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 내 마음대로

밀키트는 내 덕, 햄버거는 남편의 탓

by Carroty

점심을 먹고 혈당 스파이크 때문인지 잠이 몰려왔다. 결국 쏟아지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기절하듯 잠들었다. 꿈에서 나는 소스에 푹 적셔진 경양식 돈가스를 먹으며 황홀경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 낮잠을 자기 위해 침대를 찾은 남편이 나를 건들면서 꿈에서 깨어났다. 나도 모르게 '아이씨, 내 돈가스'라고 말했더니 남편이 자신이 돈가스보다 못한 존재냐며 서운함을 토로했다. 그런 남편을 뒤로한 채 다시 잠들려고 해도 눈앞에 장면만 어른거릴 뿐, 돈가스의 맛은 느낄 수 없었다.


꿈속의 돈가스를 잊지 못한 나는 결국 컬리로 돈가스와 돈가스 소스를 주문했다. 물론 터치 한 번으로 조리가 완료된 돈가스를 바로 받아 볼 수 있었지만, 내 핸드폰에는 1월 1일부터 배달 어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스스로를 세뇌하기로 했다.


콩국물과 면을 사서 콩국수를 해 먹고, 냉면 밀키트와 만두를 주문해서 냉면세트를 해먹기도 했다. 떡볶이와 튀김도 밀키트의 도움을 받았다. 봉지만 뜯어서 끓였을 뿐이지만, 물 계량도 가스불을 켠 것도 나였으니 이건 엄연히 '나의 요리'였다. 밀키트는 적어도 배달은 아니니까, 그리고 밀키트로 먹는 게 배달보다 조금 더 저렴하기도 했다. 약간의 수고로 몇 천 원에서 몇 만 원까지 아낄 수 있었다.


메뉴만 봤을 땐 다이어트에 도움 되는 음식이 아니지만 그런 건 개의치 않기로 했다. 일전에 내 피드를 점령했던 수많은 홈트 선생님인 주원쌤, 스미홈트, 지니쌤 등등... 5년 넘도록 '저장'해 온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하나씩 지워가며 더 이상 다이어트에 얽매이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나는 다이어트 대신 배달음식 줄이기와 간식 줄이기를 올해 다짐에 넣었다.


그래서 매일 공복 체중을 측정하는 것도 멈췄다. 일주일에 한 번, 수요일마다 측정하기 시작했다. 나는 살을 빼야 한다는 강박에서 일단 벗어나기로 했다. 물론 내가 가진 질환 모두 살을 빼야 도움이 된다고 의사들은 말하고 있지만, 다이어트로 인해 강박이 생기면서 내가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조카와 놀고 돌아오는 길, 창밖을 바라보며 문득 '맥도날드 후렌치 프라이'가 생각났다. 입 밖으로 한 글자도 꺼내지 않고 잘 참고 있었다. 밤 열두 시가 다 되어갈 때쯤, 남편이 말했다.


"맥도날드 햄버거 먹고 싶다."

"허? 나 안 그래도 집 오면서 후렌치 프라이 먹고 싶다는 생각 했는데!"


그런 날 보고 남편은 씩 웃었다.


"우리 수술하느라 고생한 남편이 먹고 싶다는데, 먹어야지. 안 그래?"


나는 핸드폰을 열어 맥도날드에 1955 버거 세트와 불고기 버거 세트를 주문했다. 하나는 내 거였다. 그리고 먹고 싶었던 후렌치 프라이를 하나 더 시켰다. 모자라면 아쉬울 것 같았다. 그렇게 오늘 또다시 무너졌다. 남편 때문이었다. 후렌치 프라이는 짭짤한 게 그 여느 때보다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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