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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ndaleena Aug 16. 2018

콜롬비아에서 만난 또 다른 삶

부적응의 보고타, 있는 그대로의 삶의 방식


하루를 이렇게 늦게 시작해도 되는 건가요  

다음 날 아침, 사흘 전 맡겨두었던 빨래는 결국 찾을 수 없었다.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찾아간 빨래방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새해가 밝은 날은 이곳에서도 휴일인 거겠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버스 정류장이 문을 닫았는데 하물며 빨래방도, 식당도, 마켓도 문을 열었을 리가 없다. 


콜롬비아 연말의 여파는 좀 더 거대했고 사적이었다. 거리는 황량했고, 우리는 빨래를 잃었다. 팬티 두 장과 양말 두 켤레. 자연스레 지독한 손빨래의 나날이 예고되었다.


     

경제, 문화, 교육, 행정 등의 중심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보고타는 콜롬비아 제1의 도시이자 수도이다. 모름지기 수도라면 갖게 되는 이미지가 있다. 비슷한 차림의 비슷한 표정을 한 ‘도시인’들이 도심 곳곳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그런 모습. 이른 오전 출근 시간, 한낮의 점심시간, 해 질 무렵의 퇴근 시간이 그렇다.


그러나 이 동네의 생활 방식은 조금 달랐다. 오전 8시의 거리는 한산하다. 10시나 되어야 오가는 사람들이 슬슬 나타난다. 조금은 느리게 흘러가는 도시의 하루. 아, 해가 뜨기도 전부터 빨빨거리며 잠을 깨우고 다니는 오토바이와 골목 깊숙한 곳까지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마을버스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이곳에서는 간혹 월요일이 휴일이 되기도 한다. 선정 기준을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콜롬비아에서는 월요일이 휴일로 지정되는 경우가 잦다. 누구는 종교 휴일이라고도 하고 누구는 그저 휴일이라고도 하는 월요일 휴일. 이들은 토요일, 일요일에 이어 월요일까지 휴일이 되는 경우를 ‘씨끌로 뿌엔떼(Ciclo Puente)’라고 부른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위해 일찍이 가게 문을 닫는 이들. 토요일은 토요일이기에, 일요일은 또 일요일이기에 일터가 아닌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이들. 선택과 선택하지 않음의 기준을 자신에게 두며, 그 어떤 것에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 이들. 단편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자신의 노동에 대한 가치를 그 나름의 방식으로 새로 쓰고 지켜나갈 수 있다는, 다분히 이상적인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듯했다.


혹자는 이들의 근로 환경을 체계적이지 않다고 말하기도, 혹자는 노동을 대하는 이들의 태도가 근면 성실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 나태함과 게으름이 콜롬비아를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자 족쇄라 비난하기도 한다. 


우리는 아주 잠시 이들의 삶 언저리를 기웃거리다 온 여행자에 불과하기에 옳고 그름을 논할 깜냥이 되지 못한다. 단지 이런 사람이 있다면 저런 사람이 있다는 것, 이런 삶이 있다면 저런 삶이 있다는 것, 이런 가치가 있다면 저런 가치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 적어도 우리가 만난 이들의 삶은 그 자체로 치열했으며 그 누구로부터도 존중받을 권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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