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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피 Aug 20. 2018

이 도시를 좋아하게 될 거예요.

부적응의 보고타, 마음껏 좋아하기를 택하다


근데, 그냥, 그저, 좋아


“막상 와보니까 위협이나 위험이랄까, 뭐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지 않았어. 고작 한 달 남짓 있었지만, 콜롬비아는 우리한테 특별한 곳이었어. 친절하고 유쾌하고, 그래서 오히려 안전하게 느끼기도 했던 것 같아.”

“어떤 부분에서?”



“음, 보고타에 있을 때 올드 타운에 있는 호스텔에서 지냈거든. 볼리바르 광장이랑 가까운 데였어. 사람들이 올드 타운은 우리 같은 관광객이 밤에 돌아다니기에 너무 위험하다더라고. 근데 우리는 사실 잘 몰랐고, 그래서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했어. 놀고 싶을 때 놀러 나가고 쉬고 싶을 때 쉬러 들어가고. 그런데 아무 일도 없었거든. 물론 운이 좋았던 거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음, 말을 거는 사람 중에는 나쁜 사람보다 도와주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았던 것 같아.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이것저것 챙겨주려고 하는 게 우리는 늘 신기했어.”



굳게 닫힌 문마다 설치된 철창과 외곽 지역에서 목격했던 경계 어린 눈빛. 마약과 폭력,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과 무장 세력들 간 오랜 내전의 영향으로 여전히 가난하고 위험한 도시. 아니면 마음껏 뛰어놀 수 있을 푸른 빛 공원과 네모반듯한 아파트가 들어서던, 혹은 친절하고 활기 넘치는 사람들로 가득한 소박하고 정겨운 풍경을 간직한 도시. 아직까지도 우리는 어느 것이 보고타의 진짜 얼굴인지 장담할 수 없다.


우리는 어딘가, 분명히 취해 있었다. 사용하는 언어, 사람들의 생김새, 먹는 음식, 낯선 이를 대하는 방식 등 하나부터 열까지 이 동네는 외지인의 긴장을 풀어버리는 탁월한 재주가 있다. 상점마다 고용된 경비원과 곳곳에 퍼져 있는 경찰들, 한낮에도 결코 활짝 열어 놓는 법이 없는 수많은 문을 보고도 우리는 거침이 없었으니 말이다. 


거리를 가득 메운 소란은 활기가 넘쳤고 호기심 가득한 눈빛에서 적의를 찾기란 어려웠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부에노스 디아스! 꼬모 에스따?(안녕! 좋은 아침이에요!)”를 외치는 이들을 경계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우리가 느끼던 안정감은 착각과 외면이 아니었다. 의자 밑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가방은 우리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 의해 등 뒤로 옮겨졌고, 부주의하게 손에 들린 휴대전화는 염려와 우려로 가득 찬 눈동자에 의해 가방으로 들어가고는 했다. 그들의 적극적인 호감 표현에 긴장과 경계는 금세 자취를 감춘다. 콜롬비아 친구들은 보고타를 “아름다운 도시"라고 말했다. 분명 보고타를 좋아하게 될 거라는 말을 덧붙이는 이도 있었다. 


그들이 옳았다. 알면서도 모른 척 노곤하게 늘어지고 싶은 도시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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