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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ndaleena Aug 16. 2018


예상과 달랐던 보고타 연말 풍경

부적응의 보고타, 이런 하루 이런 생활


집에 가라고 하지 말아 줘


루이스는 호스텔 근처의 ‘황금박물관’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하고는 했다. 엄지를 치켜세우며 좋은 곳이니 꼭 들려보라고 추천하면서, 매주 일요일에는 무료 개방을 한다고 덧붙였다. 한 푼이라도 아끼려 일요일이 오기만을 기다렸건만 웬걸, 일요일 오후의 박물관 정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황금박물관은 12월 23일부터 쭉 휴관 상태였다.


인구의 70% 이상이 가톨릭을 믿는 나라이다. 이곳에서 크리스마스가 갖는 의미가 매우 큰 이유이며, 크리스마스를 앞뒤로 나라 전체가 기념일의 분위기에 휩싸이는 이유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까지 쏟아졌다. 변덕스러운 보고타 날씨라지만, 이번 비는 쉽게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마을 뒤쪽으로 웅장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산 전체가 짙은 안개에 휩싸여 있었다. 당장 천둥번개가 몰아쳐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을씨년스러운 날씨였다. 오늘 저녁, 몬세라테에는 갈 수 있을까.


“한 시간만 더 기다려보자. 그때쯤이면 그치지 않을까?”

“근데 오늘 열기는 할까? 비가 이렇게 오는데.”

“아마도?”



역시나 비는 쉽게 그치지 않았고, 그새 해는 저물었다. 아무래도 몬세라테와는 연이 없는 듯하다.

“몬세라테 입장료로 술을 마시는 게 더 행복할 것 같아.”


볼리바르 광장으로 가는 길은 지나치게 고요했다. 저녁 7시가 아니라 아침 7시도 이보다는 시끄러울 터였다. 길거리의 가게는 모두 문을 닫았고, 드물게 보이던 무리는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12월 31일, 한 해의 마지막 날이다. 저녁 7시에 집으로 돌아가는 건 너무 이르지 않나.


“곧 문 닫는 시간이라…”

“네? 벌써요?”

“연말이니까요. 정리하고 들어가서 가족이랑 보내야죠. 지금은 문 연 곳 찾기 힘들 거예요.”


맙소사, 식당도 마트도 술집도 들어갈 수 없었다. 적잖은 충격이었다. 이건 연말의, 12월의 마지막 밤 풍경이 아니었다.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과 시끌벅적 울려 퍼지는 노래, 활기와 혼돈의 틈 속 엉덩이 붙일 곳을 찾아 분주한 사람들과 그보다 더 분주한 상인들. 집으로 돌아가는 이들과 다시 거리를 배회하는 이들로 인해 불이 꺼지지 않는 우리의 연말 저녁.


     

아쉬움을 뒤로하고 간신히 아레빠 두 개를 손바닥 위에 소중히 모아든 채 호스텔로 돌아왔다. 이제 막 저녁 근무를 시작하던 루이스가 우리를 반겼다. 연말은 가족과 함께 보내는 것, 루이스는 온 가게가 문을 닫았다며 잔뜩 아쉬움을 토로하는 우리에게 당연한 일이라는 듯 대꾸했다.


보고타의 마지막 밤, 그리고 2017년의 마지막 밤. 갈 곳을 잃은 투숙객들은 호스텔에 모여 앉아 있었고, 서먹서먹 시작된 우리만의 연말 파티는 냉장고를 가득 채우고 있던 맥주를 바닥내며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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