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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피 Aug 09. 2018

콜롬비아 물가에 적응하기까지

부적응의 보고타, 밥값 따로 술값 따로? 


잊지 말자, 페소에는 페소로


보고타에서 처음으로 아침 식사를 사 먹었을 때다. 10개 남짓한 작은 테이블이 이른 오전부터 손님들로 북적이는 식당이었다. 아빠 손을 잡고 들어서는 어린아이부터 셔츠에 넥타이까지 갖춰 입은 중년 남성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손님들로 가득 찬 가게 중앙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잠시 기다려 달라는 말을 전하고서는 빠르게 주변 테이블을 확인했다. 저 빵은 뭐고 저 수프는 뭐고, 대체 이 고소한 냄새의 정체는 뭘까.



친절한 종업원과 옆 테이블 할아버지 덕분에 더없이 만족스러웠던 아침 식사였다. ‘초코라떼 에스페샬’은 달콤하고 뜨끈한 초코라떼에 부드럽지만은 않은 빵 두 조각,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네모난 치즈 덩어리가 한 접시에 담겨 나오는 이곳의 일상적인 아침 식사 메뉴다. 쭉 찢어낸 한 입 거리의 빵과 그 위에 얹은 치즈 덩어리, 입가심으로 달콤한 초코라떼 한잔. 맛이 없기 힘든 조합이었다.


확신 없이 주문한 ‘창구아는 완벽에 가까웠다. 우유 맛이 나는 고소한 소스에 부드러운 식감의 빵, 잘게 썰린 양파, 풀어 넣은 달걀흰자, 마무리로 고수와 미나리가 올라가는 수프는 더없이 훌륭했다. 소금과 후추를 취향껏 가미하면 그 맛이 배가 된다.


이 모든 게 10달러도 채 되지 않는 가격이었다. 보통, 주민들이 식사를 해결하는 식당에서는 한화로 오천 원 미만의 가격에 맛있는 콜롬비아의 전통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콜롬비아의 생활 물가는 한국의 절반에 미치지 않는다. 여기에서 말하는 생활 물가란 식생활에 치중된 우리만의 체감 물가에 불과하지만, 많은 이들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콜롬비아 물가에 동의할 것이라 생각한다. 풍부한 식재료와 음식에 있어서만큼은 의심할 여지없이 저렴하면서도 훌륭했다. 거리 곳곳에서 소고기와 닭고기가 가득 들어간 ‘아레빠와 신선한 생과일주스를 판매한다. 특히 아보카도를 비롯해서, 한국에서는 마음껏 먹을 수 없었던 생소하고 다양한 채소와 과일을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음식값이 이 정도라면 커피나 아이스크림이나 술값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면 되는 걸까. 과소비는 막아야 하지만 먹는 것과 마실 것에는 엄격하지도, 야박하지도 않은 우리 같은 여행자에게 콜롬비아는 ‘식도락’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식도락의 식(食)이 곧 주(酒)가 되는 우리에게는 더더욱.



한 잔에 천 원도 되지 않는 가격, 갈증 해소가 목적이라면 물 대신 맥주를 선택하는 게 이득이었다. 동네 사람들도 우리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해가 중천에 뜬 시각임에도 빈 병 열댓 개가 쌓인 테이블을 가운데에 두고 마주 앉은 주민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콜롬비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맥주는 ‘클럽 콜롬비아와 ‘뽀께르다. 황금색의 클럽 콜롬비아 오로는 시큼하거나 달큼한 향을 좋아하지 않는, 강하지 않은 탄산과 텁텁하지 않은 마무리를 좋아하는 우리에게 최고의 맥주였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클럽 콜롬비아는 뽀께르에 비해 값이 나간다. 지폐 몇 장을 챙겨 나와 맥주를 한 캔 두 캔 홀짝이다 보면 금세 돈이 바닥났고, 챙겨 나온 돈이 떨어지면 거침없이 카드를 긁었다.


그래서였을까, 하루하루 정해둔 예산을 초과해 사용하면서도 전혀 위기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 이래서는 안 됐다. 아직 갈 길이 멀었다. 가볍게 마실 날이 아니라면 장기적인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차선책인 뽀께르를 구입하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페소는 페소로 비교해야 했다.


낯선 페소 단위에 익숙해져 가면서 한국 돈으로 계산하면 삼천 원도 안 한다는 합리화 과정을 줄여갔다. 페소에는 페소로, 잊지 말아야 할 계산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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