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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roty Oct 13. 2024

남편에게는 비밀입니다

비밀이야기, 열한번째날

안 그래도 어제 몸무게 이야기로 혀가 많이 길어졌는데, 아침에 몸무게를 재고 놀랐다. 조금만 더 빠지면 앞자리가 바뀔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벅차올랐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69kg은 마의 몸무게다. 조용히, 천천히 나는 그 마의 협곡을 넘어서야 한다. 내 경험상 69kg, 66kg, 62kg, 59kg, 56kg, 52kg이 체중 감량 중 어려운 구간이다. 하지만 남편을 속이듯 내 몸을 속이고 있으니까, 체중에 집착하지 않으면 결국 극복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오늘은 오랜만에 시아버지와 함께 식사를 했다. 메뉴는 추어탕과 돌솥밥이었는데, 추어탕은 밥을 말아먹기 좋은 간을 해서 그런지 내 입에는 짰다. 돌솥밥에 넣으라고 주신 뜨거운 물을 잔뜩 넣어 간을 맞춘 후 밥 위에 건더기를 건져 올려먹었다. 누룽지를 만들기 위해 둔 밥은 세 숟가락만 먹고, 덜어낸 밥은 두 숟가락을 남겼다. 나름대로 혈당을 신경 쓴다고 탄수화물 양을 줄이고, 반찬으로 나온 콩나물을 많이 먹었다. 

당뇨약을 처방받아 드시는 아버님과 우리의 이야기 주제는 '당뇨'였는데, 최근 혈당을 측정하기 시작한 이후로 알게 된 지식과 더불어 나의 경험을 아버님과 나누었다. 남편에게 나 요즘 공부 많이 했어, 하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식사를 마치고 가볍게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한잔 마시고, 아버님과 우리 부부는 봉안당으로 향했다. 14년 전에 돌아가신 시어머니와 7년 전에 돌아가신 우리 아빠가 함께 계신 곳이라 이곳을 찾을 때면 항상 아버님과 같이 온다. 완연한 가을날씨에 기분 좋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시어머니와 아빠를 찾아 인사를 나눴다. 


한 40분 정도 걸은 것 같은데 너무 힘들었다. 이상하게 지쳤다. 이게 무슨 일인가, 내가 체력이 이것밖에 안되나 곰곰이 생각하면서 집에 오는데 '밥을 먹고 걸어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혈당이 올라서 늘어지고 싶은 나를 끌고 나가서 걷게 한 것과 같은 효과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집에 돌아와서 측정한 혈당은 98mg/dl로 나쁘지 않은 수치였다. '아, 밥을 먹고 40-50분 정도는 걸어야 하는구나'라고 깨달았다. 너무 어려운 일이다. 세상엔 역시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없다. 건강이 나빠지는 것은 쉬운데, 건강이 좋아지는 것은 어렵다. 


요 며칠 수면 사이클이 망가진 것 같아서 낮잠을 꾹 참았다. 대신 최근에 구입한 '사찰이 떠오르는 향'을 가진 초를 켜고 글을 썼다. (이 향초를 켜고, 반야심경을 들으면 편안함의 무아지경에 빠질 수 있을 것 같다.) 요즘 나의 최고의 휴식은 글을 쓰는 것 또는 책을 읽는 것이다. 물론 누워있는 것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래서 취침시간 외에는 침대와 멀어지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주말에도 밥 먹으면 누워있다가 자는 게 일상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그보다는 조금 더 활동적으로 지내보려고 한다. 당장 밥 먹고 나가서 걷진 못하더라도 앉아는 있어보려고 한다. 그러다 지겨우면 밖에도 나가고 싶고, 걷고 싶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까. 한 번에 좋아지려고 애쓰기보다 조금씩 나아지려고 노력 중이다. 내 성격에 조바심을 내는 순간 다 끝내버리는 걸(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얼마나 오래 살겠다고, 이런 식으로 다 엎어버린다.) 이제는 알기에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저녁은 현미밥에 얇은 목살과 된장찌개. 그리고 채소가 없어서 굳이 마트에 나가서 사온 쌈채소. 된장찌개를 남편이 끓였는데, 너무 맛있었다. 쌈채소를 많이 먹어 배가 부른 덕에 밥을 더 먹지 않았지, 그렇지 않았다면 '한 공기 더!'를 외쳤을 뻔했다. 얇은 목살은 굽기가 너무 불편해서 그렇지 차돌박이나 대패삼겹살보다 적은 지방으로 같은 기분을 낼 수 있었다. 가끔 차돌박이에 밥 싸 먹는 느낌이 그리우면 대체식품으로 먹을 것 같다.


오늘은 저녁을 먹고 샤인머스켓을 참았다. 아직 두 송이가 남아서 결국 먹긴 먹을 텐데 제법 괜찮은 오늘의 혈당기록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좋은 수치가 지속되면 나도 그에 자극받아서 더 건강한 식사와 생활을 하려고 자극받을 것 같다. 한 번에 좋아지길 기대할 수 없다. 적어도 10년 이상 망쳐온 생활습관인데, 하루아침에 달라지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나는 이 사실을 끊임없이 자각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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