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십자가에서 하신 다섯 번째 말씀, 고통의 말씀

가상칠언 5

by 닥그라
[요19:28-30] 28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29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위 말씀 중 “내가 목마르다”는 짧지만 깊은 고백입니다. 이 말씀은 단순한 육체적 갈증의 표현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사역 전체를 응축한 상징이며, 우리가 누구이며, 무엇이 필요한지를 반영하는 거울입니다.


복음서에는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두 종류의 음료를 마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첫 번째는 마가복음 15:23에 나오는 몰약 섞인 포도주로, 이는 예루살렘의 경건한 여인들이 사형수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제공한 마취제 성격의 음료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고통을 줄이는 지름길을 거절하셨습니다.


반면, 요한복음 19장에서는 예수님이 신 포도주를 우슬초 가지에 적셔 입에 대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 우슬초는 출애굽기 12장에서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를 때 사용되었던 상징적인 식물로, 예수님이 곧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시는 유월절 어린 양이심을 드러냅니다 (시 75:8, 렘 25:15 참조).


이제 우리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깊이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 예수님은 고통의 지름길을 거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받은 음료는 마취제 섞인 포도주였습니다.

[막15:23]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이는 전통적으로 사형수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사용된 음료였으나, 예수님은 이를 거부하셨습니다. 그분은 고통을 회피하지 않으셨습니다. 마취 없이, 온전히 깨어 있는 상태로, 십자가의 모든 형벌을 직면하셨습니다.


D.A. Carson은 예수님은 채찍에 맞고, 피 흘리고, 태양 아래 탈진한 채로 달려 계셨다고 말합니다.

“A man scourged, bleeding, and hanging on a cross under the Near-Eastern sun would be so desperately dehydrated that thirst would be part of the torture.” - D.A. Carson, The Gospel According to John, p. 619


예수님은 지름길 없이, 완전한 순종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진노의 잔을 다 마시셨습니다


예수님의 갈증은 단지 육체적 탈수가 아닙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시는 중에 갈증을 느끼셨습니다.

성경은 “잔(cup)”이라는 상징을 통해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를 표현합니다:

[시75:8] 여호와의 손에 잔이 있어 술 거품이 일어나는도다 속에 섞은 것이 가득한 그 잔을 하나님이 쏟아 내시나니 실로 그 찌꺼기까지도 땅의 모든 악인이 기울여 마시리로다
[렘25:1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손에서 이 진노의 술잔을 받아가지고 내가 너를 보내는 바 그 모든 나라로 하여금 마시게 하라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기도하셨습니다

[마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그러나 그는 그 잔을 거절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께서 그 잔을 마셨기에 우리는 생명의 물을 마실 있게 되었습니다.




셋째, 예수님의 갈증은 구속의 갈증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갈증은 고통의 상징이자 속죄 사역의 성취였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께서 ‘내가 목마르다’ 하신 것은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심이었다고 기록합니다.

28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이는 단지 “나는 힘들다”는 말이 아니라, 예언된 구속의 계획이 마침내 완성의 임계점에 이르렀음을 선포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갈증은 단지 예수님의 개인적 감정이 아니라,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갈망, 구원을 이루려는 하나님의 갈증이었습니다.

[요19:28-29] 28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29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이는 출애굽기 12장에서 우슬초 가지로 문설주에 어린 양의 피를 바른 장면을 떠오르게 합니다.

[출12:21-22] 21 모세가 이스라엘 모든 장로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가서 너희의 가족대로 어린 양을 택하여 유월절 양으로 잡고 22 우슬초 묶음을 가져다가 그릇에 담은 피에 적셔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 밖에 나가지 말라


바로 그 희생이 지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성취되고 있는 것입니다.




넷째,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갈증을 풀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갈증은 우리를 위한 갈증이었습니다. 그분은 진노의 잔을 마셨기에, 우리는 이제 생명의 샘물에서 자유롭게 마실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생명의 샘을 두고도 종종 다른 곳에서 갈증을 해소하려고 합니다.

– 죄의 쾌락, 일시적인 위안, 중독, 자기 의로움…

– 그렇기에 칼빈은 인간의 마음은 우상 공장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생명의 근원 대신 썩은 웅덩이를 파고 마십니다. 그러나 그곳엔 진정한 해갈이 없습니다. 우물가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지옥의 잔, 진노의 포도주를 끝까지 마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은혜의 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잔을 마실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어디에서 갈증을 푸는가?”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갈증을 대신 느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의 복음 안에서 영원한 만족을 누릴 수 있습니다.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내가 목마르다” 하실 때, 그 갈증은 단지 육신의 고통이 아니라, 죄인을 향한 구속의 갈망이었습니다.


아들 예수께서 고통을 회피하지 않으시고 진노의 잔을 끝까지 마셔주셨기에 우리가 오늘 생명의 샘물을 마실 수 있게 되었음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헛된 우상과 썩은 웅덩이로 향하는 습관을 끊고, 주의 복음으로만 목마름을 채우는 삶을 살게 하소서.


목마른 이 세상 속에서 참된 해갈이 오직 예수님께 있음을 믿고, 그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기도 제목


1. 내 갈증을 진리로 채우게 하소서. 다른 우상이 아닌 주님께로 나아가게 하소서.

2. 진노의 잔을 마신 예수님의 은혜를 날마다 기억하게 하소서.

3. 목마른 자에게 생명의 복음을 나누는 자로 살게 하소서.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십자가에서 하신 네 번째 말씀, 절규의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