아지는 것을 이야기한다. 당시 자손이 많아지는 것은 축복받은 삶의 상징이었다. 엘리바스는 욥에게, 회개하면 다시 자식을 얻고 복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17절부터 27절까지 엘리바스는 계속 두 가지 상황을 대조하여 이야기한다. 징계 받은 삶의 저주 받은 삶의 모습이고, 회개한 이후의 축복 받은 삶의 모습이다.
27절에 나오는 "징계는 복이니 얼른 회개하라"는 엘리바스는 잘못된 충고를 해주고 있다. 욥의 상황에 맞지 않는 충고였다.
1) 욥은 충고가 아니라 위로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2) 욥은 죄를 지어서 징계를 받고 있는 게 아니었다.
즉, 엘리바스는 너무 성급하게 욥에게 충고를 해주고 있다.
욥기를 묵상한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결국 욥이 맞았다며 하나님께서 욥기 마지막에 복을 내리시지 않느냐"고 말하는 것을 듣곤 한다. 그러니 하나님을 잘 믿으면 복을 받는다는 것이다. 욥기가 비판하는 번영신학을 욥기를 읽으며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게 딱, 엘리바스가 욥에게 하는 소리와 비슷하다.
또 어떤 사람들은, 엘리바스가 말하는 것과 똑같이, 징계가 복이라고 쉽게 충고한다. 지금 내가 잘못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하나님이 알려주신 것이니, 얼른 알아듣고 회개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복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도 고난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신약을 보면, 신자는 반드시 고난을 당할 것처럼 말한다. 다른 말로, 고난을 당하지 않으면 믿음이 잘못되었다고까지도 볼 수 있다.
->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잘못된 신학을 가지고 있으면 잘못된 적용을 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엘리바스의 관점은 아래와 같았다.
말씀을 잘 듣는 사람(선을 행하는 사람) = 복
/ 말씀을 잘 듣지 않는 사람 (악을 행하는 사람) = 저주
이것은 길게 보면 맞는 말이기는 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는 사람은 결론적으로 복을 누리게 된다. 그 복이 꼭 지금 당장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오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엘리바스는 순서를 거꾸로 바꾸었다. 요나도 비슷한 실수를 저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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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을 받았다면 = 선을 행한 사람
/ 고난을 당한다면 = 악을 행한 사람
이러한 관점에서는 욥이 고난을 당하고 있으니, 욥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은 사람, 악을 행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교회에도, 그리고 특히 가나안 성도 가운데에 이런 식으로 대충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 잘못된 신학을 가지고 잘못된 비판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잘못된 비판, 잘못된 적용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바른 신학, 제대로 된 관점, 균형잡힌 성경 해석을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