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남들보다 쉽게 지칠까

인문

by Carroty

아직도 하루에 적어도 세 번은 나를 찾는 회사 전화에 퇴사가 실감 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틀 만에 책 한 권을 읽어내는 속도를 보아, 슬며시 여유를 느끼고 있다. 퇴사일인 6월 30일, 휴가를 내고 집어든 책은 '나는 왜 남들보다 쉽게 지칠까'였다. 종일 자다 지쳐 다시 누운 채, 밀리의 서재를 기웃거리다 고른 책이었다. 책의 주제는 최근 SNS를 핫하게 달군 주제였던 'HSP(초예민자, Highly Sensitive Person)'였다.


실제로 책 앞부분에 있는 HSP테스트에서도, 인터넷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HSP테스트에서도 나는 '높은 수준의 예민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가까운 주변 사람들에게서도 익히 듣고, 나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다. 나는 꽤 예민한 사람이라는 걸.


특히나 HSP들은 과부하가 걸리기 쉬운 신경 체계를 타고났기 때문에 잦은 휴식과 주기적인 힐링이 필수적으로 요구됩니다. 때문에 자신의 심미안을 충족시키는 요소들을 활용한 취미생활과 루틴은 에너지 충전에 무척 도움이 됩니다.

밀리의 서재 p.27 (종이책 p.23~24) / 나는 왜 남들보다 쉽게 지칠까 | 최재훈 | 서스테인


우리가 주로 '힐링이 됐다'라고 말하는 상황은 내가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것을 할 때다. 최근 몇 달 동안 너무 지쳐 아주 가벼운 웹소설이나 웹툰 외에는 읽을 엄두를 내지 못했고, 글쓰기는 더욱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나마 가장 힘들었을 때, 꾸역꾸역 토해낸 감정들로 빚어낸 글이 있었기에 그 시기를 버텨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글쓰기를 하지 못하는 나는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소진만 하다 보니 몸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편두통이 오고, 안면에 경련이 일어나고, 수면장애가 생겨서 나의 퇴사일을 앞당겼다. 예민한 나를 돌보지 못한 탓이었다.


평일에는 집에 오면 누워 자는 게 전부였고, 주말에도 침대 위에 널어놓은 반건조 오징어처럼 흐느적거렸다. 밥을 먹는 시간 외에는 누워있었다. 회사에서는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빠르고 일을 해치웠던 사람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집에 있는 나는 누워서 남편에게 약과 물을 가져 다 달라고 청했고, 심지어 침대 발치에 있는 선풍기도 건넌방에 있는 남편 보고 켜달라고 부탁했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싫은 소리도 할 법한데 그런 말 한마디 없이 해준 남편이 대단하다.


집에서는 보통 축 늘어진 파김치처럼 지내는 경우가 많고,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게으르다고 오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그저 완전히 방전된 상태인 거죠.

밀리의 서재 p.44 (종이책 p.33) / 나는 왜 남들보다 쉽게 지칠까 | 최재훈 | 서스테인


소설로는 읽었지만, 영화로는 절대 볼 수 없었던 '도가니'처럼 미디어로 보이는 폭력적인 장면을 견디지 못하는 것 등. 이 책은 저자가 나의 삶을 지켜보고 써내려 간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처럼 살아보려고 치열하게 살았던 흔적을 남기고 사회생활을 정리했다는 것에 큰 위로였다. 돌고 돌아 진짜 나의 모습을 찾아 한 발 내디딘 지금 내 상황에 절묘한 책이었다. 그리고 저자가 제안하는 몇 가지 방법은 몇 년 전부터 '나를 찾기 위해' 해 온 노력 중 일부라 '그동안 참 잘했다'며 인정받은 기분이었다.


나와의 대화, 나에 대한 칭찬, 나에 대한 위로, 나에 대한 배려, 나를 향한 따뜻함. 내 삶의 웰빙을 결정짓는 의외의 요소는 바로 나 자신과의 관계입니다. 인생에서 다정하게 내 이름을 불러주며 항상 날 응원해주고 위로해주는 사람을 만나기란 정말이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스스로에게 그러한 존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얼마든지 인생의 동반자를 자급자족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밀리의 서재 p.381 (종이책 p.230~231) / 나는 왜 남들보다 쉽게 지칠까 | 최재훈 | 서스테인


나는 HSP에 가까운 사람이지만, 이것만이 나를 단정 짓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계속해서 나 스스로를 탐구할 것이고, 나에게 맞는 방향을 찾아갈 것이다. 어떻게 하면 나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들어갈지 끊임없이 고민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 중 하나는 이렇듯 책에서 찾아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계속 독서일기를 써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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