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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ndaleena Aug 18. 2018

보고타의 치안 그리고 두 얼굴

부적응의 보고타, 들어오지 말라는 팻말 같은 건 못 봤는데도

밤의 얼굴, 그리고 낮의 얼굴  


콜롬비아는 대한민국 외교부에서 지정한 여행 위험 국가로 분류된다. 불안정한 정치 상황과 내전, 활성화된 게릴라 부대와 마약 전쟁 등 큰 몸살을 오래 앓아 왔기 때문이다. 콜롬비아의 경제가 호전되고 국민들의 주머니 사정이 넉넉해지는 것과 별개로 긴 세월, 한 국가의 굵직한 역사적 사실로서 그 존재감을 과시해 온 불안과 두려움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긴장과 눈치가 일종의 동행자와도 같은 여행객에게는 더욱 그렇다.


떠나기 전 위험하다고 소문난 콜롬비아, 그 안에서도 강도가 가장 높다는 보고타를 시작점으로 잡았다는 사실에 걱정이 마음 한편을 비집고 나오기도 했지만, 적당히 그것을 외면하고는 했다. 가야 할 곳과 그래서는 안 될 곳을 구분하고, 자물쇠를 구매해 가방을 꼼꼼하게 잠그는 건 지내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다는 게 우리였다.


“올라!(안녕!)”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각이었다. 첫날, 막 도착한 호스텔 앞 골목에서 마주친 남자는 구멍이 난 반바지에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있었다. 눈이 빨갛게 충혈되도록 술에 취한 그는 대답 없는 우리의 주위를 한참 맴돌았다. 금빛 가로등에 비친 운치 있는 돌길은 순식간에 으슥한 뒷골목이 되었고, 귀여운 벽화 뒤로 집집마다 굳게 닫힌 철창이 눈에 들어왔다.


도망치듯 들어선 호스텔 침대에 누워 창문 틈 사이로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을 보며 온갖 걱정을 떠안았던 그때.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곳에서 잘 지낼 수 있을지, 다치지는 않을지, 어디서 사기라도 당하는 건 아닐지. 앞으로 남은 75일에 갖가지 상상을 더해가며 겁을 냈다.



뛰뛰- 뛰뛰-, 부르릉 부르릉.


시끄러운 바깥소리는 새벽같이 우리를 깨웠다. 창문 밖을 내다보니 버스와 오토바이가 줄을 지어 골목을 지나고 있었고, 아침을 파는 아주머니와 학교로 향하는 학생들이 보였다. 저 멀리 몬세라테 언덕으로는 물안개가 내려앉았고, 아래로는 높이도 모양도 다른 제각각의 울긋불긋한 다홍색 지붕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며칠간 조금은 익숙해진 거리를 따라 볼리바르 광장으로 향했다. 양옆으로 갖가지 상점이 늘어선 길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사람 반, 비둘기 반. 불어난 인파에 약간은 긴장한 채 광장 한가운데로 들어섰다.


“사진 찍어드릴까요?”

“네? 같이 사진 찍자는 말인가요?”

“아니요. 저희는 경찰이에요. 사진 찍고 싶으면 언제든지 부탁해도 된다고 말해 주려고요.”

“하하, 괜찮아요.”



이 능숙하고 능청스러운 경찰들이 분주하게 사람들 사이를 오가던 이유는 경찰 박물관을 홍보하기 위해서였다. 경찰뿐만이 아니다. 광장을 지키는 군인 중에도 군사 박물관을 홍보하는 것이 주된 일인 이들이 있었다. 짝을 지어 다니며 팸플릿을 나눠주고 대화를 건다. 한 명이 수줍게 다가와 박물관을 홍보하면, 다른 한 명은 한 발자국 물러선 거리에서 그 광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생소하지만 어딘가 말랑한 분위기에 도시를 누비는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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