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orry, mother | 엄마라고 왜 하고 싶지 않았겠어
학교에서 학생들과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가정사나 존경하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다. 여학생에게 한정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딸'들이 엄마에게 가지는 존경심은 어렴풋이 비슷한 느낌이 난다. '엄마'라는 단어를 말하면서 목소리가 떨린다거나 눈시울을 붉히는 학생들이 많기 때문이다.
모든 부모가 자녀들에게 티를 내지 않는 것처럼 자녀들 또한 부모에게 티를 내진 않지만 존경하고 숨길 수 없는 사랑의 느낌을 지니고 있다. 단, 표현에 서툴 뿐이다.
나 또한 옛날부터 존경하는 인물을 뽑으라면 진부하게도 엄마를 선택했다.
뭐 대부분의 자식이 ‘어머니’=‘희생’=‘존경’이라는 알고리즘을 부정할 수 있겠냐만은.
율곡 선생이나 안중근 의사도 신사임당과 조마리아 여사를 존경했을 것이다. 한 시대의 위인을 떠나 당신들의 어머니로써.
이순신 장군도 1592년 1월 1일 난중일기의 첫 페이지를 '새벽에 아우 여필과 조카 봉, 맏아들 회가 와서 이야기했다. 다만 어머니를 떠나 설을 쇠니 간절한 회환을 가눌 수 없다.'로 시작했으니 어머니에 대한 모든 자식의 마음은 말로 하지 않아도 다 똑같다.
엄마가 수십 년 일하면서 보여준 리더십 같은 것들이 엄마를 더 크고 멋있게 만들었다. 한 번도 회사 사람들에 대해서 이러니저러니 험담을 하지 않는 것이나, 동료에게서 배울 점 을 늘 찾는 점이나, 마무리하지 못한 일들을 집으로 가져와 어떻게 하든 책임지는 것들. 이런 작은 것들이 모여서 존경이 되었다.
"엄마는 참 멋진 분이셔"
엄마의 회사 사람들이 내게 말할 때면, 확성기에 대고 "우리 엄마다!!" 하고 싶을 만큼 자랑스러웠다.
엄마는 승진의 기회가 있었을 때 포기했고, 배움의 기회가 있었을 때 거절했다.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서 본인의 커리어를 포기하고 현실에 안주했던 것이다.
어렸을 때는 ‘뭐 그게 별거냐’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나와 언니가 없었으면 더 멋진 커리어우먼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엄마의 커리어에 있어 나는 넝쿨식물처럼 엄마의 팔다리를 옭아맸다.
어미 펠리컨은 먹이가 없을 땐 새끼에게 제 살을 떼어준다. 또 새끼가 병에 걸리면 자신의 핏줄을 터트려 기꺼이 피를 나눈다. 쉬운 일이 아니다. 어지간한 모성애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내 엄마는 그렇게 자연스럽고 당연한 듯이 어미 펠리컨이 되었다.
결국엔 사랑, 희생 이런 멋진 말로 엄마의 커리어를 안 보이게 포장하고 덮었는지 모른다.
엄마는 나의 위대한 선생님 이시다. 연민과 사랑 그리고 용감을 가르쳐 주었다. 만일 사랑이 꽃처럼 달콤하다면 어머니는 내가 사랑하는 향기로운 꽃이다.
- 스티비 원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