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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 Sep 06. 2018

반장엄마

| Sorry, mother |     햄버거는 왜 그렇게 맛있는지


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시기를 꼽아 보라면 나는 주저 없이 고등학교 시절을 선택할 것이다. 중학교 때부터 해오던 반장 역할에 심취해 '본격 반장노릇'을 했던 시기이기 때문에.

내가 리더십을 부리면 반 친구들이 잘 따라주었기 때문이 아니다. 함께하는 즐거움과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꿀 수 있다는 굳은 믿음이 생긴 시기 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전체 학급 중 평균 체급이 작은 우리 반이 체육대회를 휩쓴다던가, 만우절이나 스승의 날 행사를 잘 치러 담임 선생님의 어깨가 으쓱해지는 기획을 해 낸다 던지 하는 것들 말이다.


물론 고1 때부터 고3 때까지 이어온 연애와 반장 역할에 충실하느라 본 과업인 성적은 쭉쭉 떨어졌지만 그때는 그게 뭐 대수냐며 나에게는 '소명'이 있다는 마음으로 학급을 이끌어 나갔다.

지금은 모두가 연락하고 지내지 못하고 간혹 사이가 틀어진 친구들도 있지만, 적어도 고3 내내 내가 맡은 반의 선생님들은 "올해도 잘 부탁한다." 하는 신뢰의 말씀을 해주셨음으로 이는 곧 나의 고등학교 시절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멘트였다.


지나고 생각해 보니 학창 시절 내내 철없이 반장을 했나 싶다. 그때는 학기마다 돌아오는 반장을 하지 못하면 마치 올림픽에서 실수한 선수처럼 내 지난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Photo by TK Hammonds on Unsplash


내가 반장이라는 성취감에 도취되어 있을 때 엄마에게는 어쩔 수 없이, 그리고 반강제로 달린 '반장 엄마'타이틀이 반갑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차마 생각하지 못했다. 

수반되는 반장엄마 노릇에 휴가도 못 내는 회사에서 운동회며, 학부모 총회며 얼마나 상사의 눈치를 보며 끙끙 댔을까.

또, 엄마들 치맛바람 속에서 성격에도, 가치관에도 맞지 않는 이야기들을 하고 듣느라 고생했는지 모른다. 수시로 걸려오는 친구 엄마들의 전화에 나 몰래 전화를 받느라 수화기를 들고 이방 저 방을 옮겨 다녔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노골적으로 반장엄마가 주도하여 선생님에게 촌지를 줘야 한다는 엄마도 있었다고 한다, 또 우리 반 아이들이 다른 반 아이들보다 좋은 대우를 받아 기를 꺾이게 하지 않아야 한다며 이번 행사 때는 얼마를 낼 거냐고 전화했다는 친구 엄마도 있었단다. 

엄마는 그럴 생각도, 마음도 없다며 단호하게 대응했다지만, 누구인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친구 엄마 때문에 상당히 상처받았으며 혼란스러웠으리라.

뭐 그런 부모가 다 있냐며 어떤 놈인지 찾아낼 테니 성이라도 기억해보라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지금 와서 이름을 안다 한 들 내가, 그리고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어쩌면 엄마에게는 휴가를 주지 않는 상사보다 괜히 반장이라며 매 학기마다 시간과 돈을 쓰게 하는 내가 더 미웠을지도 모르겠다.

"엄마 나 또 반장 됐어! 짱이지?"

"역시 우리 딸 잘 해낼 줄 알았어!"

줄기차게 반장질을 해대며 반 아이들에게 햄버거와 피자를 돌려야 한다던 내가, 엄마는 정말 자랑스러웠을까?









어머니에게 예쁜 옷을 선물해라. 자녀를 위해서 젖은 앞치마로 반평생을 사고 있으니.
- 이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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