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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피 Aug 13. 2018

보고타 날씨는 한 마디로 지랄맞다.

부적응의 보고타, 오늘 맑아 아니 흐려 아니 맑네?


콜롬비아, 열대국가 아니었나요?


우리는 12월의 서울과 12월의 토론토를 거쳐 콜롬비아에 도착했다. 보고타에 도착하자마자 팔통이 꽉 끼도록 겹쳐 입은 외투를 하나둘 벗어 던질 준비를 하고 있었건만. 웬걸, 12월의 보고타는 그 바람이 보기보다 매섭다.


호스텔 샤워기는 극단적인 물 온도를 자랑했고, 따가울 정도로 뜨거운 물줄기를 감당할 능력이 되지 않는 우리는 차가운 물에 빠르게 씻기를 택했다. 머리카락의 물기를 아무리 꼭 쥐어 짜낸다 한들, 침대마다 마련된 두툼한 담요로 턱 밑부터 발끝까지 꽁꽁 싸맨다 한들, 새벽의 차가운 공기가 콧구멍과 목구멍을 헤집어 놓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우리를 맞이하던 호스텔 호스트 ‘루이스’가 목을 꼼꼼하게 감싸는 두툼한 워머를 잠시도 빼지 않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안데스산맥 고원 지대에 위치한 보고타의 고도는 약 2,600m다. 백두산의 해발 고도가 약 2,700m라는 것을, 그리고 보고타가 백두산의 고도에 달하는 엄청난 고산 동네라는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보고타의 기후에 좀 더 유연하게 대체할 수 있었을 텐데.


높은 고도 탓에 보고타는 대체로 일 년 내내 일교차가 큰, 우리나라의 늦가을 또는 초봄과 비슷한 기후를 띤다. 아침저녁에는 스웨터를 걸쳐야 할 정도로 쌀쌀하지만, 해가 쨍쨍한 오후에는 반팔을 입고 다니기에도 무리가 없다.



이랬다저랬다 왔다 갔다 하는 날씨 때문인지 사람들의 옷차림은 자유롭기 그지없다. 그저 입고 싶은 대로 입을 뿐이다. 계절에 따른 옷차림이 비교적 뚜렷한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스웨터가 민소매가 공존하는 거리의 풍경은 볼 때마다 시선을 사로잡았다.


비는 언제나 변덕스럽게 찾아온다. 일주일 치 일기 예보도 믿을 것이 못 되었다. 도무지 맞아 떨어지지 않던 예보가 보란 듯이 맞아 떨어지는 날도 있었다. 먹구름이 잔뜩 낀 아침은 금세 따사로운 햇볕으로 도배된 오후가 되기도 하고, 폭우와 비바람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보고타의 날씨는 한마디로 지랄 맞다.




폭우에 갇혀 버린 소금성당


마른 하늘에도 비가 내리는 곳이니 작은 우산 하나 정도는 가지고 다니는 것이 이로운 동네임이 틀림없다. 우산이니 우비니 가지고 다닐 마음도, 구매할 마음도 없던 우리는 비가 내리면 그곳이 어디든 지붕이 있는 곳에 발이 묶였다.


가끔은 미련하게 그저 달리는 것으로 비를 피하고는 했다. 하지만 그저 달리는 것이 통하지 않는 때도 있었다. 소금성당에 가기 위해 들렀던 마을 ‘지파키라’에서 만난 비가 그랬다. 정말 억수 같은 지독한 비였다.



아침부터 창문 밖 하늘이 심상치 않았다. 우중충한 회색 빛.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보고타의 변덕스러운 날씨를 감안했을 때 언제 비가 쏟아져도 이상하지 않을 날씨였다.


이 상태가 유지되는 건 곤란했다. 집에서 터미널까지 한 시간, 터미널에서 또다시 버스로 세 시간을 달려 마을에 도착하고서도 꼬박 30분을 더 걸어야 소금성당에 도착할 수 있다. 어차피 맞아야 하는 비라면, 돈 들고 시간 드는 소금성당보다는 언제라도 뛰어 들어갈 수 있는 집 앞이 낫지 않나.


“이거 지금 비 오는 건가?”


‘구름 뒤 맑음’이라던 일기예보는 오늘도 빗나갔다. 믿은 놈이 잘못이지. 지파키라행 버스 안에서 본 하늘은 어느새인가 잿빛을 띠고 있었고,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 낼 듯한 구름이 머리 바로 위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살다 살다, 비구름에 쫓겨 뛰어보긴 처음이었다. 하늘 위로 땅따먹기를 하듯 등 뒤에서 쫓아오는 먹구름을 흘끔흘끔 돌아보며 걸음을 재촉했다. 슬픈 예감은 왜 틀린 적이 없는 건지. 얼마 안 가 우리는 먹구름에 따라 잡혔고, 머리 위로는 거센 비가 쏟아져 내렸다. 쉬지 않고 내리치는 천둥번개는 덤이었다.


비를 피하려 뛰어든 빨간 파라솔은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폭풍우에 어이없이 새어 나오던 웃음도 잠시. 몰아치는 비바람에 ‘혹시나’ 하며 챙겨입은 일회용 비닐 우비는 맥없이 찢어졌고, 두꺼운 청바지는 물론이고 속옷까지 홀딱 젖어버렸다. 소금성당은 고사하고 집에는 갈 수 있을까.


휴대전화 화면의 빗물을 닦아가며 마을로 돌아갈 택시를 찾았지만 소용없었다. 강풍과 천둥번개 때문인지 인터넷이 먹통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아랫마을이 온통 물바다가 되어 보고타로 돌아가기는커녕, 여기 파라솔에서 밤을 지새우게 되는 건 아닐까. 달랑 셋만 남은 파라솔 아래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우리도 들어갈까?”

“괜찮겠지? 금방 그칠 것 같은데?”


조금 전까지 오들오들 떨어대던 파라솔에서 겨우 몇 걸음, 매표소는 폭풍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입장권을 사는 관광객들로 붐볐다.



성당 구경을 끝내고 밖으로 나왔을 때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말갛게 개어 있었다. 한 시간 전 폭우를 증명하는 건 군데군데 찢어진 우비와 푹 젖은 양말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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