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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피 Aug 20. 2018

내일이 기대되는 야망의 보고타

부적응의 보고타, 도시를 둘러싼 변화의 바람


바람이 분다, 그렇게 내일은 온다


“한국에서는 아직 콜롬비아가 위험한 나라라는 인식이 강해. 보고타 같은 큰 도시는 특히나.”


혹자는 깐델라리아의 밤거리를 걷는 것은 금기라 했다. 누군가는 강도와 살인의 위협을 받았다고 했다. 믿을 구석을 만들지 않는 것이 좋은 동네, 한때 높은 살인율로 공포스러운 명성이 자자한 도시였다.


“몇 년 전까지는 많은 일이 있었지. 사람들이 왜 그렇지 생각하는지 충분히 알 것 같아. 게릴라, 마약 카르텔, 뭐 많잖아. 그렇지만 확실히 과거랑 지금은 달라.”

“콜롬비아에서 만난 다른 친구들도 콜롬비아가 바뀌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더라. 콜롬비아를 여전히 마약만 있는 위험한 나라라고 생각하는 걸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네 생각은 어때? 보고타에 사는 사람으로서 말이야.”

“지금은 많이 바뀌고 있지만 20년 전만해도 범죄가 엄청난 곳이었지. 도시에서 공격이 일어나는 일도 많았고. 여전히 위험한 구역도 있고, 특히 밤에는 더 그래. 그렇지만 보고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위험은 세계 어디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


출처: (좌) REUTERS, 2015.09  (우) 콜롬비아와 반군, 50년만에 역사적 평화협정 서명식, 뉴시스, 2016.09


정부군과 게릴라의 다툼은 지속되었다. 공격은 반격을 불렀고, 반격은 또 다른 반격을 낳았다. 정부가 시민을 보호하지 않는다면 자신들이 나서겠다며 등장한 민병대는 마약 밀거래자들과 협력했고, 마약 운송 통로를 장악하려는 목적의 무작위적 학살이 벌어졌다. 한 국가 내에서 벌어지는 세 집단의 무력 다툼은 보호와 통제라는 허위 좋은 명목하에 너무나도 잦게, 그리고 공공연하게 자행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콜롬비아가 변화했음은, 그리고 변화하고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무소속 출신의 ‘알바로 우리베’가 재선에 성공하면서 콜롬비아 무장 투쟁의 양상은 크게 변화했다. 공고했던 양당 체제는 흔들렸고, 미국의 자원 조달과 무기의 현대화를 통해 세력을 강화한 정부군은 게릴라의 확대를 저하시켰다. 콜롬비아 정부는 2016년 11월 ‘FARC(콜롬비아 혁명무장세력)’과 평화 협정을 체결해 그들을 합법적 정치 단체로 인정하는 등 폭력 시대의 완전한 종결을 위해 힘쓰고 있다.



그리고 보고타는 변화의 의지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담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었다. 황금박물관부터 보테로 미술관, 국립박물관, 군사박물관에 경찰박물관까지. 박물관의 도시라는 애칭답게 노랑, 파랑, 빨강, 분홍의 형형색색으로 칠해진 거리를 걷다 보면 곳곳에서 특색 있는 박물관들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보고타 박물관은 ‘보고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말 그 자체였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보고타의 역사적 흐름을 보여주는 ‘역사관’과, 공공시설 등 보고타의 도시 계획을 공유하고자 만들어진 ‘미래관’으로 나뉘어 운영되고 있었다.



“여기가 몇 년 뒤의 보고타라고?”


보고타 박물관에서는 계획 전시가 한창이었다. 오전 9시와 오후 3시, 저녁 6시 등 도시 곳곳의 소리를 녹음해 들려주는 상자에 들어가면, 마치 보고타 어딘가 거리 한복판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2층 전시실에 설치된 스크린에는 보고타의 몇 년 뒤 모습을 담은 영상이 반복재생되고 있었다. 보고타의 새로운 교통수단이 될 트램은 북쪽에서부터 저 아래 남쪽 지역까지 이어져 안전한 거리를 만들었고, 도시 곳곳의 문화를 연결하는 연결 통로로 자리매김해 있었다. 나무 하나 없는 산꼭대기에는 케이블카가 들어서고, 학교와 공원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야망의 보고타. 감탄이 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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