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버멘쉬

인문

by Carroty

'위버멘쉬'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회사 동료의 레터링에서였다. 회식 자리에서 오른쪽 손목부근에 레터링이 보이길래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그는 친절하게 설명해 줬다. 니체가 추구한 인간상인데, 고통으로도 자신을 성장시키는 기회로 만들고, 자신의 가치를 계속해서 뛰어넘고자 하는 마음으로 타투를 하게 되었다고. 공교롭게 G-DRAGON의 최근 앨범명이 '위버멘쉬'여서 본인이 따라한 것처럼 느껴지게 됐다는 이야기에 다 같이 웃어넘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마주한 '위버멘쉬'는 그 뜻을 다 헤아리기에 너무 어려운 단어였다. 그러던 중 책 제목으로 만나게 되었다. 내가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부분을 짚어주는 책이 아닐까 싶어서 읽기 시작했는데, 책의 서문을 읽고 본문으로 넘어간 순간 아차, 싶었다.


니체의 『위버멘쉬』가 여러분의 삶에 작은 불씨가 되길 바랍니다. 인생이 롤러코스터처럼 요동칠 때조차, “나를 죽이지 못하는 시련은 결국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는 믿음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눈앞에 펼쳐진 고통과 상황은 모두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반드시 길이 있다고 믿으세요. 넘어서는 순간, 원하는 것을 온전히 손에 쥘 수 있는 자신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스스로를 더욱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삶이 주는 모든 경험을 내 편으로 만들고,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는 여정이 되길 바랍니다.

밀리의 서재 p.17 (종이책 p.11) / 위버멘쉬 |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 어나니머스 옮김 | 떠오름


잘못 골랐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의도와는 다른 책이었다. 분명히 좋은 책이었지만, 이 책은 전자책으로 읽기보단 종이책으로 사서 하루에 한 챕터씩 '두들겨 맞는' 느낌으로 읽어야 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왕 읽기 시작한 거, '서평 아니고 독기'라도 작성할 요량으로 천천히 읽어나갔다. 하루에 한 대씩 맞을 걸, 이틀에 몰아 맞는 느낌이라 많이 아팠다. 하지만 책을 덮을 때쯤에는 처음에 한 번 가볍게 쭉 읽고, 나중에 필요한 부분만 읽어나가면서 필사하면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퇴사를 하고 새로운 길을 나아가려는 내게 '네가 고통스러워할 틈이 어디 있어! 힘을 내!'하고 궁둥이를 때려주었다. 하지만 반대로 신입사원이나 직장인 저연차이면서 '이 길이 맞나' 고민이 드는 사람들이 읽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무언가 주저하고 있을 때 곁에 두기에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건, 나 스스로가 단단해질 수 있는 힘을 가지게끔 해주는 문장이 가득 담겨있기 때문이었다.


바로 지금, 당신만의 길을 만들어라. 현실의 한계에 갇히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면서 전진해라. 완벽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반드시 움직여야 한다.

밀리의 서재 p.43 (종이책 p.24) / 위버멘쉬 |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 어나니머스 옮김 | 떠오름


한 챕터씩 문장을 곱씹으면서 사유를 하면 글 한 편을 써 내려갈 수 있을 정도로 나 스스로와의 대화를 하기에 충분한 이야기가 많았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으로 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 나만의 길이란 무엇일까?

- 내가 지금 갇혀 있는 현실은 어디일까? 그리고 이 한계는 어디일까?

- 나 스스로 지정한 한계점은 어디에 있을까?

-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이란 어떤 모습일까?

- 나는 지금 어떤 모습의 나를 추구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추구하는 '나의 완벽'이란 어떤 모습일까?

-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나는 직장인이라는 현실의 한계에서 벗어났다. 퇴사는 굉장히 두려운 일이었다.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잃을 것이 많았다. '그 정도면 너한테 나쁜 회사는 아니야. 오히려 좋은 회사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솔직히 맞았다. 내 학력, 커리어, 외국어 능력 등을 고려했을 때 과한 회사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한계를 부수고 나왔다. 나는 '글 쓰는 사람'이라는 나만의 길을 가기로 했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바라보기로 했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2년 넘게 고민해 왔지만, 아직도 온전히 '있는 그대로의 나'는 어떤 모습인지 모른다. 최근 들어 남편이 나를 '원시인'이라고 표현한다. 자고 싶을 때 자고, 밥 먹고 또 자고, 저녁때 또 자는 형태가 구석기시대의 원시인 삶의 패턴과 다를 바가 없다고 했다. 지금 나는 '원시인의 삶'에서부터 천천히 나를 찾아가는 중이다. 우리의 뇌는 문명의 너무나도 빠른 문명발전을 다 좇아갈 수 없었다. 그래서 때론 현대 문명과 다르게 아직 구석기 어딘가에 머물러 있기도 하다. 나는 이를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첫걸음으로 삼기로 했다.


이런 식으로 고민해보고 싶은 문장을 마흔여 개가 넘게 하이라이트 쳤다.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서 꽂히는 문장은 또 다를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통해서 '위버멘쉬'를 향해 나아가는 존재가 되고자 노력할 수 있는 것은 맞을 것 같다. 그 과정은 지난하기도 하고, 고되기도 할 것 같다. 하지만 거대한 강을 건너기 위한 다리를 만들기 위해서 주춧돌을 하나씩 가져다 놓는 과정이 될 것 같았다. 이 책은 밀리의 서재에서 전자책으로 읽었지만, 종이책으로 주문했다. 그리고 내가 하루에 한 챕터씩 읽는 라이언 홀리데이의 '데일리 필로소피', 루이스 헤이의 '하루 한 장, 마음 챙김'과 함께 놓기로 했다. 하루에 한 번 나를 위한 사색의 시간에 잠길 때 사유로 이끌어주는 문장을 찾아내는 용도로 쓸 계획이다. 나는 아직도 나를 많이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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