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과학

by Carroty

이 책은 자꾸 눈에 띄는 '베스트셀러'였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읽지 않았다. 고집스럽게 외면하던 끝에, 결국 도전하게 된 책이다. 책의 초입부터 징그럽게 반가운 구절이 나왔다. 바로 집안일 때문에 언쟁이 붙을 때마다 남편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었다. 그놈의 열역학 제2법칙. '과학'한다는 사람이면 어쩔 수 없는 의식의 흐름 같은 걸로 이해하기로 했다. 남편과는 과학 강사로 근무할 때 같이 만났고, 남편만 여전히 과학 강사의 삶을 살고 있다. 그래도 어느 정도 고등학교 과학 지식이 남아 있어서 이 책을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았다.



과학자인 나의 아버지는 일찍이 내게 ‘열역학 제2법칙’은 절대 벗어날 수 없다고 가르쳤다. 엔트로피는 증가하기만 할 뿐, 우리가 무슨 짓을 해도 절대 줄어드는 일은 없다고 말이다.

밀리의 서재 p.23 (종이책 p.15~16 )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룰루 밀러 | 곰출판



이 책의 저자는 스탠퍼드 대학교 초대 학장의 삶을 추적하며 자신의 인생을 기록했다. 과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을 좇으면 의미를 찾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의 삶을 추적한다. 논픽션 에세이인 줄 알고 시작했는데,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정말 실존 인물인지 계속 의심이 들었다. 일부러 책을 덮을 때까지 사전 외에는 다른 검색을 해보지 않았는데, 책을 덮을 무렵에야 '진짜구나' 싶었다.



그는 어류학자였지만, 솔직히 말해 물고기에 미친 사람인 것 같았다. 물고기에 미쳐서 물고기를 잡으러 다니고, 물고기에 이름을 붙여 주기 위해서 어떤 일도 서슴지 않던 사람. 그가 스탠퍼드 초대 학장이었다. 그는 실존했고, 룰루 밀러가 좇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의 전체 인생을 봤을 때,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무언가에 미친 정도로 따지면 그는 굉장했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 포커스를 맞춰보고 싶다.


그러면서 나는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게 되었다.


"나는 그렇게 무언가에 미친 적이 있었던가?"


아, 이 질문은 내가 첫 사회생활을 했을 때부터 나를 끊임없이 괴롭히던 질문이다. 나는 공부에 미쳐본 적도 없었고, 어떤 악기나 운동, 취미에 미쳐본 적도 없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서 초등학교 때 배우던 피아노는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동생이 나보다도 훨씬 더 잘했다. 결국 울면서 그만뒀다. 나는 그렇게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것을 쉽게 포기해 버리는 성정의 사람이었다. 그런데 여기 나오는 인물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또다시 나에게는 큰 자극이었다.



그나마 내가 미쳐있었던 것은 '활자'였다. 어릴 때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했고, 글 쓰는 것도 좋아했다. 중학교 때 웹소설이 유행이어서 다음 카페에 연재하기도 했었고, '출간'의 꿈을 꾸기도 했었다. 화장실에서 볼 일 보며 책 읽지 말라는 부모님의 말에 샴푸 뒷면 성분표라도 읽으며 시간을 때우곤 했었다.


하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글을 쓰고자 했던 나는, 아직 내가 기획한 단편소설의 '초고'조차 완성하지 못하고 있었다. 요즘 유행하는 자기 성찰 프롬프트(예: 직설적 로스트)를 통해서도 ChatGPT는 내게 '계획은 천재, 실행은 구경꾼'이라며 '계획 아티스트'라고 빈정거릴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 말이 채찍이 되어, 나는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행동하는 사람으로 변화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꾸는 사람은 이제 그만하기로 했다. 물고기에 미친 사람은 물고기의 이름표가 떨어져 나갔을 때, 물고기의 비늘에 이름표를 꿰매며 자신이 하기로 한 바를 지키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아직 턱없이 부족했다. 물고기에 미친 사람을 보니, 나는 좀 더 미쳐야 할 것 같았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한다면 그 생각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밀리의 서재 p.187 (종이책 p.94~95 )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룰루 밀러 | 곰출판



그 어류학자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좇던 저자는 진화분류학적으로 '어류'라는 범주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가 그렇게 미쳐있던 물고기가 '진화분류학적'으로는 한순간에 없었던 것이 되었다. 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싶을 테지만 난 그 순간에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나의 종교는 원래 천주교인데, 회사 다닐 때 너무 힘들어서 반야심경을 듣다가 법문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덧없고 허무하다기보단,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내가 고등학교 때 배우던 과학과 지금의 고등학생이 배우는 과학 중에도 표기법부터 시작해서 달라진 내용이 있을 수 있다. 가장 쉽게 접근하자면, '수금지화목토천해명'으로 외웠던 태양계 행성에서 명왕성은 빠져버린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과학은 계속해서 탐구하고 있다. 아직 우리 인간이 밝혀내지 못한 무수한 사실들이 더 많다. 그러니 우리는 좀 더 넓은 마음으로 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 나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룰루 밀러가 그랬듯이 나도 그렇게 믿고 싶다.


나는 서서히, 목표만 보고 달려가는 터널 시야 바깥에 훨씬 더 좋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믿게 됐다.

밀리의 서재 p.557 (종이책 p.266~267 )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룰루 밀러 | 곰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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